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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 마니아] 거꾸로 읽는 <영웅본색> 2탄
주성철 2008-09-26

추석에 <영웅본색>을 또 봤다. 예상보다 사람이 많아 흐뭇했고 한번 더 얘기하고 싶어졌다. <영웅본색>은 그야말로 영화적 기법의 교과서다. 비싸고 두껍고 난이도 높은 대학교재라기보다는 단색으로 깔끔하게 잘 만든 중·고교 교과서 같다. 세월이 흘러도 거대한 휴대폰 장면 정도만 빼면(악당이 들고 있는 무기나 가방인 줄 알았는데 안테나를 뽑아서 전화를 받을 때의 그 황당함이란) 특별히 촌스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데는 그런 정격의 구조 때문일 것이다. 당시 왜 그리 커다란 감정적 진폭을 만들어냈는지를 떠올려보면, 아마도 전편에 걸쳐 있는 대조와 반복법 때문일 것이다. 그런 수사들이 무의식중에 반복 축적됐을 터인데 그걸 쭉 대조하며 정리해봤다.

(형의 정체를 모를 때) 이제 막 경관이 된 장국영이 경관이라면서 적룡을 뒤에서 덮치는 장면과 (형의 정체를 알고 난 뒤) 장국영이 적룡을 정말로 미워하면서 뒤에서 덮쳐 신분증을 요구하는 장면, 타이베이에서 적룡이 경찰에 체포됐다는 소식을 보고 신문을 떨어트리는 주윤발(“강호의 의리가 땅에 떨어졌어”)과 나중에 거의 불구가 된 주윤발을 멀리서 바라보며 신문을 읽고 있는 적룡, 콜록콜록 기침을 하는 조직의 ‘초짜’ 이자웅에게 약 사먹으라며 지폐 몇장을 건네는 주윤발과 나중에 거의 막일꾼이 돼서 주윤발이 이자웅 리무진의 차창을 닦아주자 밥이나 사먹으라며 땅에다 지폐를 몇장 팍팍팍 떨어트려 주는 이자웅, 타이완으로 떠날 때 흰색 슈트를 입고 있는 적룡과 나중에 홍콩에 돌아와 새로운 보스가 돼 흰 슈트를 입고 있는 이자웅, 시아버지를 죽이러 온 킬러를 잡기 위해 방의 불을 끄는 주보의와 자신의 생일을 잊어먹은 것 같은 장국영에게 삐쳐서 방의 불을 끄는 주보의, 적룡이 출소해서 돌아온 뒤 다시 시작하자며 적룡의 뒷덜미를 낚아채는 주윤발과 형에게 제발 잘하라며 장국영의 뒷덜미를 낚아채는 주윤발, 적룡을 범죄자 취급하는 장국영을 보고 열받아 그의 총을 자기 머리에 겨누는 주윤발과 라스트 액션신에서 그와 똑같은 구도로 서 있다 진짜로 머리에 총에 맞아 죽는 주윤발(“형제란…”), 몰래 적진에 잠입한 장국영을 핸드헬드로 쫓아 총상을 입히는 성규안과 라스트 액션신에서 바로 그 장국영의 총에 맞는 성규안, 그 밖에도 감옥에서 줄서기를 하는 적룡과 심각한 얼굴로 경찰수업을 받고 사격연습을 하는 장국영의 모습도 교차편집으로 보여진다.

그런데 홍콩영화 사상 최고의 범죄형 얼굴 성규안은 1편에서 죽어놓고 2편에도 등장한다. 주윤발도 쌍둥이가 있었다는 식으로 2편에도 등장했는데 성규안 역시 쌍둥이였던 걸까? 기억해야 할 악당은 또 있다. 적룡을 배신한 뒤 <영웅본색> 최고의 명장면인 풍림각신에서 주윤발의 총에 맞아죽었던(주윤발의 다리를 못 쓰게 만든 그놈) 진지휘(사진)는 이후 <열혈남아>(1988)의 최고 명장면인 포장마차 액션신에서도 유덕화의 칼에 숨을 거둔다. 그렇게 진지휘를 통해 홍콩 누아르의 두 걸작도 반복법으로 혈연관계를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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