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교탁 위에서 캔음료를 받아드는, 나로서는 제법 진귀한 경험을 하게 됐다. 일종의 일일 초빙강사. 주제는 ‘한국영화의 현재’였다. 일선 기자의 입장이라면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다는 ‘꾐’에 속아 덜컥 수락을 한 게 화근이었다. 고소공포증 플러스 멍석 깔아놓으면 뭐든 못하는 내가 학생들 앞에 선다는 것 자체가 호러였다. 게다가 수강생 수가 무려 100여명. 강의 두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른다. 한국영화 한해 120편 제작 전성기에서 20편 제작이라는 풍파를 겪는 동안 근래 3년간의 상황을 ‘아는 한도 내’에서 열심히 설명했다. 신기하게도 학생들은 진지하고 관심있는 눈망울을 보태 초보 강사의 긴장을 녹여주었다. 나름 뿌듯한 강의를 했다고 자체 평가하며…. 그리고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이 질문을 하겠다며 캔커피를 들고 나를 찾은 예의 그 광경이 연출된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나를 향한 관심의 8할은 ‘한국영화’가 아닌, ‘한국에서 영화기자가 어떻게 되나요?’였다. 수업시간 외에는 모두 영화 보기에 투자한다는 학생은 제법 도전적으로 영화기자가 되는 실질적인 방법을 캐물었으며, 몇번 잡지사에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는 학생은 내친김에 내게 좀더 확실한 통로를 요구하는 듯했다. 내 대답을 자체 평가한다면 아무래도 우물쭈물 얼버무리기식 답변이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난 어떻게 내가 영화기자가 됐는지 모르겠다. 영화가 좋았고 기자가 되고 싶었는데 마침 <씨네21>이라는 획기적인 ‘상품’이 나왔었다. 이른바 ‘영화기자’라는 특화된 전문 분야가 생긴 것이다. 블로그도 없던 그 시절, 난 ‘독자투고란’이라는 제법 ‘무식한’ 방법으로 이 일을 시작했고, 지금도 직선이 아닌 그 우회로의 방식이 얼마쯤은 실효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기자’라는 타이틀로 지낸 지 벌써 햇수로 8년이 지났다. 그동안 지금은 폐간된 <시네버스>를 거쳐 <무비위크> <필름2.0> <씨네21>을 모두 석권하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빙고! 혹자들은 내게 한곳에 오래 못 있는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그렇지만 체력장 종목 중 유일하게 오래달리기에 자신있는 나에게 지구력을 의심하는 건 실례다. 난 처음부터 지금까지 ‘영화기자’라는 타이틀에 심하게 매혹됐고 스스로 그 목표에서 벗어난 적은 없다고 자부한다. 영화를 보고 현장에 가고 스탭을 만나고 또 그걸 바탕으로 생산하는 모든 ‘수다’가 여전히 내겐 즐거운 일상이다. 주식과 펀드를 논하고 아파트를 개비한 친구들이 내게 ‘현실감각 제로’라며 혀를 끌끌 찰 때도, “넌 그래도 참 기자 같아. 드라마에 나오는 열혈기자”라고 건네는 한마디가 더 현실적으로 와닿는 못 말리는 삼십대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스크린에서 쏟아지는 빛을 빗대어 “빛으로 샤워를 하는 느낌이다”라며 영화보기를 찬미했다. 난 일주일간의 ‘노동’을 끝내고 받아든 책을 넘길 때, 그 감촉에 경도된다. 컴퓨터라는 딱딱하고 몰인정한 ‘기계’에 써내려간 글이 디자인과 편집을 거쳐 손으로 만질 수도 가끔 구길 수도, 또 멋진 문구엔 줄도 칠 수 있는 종이에 펼쳐지는 것이 나에겐 ‘매직’ 자체다. 그래서 영화잡지 기자로 사는 오늘이 좋다. 면접 때 “언제까지 이 일을 할 거죠?”라는 편집장님의 질문은 <꽃보다 남자>의 ‘츠카사’의 대사로 마무리하겠다. “난 너와 인생을 함께하는 것에 대해 눈곱만치의 망설임도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