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불온한 걸 보여 줄게!
최근 화제가 됐던 ‘불온서적 리스트’는 한국 출판계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국방부 관계자가 풍요로운 도서문화를 만들기 위해 기획한 특별 이벤트가 아니었을까. 국방부가 내세운 ‘북한 찬양, 반정부, 반미·반자본주의’라는 기준에 썩 부합하지도 않는 23권의 도서가 불티나게 팔리는 것을 보면 ‘불온 마케팅’이라는 새로운 마케팅 기법이 큰 가능성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 바야흐로 불붙은 불온 마케팅의 열기를 이어나가기 위해서 <씨네21> 또한 음반과 만화 분야의 불온 리스트를 선정했다. 지난번 리스트에서 ‘아쉽게’ 탈락한 불온한 도서 목록 또한 추가했다. 만약 국방부가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여 이들을 불온물로 공인해준다면 문화산업은 큰 힘을 얻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그저 우울한 농담으로 받아들이고 싶은 이 과거회귀의 시대를 맞아 ‘불온’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01. 지배세력의 취향만이 합법?!
≪1집≫ | 김민기 ≪멀고 먼 길≫ ≪고무신≫ | 한대수
한국에서 불온 음반의 역사는 1974년 긴급조치 1호를 정점으로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3년 12월29일 당시 저 유명한 담화문을 발표하며 사회 전반에 걸친 사전 검열과 영장없는 구속을 합법화했다. 그중에는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구절도 있었다. 농담 같지만, 이 ‘농담’ 덕분에 김지하 시인은 사형을 선고받았고, 김민기는 연행 뒤 활동이 금지되었다. 한대수도 마찬가지였는데 일그러진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찍은 ≪멀고 먼 길≫에 수록된 <물 좀 주소>는 뚜렷한 이유없이(혹은 물고문을 연상시켜서?) 금지곡이 되었다. 가요뿐 아니라 당대 세계적으로 히트한 존 바에즈의 <We Shall Overcome>과 조니 미첼의 <Woodstock>, 비틀스의 <Revolution> 같은 곡들은 각각 ‘반전’, ‘퇴폐’, ‘불온’의 이유로 금지되었다. 이건 흥미로운 사실이다. 농담 같은 국가 폭력의 근저에는 지배세력의 ‘취향’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해 취향은 권력의 문제이고, 정치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02. 검열이 탄생시킨 ‘한국 특별판’
≪The Night of Opera≫ | 퀸
한국의 검열은 1990년대까지 지속되었다. 노래 뿐 아니라 음반 커버와 사진까지 검열의 대상이었다. 건전가요, 아니 ‘관제가요’도 넣어야 했는데 맥락상 ‘건전’의 사전적 의미와도 거리가 멀었다. 해외 음반은 또 경우가 달랐다. 검열은 막무가내로 진행되었다. 그중 유명한 것은 퀸의 <Bohemian Rapsody>가 빠진 채 발매된 ≪The Night of Opera≫와 칼 마르크스의 얼굴이 실린 배경을 어둡게 칠하고 발매한 비틀스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다. 1990년대라고 해서 크게 다르진 않았다. <Drug Don’t Work>가 빠진 버브의 ≪Urban Hymns≫와 <X.Y.U>, <Fuck You(An Ode to No One)>가 사라진 스매싱 펌킨스의 ≪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의 사례는 1990년대에도 금지곡이 있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환기시킨다. ‘퇴폐’와 ‘불온’을 이유로 난도질당한 수입앨범들은 역설적으로 해외의 골수팬들 틈에서 ‘Korean Special Edition’으로 불리며 고가에 거래된다는 소문도 만들었다.
