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체하면 어머니는 상비해놓았던 활명수를 내주셨고, 고생하는 친구나 직장 동료를 방문할 때면 약국에 들러 박카스를 샀다. 각각 111년(활명수), 47년(박카스)의 역사를 지닌 대한민국 대표 의약품인 활명수와 박카스. 다른 어떤 제품도 따라올 수 없는 자랑할 만한 긴 역사지만 ‘올디스 벗 구디스’(Oldies But Goodies)가 되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두 제품 모두 여전히 친근하고, 피곤할 때나 소화불량일 때 바로 떠올리는 구매고려 제품이지만 10대와 20대에게는 낡은 이미지를 가진, 아예 한번도 먹어본 적 없는 제품일 수도 있다. 동일한 용도에 어리고 젊은 타깃에 어울리는 경쟁제품이 존재하기도 한다.
‘브랜드의 진부화’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두 브랜드는 동일한 고민을 하고 있다. 진부화는 당연히 매출 정체나 감소로 쉽게 연결될 수 있다. 그래서 박카스의 경우 일찌감치 젊은 층이 선호하는 모델을 기용했고, ‘대학생 국토대장정’ 같은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다.
사실 의약제품의 광고목표와 화법은 대동소이하다. “브랜드명 반복 노출을 통해 특정 증상이 발생했을 때 즉각적으로 그 브랜드를 떠올리게 하라.”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잇몸엔 인사돌”, “맞다 게보린” 같은 의약제품의 대표적인 카피들을 쉽게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박카스, 활명수의 최근 광고 캠페인은 그 목표 자체가 다르다. 브랜드를 무의식적으로 기억하는 게 아니라 그 제품의 위상 자체를 다르게 만들고 싶어한다.
구한말 왕도 먹었다는 활명수의 광고 메시지는 다른 제품은 좀처럼 흉내낼 수 없는 제품 이력을 통해 활명수를 다시 보게 만든다. ‘부채표’라는 심벌이 가졌던 브랜드의 변별력과 신뢰 제고를 ‘111년’과 ‘왕의 활명수’라는 ‘팩트’가 대신하게 된 셈이다. 그리고 한번도 활명수를 먹어본 적 없는 젊은이들을 모델로 기용해서 “젊은 여러분들도 먹을 수 있는 소화제”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활명수가 공급자 입장에서 출발했다면 박카스는 소비자에게서 출발했다. 활명수가 ‘이 제품은 어떤 차별점을 가지고 있는가’를 고민했다면 박카스는 ‘소비자에게 박카스는 어떤 의미인가’에서 광고의 메시지를 찾았다. 그리고 다른 출발점은 다른 결과를 만든다. 활명수 광고가 우리에게 ‘정보’를 주었다면 박카스 광고는 우리에게 공감을 만들어냈다.
박카스는 이 제품이 언제 만들어져 얼마나 팔렸고, 어떤 성분이 들어가 있는지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누구나 피곤을 느끼고, 누구나 저마다의 피로회복 방법이 존재한다는 발상에서 출발, 박카스도 당신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는 의지를 전달한다. 이미 오랜 역사를 지닌 이 브랜드는 자신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할머니의 재봉틀, 올 여름의 금메달처럼 박카스는 피로회복 하면 떠오르는 존재로, 단순한 약품이 아닌 감성을 담은 브랜드가 되려고 한다.
박카스와 활명수의 광고 캠페인은 외투를 벗기기 위해 바람과 태양이 시합을 했던 동화를 떠올리게 한다. 그 동화의 결과로 볼 때 박카스의 전략이 활명수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전략인 듯싶다. 그러고 보면 활명수 광고의 타깃 변화는 박카스가 2000년부터 했던 ‘젊은 날의 선택’이라는 슬로건의 광고 캠페인을 떠올리게 한다. 그때 버스에서 앉아 있던 여학생(한가인), 참 예뻤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