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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의 열정, 그리고 눈물, <닫힌 교문을 열며>
2001-11-14

필자가 원고청탁을 받은 것은 월요일 밤이었다. 지난 추석 때 못 간 성묘를 다녀오느라 난 무척 지쳐 있었고, 이른 시간(영화인들에게 밤 10시는 무척 이른 시간이다. 일을 하든 시나리오를 쓰든, 또한 일의 연장임을 빙자해 술을 먹고 있든 말이다)임에도 불구하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잠이 덜 깬 상태임에도 기자의 전화를 받고 곧바로 “쓰겠다”라고 대답한 건 언젠가 한번은 올 것 같던 것이 이제 왔구나라는 생각과 더불어 그럴 때를 대비해 내 마음속에 결정해놓았던 영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영화는 <닫힌 교문을 열며>(1991)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했던 <오! 꿈의 나라>와 당시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정면으로 다뤄 수많은 지지와 파문을 동시에 불러왔던 <파업전야>를 만든 ‘장산곶매’의 세 번째 극영화인 이 작품은 요즘 20대 초반 관객에게는 이름조차 생소한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정식 극장 상영은 물론 비디오 출시조차 안 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386세대는 대학과 시민회관 상영을 통해 접할 기회가 있었을 것이며(전국 주요 도시는 거의 한 군데도 빠짐없이 순회하면서 상영되었고 그때마다 많은 관객이 몰려들었다. 지금으로 따지면 이른바 전국 흥행에 성공한 ‘대박’작품이었다), <씨네21> 독자 중에는 대학 시절 기억을 더듬어 ‘아 그 영화’라고 기억하실 분이 많을 것이다.

이 영화는 장산곶매가 이 땅의 척박한 교육현장을(지금도 크게 달라진 게 없는…)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하는 의지를 담아 전교조 선생님들과 손잡고 만들었다. 간단히 영화의 내용을 소개하면, 한 고등학교 교지편집위원인 학생들이 선배들의 고교 시절 체험을 소개하는 코너를 기획하고 취재해 원고를 완성하지만 그 원고가 불순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하여 탄압받게 되고 급기야 모두 정학 처분을 받는다. 하지만 학생들은 편집권을 지켜내고, 취재과정에서 눈뜬 입시 위주의 부당한 교육현실에 저항해 등교를 시도하지만 교문은 굳게 닫히고 만다. 학생들의 입장을 지켜주려 했던 교사 또한 면직 처분을 받게 되고 이들은 억수로 퍼붓는 비를 맞으며 철옹성처럼 닫힌 교문 앞에서 절망하게 된다. 그때까지 자신의 현실에 안주하며 고민하던 한 선생님이 붙잡는 다른 선생님들을 뿌리치고 교문을 열어 이들을 학교 안으로 들여놓고 함께 환한 웃음으로 어우러지며 영화는 끝을 맺게 된다. 해피엔딩으로 끝맺는 것처럼 보이나 관객은 결코 이들의 학교생활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느끼게 된다.

비디오로도 출시 안 된 이 영화를 필자가 굳이 소개하는 것은 이 코너의 제목이 ‘내 인생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지금 필자는 좋은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갖고 있지만 상업영화사의 현직 프로듀서로서 영화의 수익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 당시는 정말 열정만으로 또한 내가 만드는 영화에 대한 자부심으로 수많은 탄압들을 동료들과 함께 견뎌내며 이 영화를 만들어냈다. 다시는 이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므로 영화 <닫힌 교문을 열며>는 가히 내 인생의 영화라 생각한다. 지금도 간혹 힘들 때면 그때의 열정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위안하곤 한다.

당시 제작부장으로 참여했던 필자는 하루하루가 피가 마르는 것 같았다. 돈이 떨어져 모든 회원들이 주변에 돈 꾸러 다니는 게 중요한 일과였고 급기야 완전히 돈이 바닥나 참담한 심정으로 술먹고 뻗어 있을 때 감독이 시골에서 어머니가 농사짓는 땅을 팔아 남은 제작비를 메웠다.

또한 촬영이 지연되면서 영하 12도의 겨울에 여름옷을 입고 무려 9시간 동안 비를 맞으며 촬영했던 전교조 선생님들과 같이 출연했던 ‘함께 가자 우리’라는 단체의 고등학생들을 잊을 수 없다. 6명이나 실신하는 상황에서 끝까지 그들은 의연하게 촬영에 임했다. 그 의연함으로 모두 빗속에서 함께 눈물을 속으로 삼키며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지금도 전교조 위원장으로서 이 땅의 교육현실을 개혁하고자 싸우고 계신 필자의 고등학교 담임이었던 이수호 선생님이 강건하시길 바라며 이 글을 끝맺는다.

(다행히도 이 영화는 독립영화협의회 사무국(02-2238-8753)으로 연락하면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대여가 가능하다. 보고자 하는 분은 비디오 공테이프 하나를 준비해 위의 전화번호로 연락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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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서우식/ 프리시네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