03. 붉은 군대가 부르는 러시아 국가
러시아 국가 | 붉은 군대 합창단
‘붉은 군대 합창단’(Red Army Choir)은 이름부터가 불온하다. 재정러시아 말기에 생긴 이 남성 합창단은 여전히 구소련의 군복을 입고 공연을 한다(모두 전직 군인들이니까). 이들은 종종 현존하는 최고의 남성 합창단으로 일컬어지는데, 특히 베를린 장벽 앞에서 로저 워터스와 협연한 1990년 콘서트와 밴드 레닌그라드 카우보이와 함께한 1993년 헬싱키 공연(그 과정은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1994년 영화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모세를 만나다>에 고스란히 담겼다)이 유명하다. 세계적인 명성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한국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데, 당연하다. 소련 국적이었으니까. 그래서 영화 <이중간첩>의 오프닝에 흐르던 소련 국가는 새삼 뭔가를 환기시킨다. 물론 <인터내셔널가>와 더불어 최고의 남성 합창곡으로 손꼽히는 러시아 국가를 공개적으로 들을 일은 올림픽 시상식 외엔 요원할 것이다. 스탈린 시대에 만들어진 이 국가는 1991년 연방 해체 이후 새 국가로 대체되었다가 국민들의 호응에 힘입어 2001년 이후 러시아 국가의 지위를 회복했다.
04. ‘체’라는 기호에 주목하라
<체를 위한 삼바> | 빅토르 하라
‘제3세계’라는 용어는 물론 폭력적이다. 서양의 국가권력과 역사·사회학자들 덕분인데 특히 중남미야말로 이론과 현실 양면에서 미국이 말아먹은 대표적인 지역일 것이다. 그들이 거기서 저지른 악행 중 가장 악랄했던 건 바로 1973년 9월 칠레의 군부 쿠데타였다. 칠레는 1970년 당시 세계 최초로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정권이 창출된 국가였지만, CIA의 지원을 받은 군부세력의 쿠데타로 칠레 민중은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과 빅토르 하라를 잃어야 했다. 남미의 음악운동 ‘누에바 칸시온’을 이끌던 빅토르 하라는 국적을 초월한 ‘인민 가수’였고 혁명가였다. <체를 위한 삼바>는 체 게바라의 죽음을 애도하며 만든 노래다. 이 노래를 부르고 몇년 뒤 빅토르 하라도 총살당했다. 노래에는 ‘체’라는 기호가 환기하는 불온의 정서가 존재한다. 그 정서가 바로 전달되지 않는 건 우리가 라틴어에 무지하기 때문이다. 부드러운 멜로디와 목소리 속에 혁명, 죽음, 착취, 해방 같은 ‘불온한 단어’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05. 백인 기득권 비판한 러브송
<What A Wonderful World> | 샘 쿡
1962년 샘 쿡이 발표한 이 노래는 지고지순한 러브송으로 유명하다. 영화 <위트니스>에서 해리슨 포드와 켈리 맥길리스가 이 음악에 맞춰 차고에서 춤도 췄다. 덕분에 1990년대 FM라디오에서는 분위기 좋은 무드음악으로 즐겨 선곡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곡의 실체는 애틋한 러브송이 아니라 당대 흑인인권운동을 탄압하던 백인 기득권에 대한 은유적인 비판이었다. 노래에는 ‘Don’t know much about history. Don’t know much biology. Don’t know much about a science book. Don’t know much about the french I took. But I do know that I love you’라는 가사가 등장한다. 여기서 ‘역사’, ‘생물학’, ‘과학’이란 수세기 동안 흑인에 대한 백인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다양한 이론적 기반을 발명해온 서구문명에 대한 비유이자 미국의 백인 중산층의 지적기반에 대한 비꼼이다. 그래서 이 노래는 ‘이론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똑똑한 척 남들 짓밟는 것들이 정작 사랑이 뭔지는 알아?’ 정도로 해석되기도 한다. 하긴, ‘A change is gonna come’으로 흑인인권운동과 반전운동의 주요 인사로 자리매김한 그가 이렇게 세련되게 불온한 사랑 노래를 불렀다 한들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다.
