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감독 장동홍, 장윤현, 이재구, 이은기 상영시간 107분 화면포맷 1.53:1 아나모픽 음성포맷 DD 2.0 한국어 자막 한글, 영어 출시사 장산곶매 화질 ★★★☆ 음질 ★★★ 부록 ★★★☆
1980년대 5공 군사정권은 대중을 향해 쾌락적 자본주의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중에서도 주식과 부동산의 폭발은 요상한 먹잇거리를 제공했고, 권력층의 두터운 유착관계 바깥에 머물던 사람들은 분풀이라도 하듯 눈먼 야수로 변했다.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 억이란 단위가 아파트에 매겨졌으며, 바야흐로 1000선을 오르내리는 주가지수는 신기루처럼 그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돈과 함께 오는 건 천박함이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제자리를 내주는 건 언제나 인간이다. 그런 ‘80년대의 마지막 해에 학생과 시민에게 충격을 던진 한편의 독립영화는 추악한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자 했다. 이어 상영을 막으려던 공권력이 온갖 탄압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30만 관객을 이끌어냈다(제도권 극장에서 상영되지 못했기에 실로 감격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파업전야>는 필연적으로 만들어져야 하는 작품이었던 것이다.
<오! 꿈의 나라>로 의미있는 발걸음을 뗀 ‘영화제작소 장산곶매’가 제작한 두 번째 장편 극영화 <파업전야>는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의 대립구도 속에서 인간다운 삶의 기치를 올린 작품이다. 영화의 주무대인 ‘동성금속’은 악랄한 경영진의 책략 아래 노동자들이 열악한 삶을 이어가는 곳이다. 보상없는 연장근무 등의 노동착취가 다반사인 생산현장이 노동자의 몸을 힘겹게 만들고, 기본적인 생활을 꾸리기에도 모자란 저임금은 그들의 미래에 가난의 굴레를 씌운다. 자신들의 가난이 착취당하기 때문임을, 중요한 건 인간답게 사는 것임을 자각한 노동자들은 민주노조를 결성하지만, 해고로 맞선 경영진은 구사대와 깡패들을 동원하면서까지 노동자들의 연대를 방해한다. 급기야 점거 투쟁을 벌인 해고 노동자들이 무참하게 끌려나가자, 회사의 농간에 속았음을 깨달은 나머지 노동자들이 분연히 일어난다.
고백건대 1990년 당시 사회에 첫발을 내딛던 나는 <파업전야>가 상영되던 모교의 열기를 눈앞에서 목격하면서도 애써 무시했다. 긴 시간 뒤에 본 <파업전야>는 그저 분노의 시대를 향수하려던 내 뺨을 후려쳤고, 다시 몇년이 지나 DVD로 만난 <파업전야>는 더 소중한 모습으로 각인되기에 이르렀다. 자기가 노동자임을 잊은 민중에게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참세상을 건설하자’ 같은 대사는 구식 표어로 들릴지도 모른다. 2008년의 한국을 살고 있는 대중이 미치도록 추구하는 (혹은 그렇게 주입당한) 대상에는 ‘귀족, 특권, 명품’이라는 수식어가 꼭 따라붙는다. 생각해보자. 그것은 옛사람들이 ‘근대의 가치’를 위해 피 터지게 저항하고 거부한 개념이 아니던가. 우리는 언젠가부터 전근대적인 시기로 돌아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이러한 쾌락적 자본주의의 종말을 주모한 범인은 과연 누구일까. 사악한 권력자들은 대중문화를 통해 민중의 분열을 꾀하게 마련이니, 서로에게서 소외된 민중은 작은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푸념하기에 이르고, 고립된 존재들은 무력감에 빠진다. 그 결과, 민중은 마음대로 조종 가능한 존재로 줄어든다. 반면 아름다운 문화와 운동은 인간다움을 꿈꾸며 민중의 단결을 희망한다. 지금 <파업전야>의 역사와 메시지가 더욱 절실한 까닭은 거기에 있다. 세상의 변화를 꿈꾸는 자들의 시대를 80년대로 끝내기엔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DVD는 <파업전야>의 18년을 기념하는 다큐멘터리 ‘영화제작소 장산곶매’(40분)를 수록했다. 장산곶매에서 활동한 회원과 영화에 참여한 사람들이 영화의 탄생 배경, 치열했던 제작 과정, 전설로 남은 상영투쟁과 기록적인 흥행 등을 기억하고 이야기하는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