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빼고 기다렸던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휴가지를 미국으로 정한 뒤 기뻤던 한 가지는 벤 스틸러가 연출하고 출연한 <트로픽 선더>의 개봉과 나의 체류기간이 일치한다는 사실이었다. 일전에 한 선배가 ‘길티 플레저’로 <쥬랜더>를 꼽았는데, 나 역시 <쥬랜더>를 처음 본 뒤로 DVD까지 구매해서 심심하거나 울적해질 참이면 본편부터 서플먼트까지 빠지지 않고 챙겨서 보곤 했다. 친구들과 펜션을 빌려 놀러갈 때도 이 즐거움을 전파하겠단 일념 아래 DVD를 챙겨가기도 했다. 그만큼 벤 스틸러가 7년 만에 잡은 메가폰에 대한 기대가 컸다.
스포일러가 안 되는 수준에서 줄거리를 풀면, <트로픽 선더>는 베트남전 참전용사가 쓴 회고록이다. <트로픽 선더>는 쏟아져 나왔던 전쟁 회고록 중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어 판권이 팔리고 실제로 영화로 만들어진다. 주연배우는 3명이다. 이미지 변신을 꾀하는 근육질 배우 터그(벤 스틸러)와 역할을 위해 흑인이 되는 성형수술을 받은 연기파 커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1인다역과 화장실 유머의 달인 코미디언 제프(잭 블랙). 그들은 촬영장에서 진지해지기는커녕 자존심만 내세워 스케줄에 지장을 초래하는데, 감독은 묘안을 짜내 배우들을 정글로 데려간다. 그리고 간단한 대본을 던져주고 숨겨둔 카메라로 촬영한다며 그들을 버려두고 사라진다. 그런데 사고가 일어난다. 원주민들이 가짜 총과 가짜 수류탄을 든 배우들을 미군 정찰대라고 오해하고 공격을 시작한 것. 그래서 영화는 순식간에 실제가 돼버린다.
사실 자막도 없는 영화를 100% 즐겼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흑인을 연기하는 다우니 주니어의 대사는 80% 못 알아들었고, 다른 배우들의 대사도 반은 놓쳤다. 가끔 남들 웃을 때 멀뚱히 있거나 엇박자로 웃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상황에 웃었고 감성에 웃었다. 특히 할리우드 제작자로 등장하는 톰 크루즈의 변신에는 웃다가 배가 아플 정도였다. 평소 벤 스틸러가 출연한 영화를 챙겨보는 편은 아닌데도 <쥬랜더>에 대한 믿음으로 <트로픽 선더>까지 기다렸던 이유는 그의 영화에서 느꼈던 커뮤니티적 즐거움 때문이다. 스틸러의 단짝 오언 윌슨의 자살 기도로 윌슨으로 내정됐던 역할을 매튜 매커너헤이가 연기했지만, <쥬랜더> 때 보여준 척척호흡을 떠올리니 윌슨이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저절로 생겼다. 커뮤니티적 즐거움이란 그런 것이다. 스크린 너머 촬영장에서 얼마나 즐거웠을까 상상하도록 하는 것. 분명 자기들끼리 신나고 웃겨서 뒹굴었을 것이다. 개봉 전에 공개됐던 트레일러도 얼마나 웃기던지. 그런 분위기는 자발적으로 나서서 망가지지 않으면 불가능한 에너지다.
커뮤니티에 대해서 이야기하니 내가 속한 커뮤니티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진다. 카드명세서처럼 잊지 않고 찾아오는 마감은 짜증스럽지만 그럼에도 <씨네21>을 돌아가게 하는 커뮤니티적 즐거움이 분명 있다. 이 안에서 느끼는 정서는 다른 조직과는 다르기에 좋다 나쁘다를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즐겁다고, 여기 속해서 자랑스럽다고 말하고 싶다. 이곳은 편집장과 맞담배를 피우는 곳이 맞고 회의시간에 농담 섞인 야유를 던지고 키득대는 곳이 맞다. 누군가가 위아래없고 비전문적이라고 비난한다면 소통이 원활하고 목적과 방향을 공유하는 문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고유한 분위기라고 대꾸하련다. 사람이란 간사해서 늘 있는 것은 소중히 여기지 않는 실수를 한다. 다른 곳에서라면 몰랐을 어떤 것들에 대해서 불현듯 고마워하게 됐다는 말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