06. 60년대, 해석 불명의 공포
<The End> | 도어즈 + 60년대 록밴드들
1960년대는 명백하게 격동의 시기였다. 물론 그 격동의 역사는 한국을 완벽하게 비껴갔지만 영미권을 비롯해 유럽과 일본에서는 전후 청년세대가 기성세대와 충돌하며 사회적인 발언권을 얻어낸 시기였다. 캘리포니아와 워싱턴, 파리와 런던, 프라하와 오키나와, 도쿄에서 벌어진 일련의 정치 투쟁과 문화 혁명은 1960년대 후반을 반문화의 시대로 만들었다. 그중 짐 모리슨은 가장 탁월한 예술가이자 선동가였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의 첫 장면에 흐르는 도어즈의 <The End>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무의식 속에서 정신 줄을 놓은 세대의 무섭고도 매혹적인 초상이었다. 지미 헨드릭스나 CCR, 롤링 스톤스도 마찬가지였다. 비틀스가 오리엔탈리즘에 칩거하던 시절, 록음악은 각종 이펙터로 조작된 전기기타와 신시사이저로부터 날카로운 쇳소리와 몽환적인 사운드의 미학을 만들어냈다. 그 모든 사운드와 퍼포먼스가 ‘불온’했다. 도대체 뭔지 몰랐기 때문이다. 불온함이란 기성세대와 지배세력이 해석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것들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지칭하는 단어였다.
07. 부시야말로 모든 문제의 근원
≪Rock Against Bush≫ + 21세기 미국 록
21세기는 이라크전으로 시작되었다. 9·11이 터졌고, 백악관이 이라크를 테러국가로 지목했으며, 사담 후세인은 곧장 인류의 적이 되었다. 하지만 전쟁을 반대한 사람들도 많았다. 그중 대다수는 부시야말로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고 생각했다. ≪Rock Against Bush≫는 그런 밴드들의 두장짜리 앨범으로 2004년 4월과 8월에 발매되었다. 밴드 NOFX의 팻 마이크가 주도한 이 앨범은 1980년대 초반의 ‘Rock Against Reagan campaign’을 리바이벌한 프로젝트였다. 오프스프링, 안티-플랙, 섬41, 그린데이, 미니스트리 등이 참여한 이 앨범은 사회참여를 넘어 선동의 영역에 있어 심히 불온하다. 현직 대통령에 대해 공격하고 비난하고 욕하고 뭐 그런. 물론 한국에도 그런 펑크밴드가 있었다. 장르 덕분에 정치적일 수밖에 없었던 그들은 지난 대선에서 ‘모든 후보들을 위해 곡을 오픈’하면서 비로소 비정치적인 밴드로 거듭났지만 당선자의 캠프에서 <난 네게 반했어>가 흘러나오는 바람에 다시 정치적인 밴드가 되고 말았다. 그 밴드가 바로 그 대통령을 반대하는 촛불집회 무대에 섰을 때야말로 이들이 불온한 밴드가 되었던 순간이다. 이 시대에 입장과 태도가 없다는 거야말로 불온 그 자체다.
08. 사랑, 그 불온함에 대하여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 양희은 <앵콜요청금지> | 브로콜리 너마저
사랑은 종종 지독한 서정이다. 매 순간 가득한 환희의 이면에는 괴물 같은 고통이 존재한다. 사실 세상사가 모두 마찬가지다. 쾌락과 고통은 같은 감각이다. 사랑이라고 다를 리 없다.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는 한때 비관적인 가사 때문에 금지곡의 반열에 올랐다. 사랑이 왜 쓸쓸하냐는 게 이유였다. 물론 불온했다. 한데 그때의 기준으로 보자면 브로콜리 너마저의 <앵콜요청금지>도 만만치 않다. 지나치게 염세적이다. 허무하고 덧없다. 젊은 애들이 그런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글러먹었다. 그렇다고 너무 지나친 것도 문제다. 태양의 <나만 바라봐>나 엄정화의 <Disco>, 샤이니의 <누난 너무 예뻐>는 동방예의지국의 미풍양속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노래들이다. 나는 바람 피워도 너는 안 된다거나 미친 듯이 춤이나 추자는 의미없는 가사가 반복되거나 연하의 남자애가 누님에게 대놓고 연정을 품으면 좀 곤란하다. 사회질서가 위협받는다. 그야말로 불온하다. 하긴 이런 노래들이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다는 게 곧 이 시대의 불온을 증명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어떤 시대적 기준을 들이대도 사랑은 그 자체로 불온하다. 모든 것을 바꾸기 때문이다.
09. 청춘 구, 십팔?!
≪청춘 98≫ | 노브레인
10년 전, 노브레인은 <서울로 간 삼룡이>가 수록된 EP를 발표했다. 문사단(문화사기단)의 멤버들이 모여 ‘청춘 구’와 ‘십팔’이라는 한글 패널을 들고 찍은 커버는 당시 이들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IMF, 장기실업, 신자유주의 같은 단어들이 거리를 지배하던 1998년 당시 가장 직설적이었던 이 앨범에는 김영삼 정권과 신자유주의 정책을 대놓고 공격한 지난 트랙도 ‘숨어’ 있다. 삼청교육대의 욕설이 가득한 앨범도 비슷한 시기에 발매되었다. 불타는화양리쇼바를올려라, 도로시, 황신혜밴드, 어어부밴드, 청바지, 은희의 노을 같은 밴드들 덕분에 공격적인 펑크와 기괴한 키치 혹은 아마추어리즘이 홍대 앞에 만개했다. 사실 이 모든 것들이 가능했던 것은 정태춘의 헌법소원으로 1996년에 음반사전심의제도가 폐지된 결과이기도 하다. 1996년을 전후로 패닉의 <왼손잡이>와 서태지의 <시대유감>, 강산에의 <태극기> 같은 곡들이 주류시장에서 반향을 일으켰고, 사전심의제 폐지는 가요계 전반에 ‘불온함’을 확산시켰다. 민중가요부터 댄스곡에 이르기까지 정치와 사회, 개인과 섹스에 대한 직설적이면서도 은유적인 표현들이 다채롭게 등장했다. 물론 모든 게 순조롭진 않았다. 생산자들은 권력이 아니라 자기 검열과 대립하거나 타협해야 했다. 수시로 선정성을 들이대던 언론은 비로소 펜의 권력을 획득했다. 수용자들은 편견과 취향 사이에서 길을 잃곤 했다. 고단했다. 그러나 당연히 겪어야 했던 일이었다.
10. 광장 들썩인 바로 그 노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아무래도 한국의 21세기는 서울뿐 아니라 지역의 공공장소들을 ‘광장’으로 재해석했다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2002년 월드컵 응원과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무효 집회를 비롯해 미국산 수입 소 반대 관련 촛불집회로 야기된 현재 상황은 1980년대와 비교해서 본질적으로는 유사한 집회문화를 재현한다. 그때 광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흘렀다면 지금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가 흐른다는 게 차이다. 물론 의미심장한 변화다. 1984년 ≪노래를찾는사람들 1집≫과 1994년 ≪꽃다지 1집≫이 검열에 통과되어 합법음반으로 발매되었지만 천지인과 노래공장, 노래마을과 희망새, 천리마 등의 음반들은 여전히 불법 음반들이었고 연영석과 문진오, 류금신과 손현숙 등은 2000년이 다 되어서야 합법적으로 공개되었다. 한국은 1990년대 초반까지 <정은임의 영화음악실>에서 <인터내셔널가>나 <임을 위한 행진곡>이 방송되었다는 사실에 감동하던 사회였다. 그렇게 한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이제 가족과 함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부른다. 정말로 불온한 변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