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은 도도하고 바다로부터 오는 바람은 의기양양했다. 버릇대로 찌푸려 있을 고현정의 미간이 절로 그려졌다. 그녀가 출연하는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가제)의 오늘 첫 촬영지는 북제주군 한림읍 귀덕리에 자리한 강요배 화백의 작업실이다. 지도를 보니 조금만 더 해안을 따라가면 드라마 <봄날>의 촬영지였던 비양도도 멀지 않다. 애월항과 곽지해수욕장이 오른쪽 어깨 뒤로 스쳐가더니, 소복한 언덕의 품에 치대듯 안긴 작업실이 내려다보인다. 그늘진 평상은 예의 아침 집필 중인 홍상수 감독을 기다리는 스탭들 차지였다. 고현정은 키 작은 나무 밑에 앉아 <해변의 여인>에 이어 공연하는 동갑내기 김태우와 독설로 똑딱똑딱 탁구를 치고 있었다.“넌 왜 내가 하는 영화만 쫓아다니니?” “그녀에게 전해줘. 상대역이 너라고 연기 그만두진 말라고.” 2004년 말 모래시계를 뒤집고 배우로 돌아온 지 3년 반. 이제는 그녀의 나긋한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호통과 재담이 놀랍지 않다. 고현정은 더이상, 죽어가는 보디가드 백재희의 깜박이는 시야에 포착된 채 온 국민의 뇌리에 인화된 신기루가 아니다. <봄날>의 심지 굳은 정은은 철딱서니 없는 남자의 손목을 끌어다 그가 책임져야 할 사태 앞에 패대기쳤다. <해변의 여인>의 문숙은 “울지 않을 테니 사실을 말해줘”라고 다그쳤다. 물론 그녀는 엉엉 흐느꼈지만 남자가 방문을 나서자마자 뚝 그쳤다. <여우야 뭐하니>의 노처녀 병희가 자궁 모형을 끌어안고 소주잔을 기울일 때 또래 여성 시청자의 가슴은 적조했던 여고 동창의 안부를 들은 것처럼 훈훈해졌다. <히트>의 강력반장 차수경은 애인을 살인마 손에서 구출하고 물었다.“나 지금 키스하고 싶으면 저질인가요?” 아니, 정확히 말해 과거에도 고현정이 연약해서 아름다웠던 적은 없다. 도리어 그녀의 연기에서 일관되게 발견되는 품성은 모종의 ‘두목 기질’이다. 자기를 속이려는 상대를 측은하게 여기고, 존경할 만한 맞수한테 반하고, ‘내 사람’을 싸워서 지켜내려는 강자가 그녀다운 캐릭터다. 고현정이 무려 수사반장으로 분해 최초의 액션 연기를 한 형사물 <히트>가 막상 스스럼없었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히트>를 공동 집필한 김영현 작가의 눈도 고현정의 능란함과 강인함에 머물렀다. “전문직 종사자의 느낌을 자연스럽게 내는 여배우가 많지는 않다. 고현정씨는 큰 선을 갖고 있다. <모래시계>에서 여리지만 단호했던 혜린이 더 강인하고 삶을 터득한 30대가 되어 연기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또 다른 영화감독은 고현정의 강한 기운을 이렇게 묘사한다. “사람이 억지스러운 데가 없다. 일부러 낙천적이려고 애쓰거나 소탈한 척하지도 않고 너무 예민하거나 궁상을 떨지도 않는다. 도가 튼 것 같다.”
좀처럼 화장기를 들이지 않는 고현정의 얼굴은 천천히 그러나 끝없이 리듬을 타고 이지러졌다 피는 달과 닮았다. 그녀가 한번 지은 표정은 물이 빠지듯 서서히 사라지고 대화할 때면 거울이 되어 마주앉은 이의 표정을 그대로 비춰낸다. 그러나 그 활짝 열린 얼굴과 마주앉아 인터뷰하는 기자는 때때로 장갑을 낀 채 악수하는 촉감을 느낀다. 그녀의 떠들썩한 결혼과 이혼, 그리고 무엇보다 그 사이에 드리워진 침침한 공백은, 거대한 반점과 같아서 거론하기도, 못 본 체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미스코리아 나왔다가 방송하고 그러다 재벌가에 시집갔다가, 이혼하고 나와서 다시 연기를 하고. 제 전적이 너무 지루한 코스잖아요. 나쁘게 보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죠.” 단숨에 요약해버리는 쪽은 고현정이다. <여우야 뭐하니>의 대사가 스친다. “창피하면 씩씩해져야죠. 가만있으면 더 창피하잖아요.” 작품 수도 적고 아직 내가 배우인지 잘 모르겠다면서도 고현정은 연기의 각론을 건드리면 오래 쟁여둔 티가 역력한 생각을 풀어놓는다. 스물다섯살에서 서른네살까지 손과 발이 연기하기를 멈춘 10년 동안 그녀의 눈과 머리는 참으로 게걸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 앞에 있는 것은 아직도 갈증을 다 풀지 못한, 우듬지까지 물이 오른 배우다.
-지금 촬영 중인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가제)는 개런티 없이 참여하고 계십니다. 전작 <해변의 여인>에서도 통상 출연료보다 훨씬 적은 액수에 캐스팅에 응했다고 알고 있고요. 예술적 투자인 셈인가요? (웃음) =투자가 아니라 못 주신다고 하시잖아요. (웃음) 저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고요. 감독님이 직접 전화를 하셨어요. (홍상수 감독 말투로) “현정씨, 8월 며칠부터 9월 며칠까지 혹시 시간이 되시나요?” 그리곤 대답 안 듣고 죽 이어서 말씀하시더라고요. “제가 이번에 작은 돈으로 영화를 찍으려고 합니다. 한 10회차 정도만 나와주시면 되고, 죄송하지만 돈은 드릴 수가 없습니다. 도와주시겠습니까?” 그래서 “네” 했죠. 도와주겠냐고 물어보신 거잖아요. 그리고 홍 감독님 영화를 하고나면 진짜로 연기가 늘어요. 항상 제 안에 세뇌당하거나 최면당해 잠들어 있던 무엇을 확 일으켜주세요.
-지금 와서 돌아보면 영화 데뷔작이었던 <해변의 여인>이 자신에게 무엇이었다고 생각합니까? =(잠시 생각한다) 홍상수라는 감독과의 인사? 그 작품이 제 연기에 큰 변화를 초래하지는 않았어요. 드라마 연기할 때와 다르지 않은 자세로 임했는데, 관객이 웃음을 터뜨리는 걸 보면서 거꾸로 제 모습이 그간 많이 포장되어 비쳐졌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스크린으로 제 연기를 봤다고 느낀 차이도 없었어요. 저는 드라마를 볼 때도 확 당겨서 크게 보는 편이거든요.
-고현정씨를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아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고현정의 보편적 이미지와 자신이 아는 고현정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 모습을 전해 듣더라도 기존 고현정의 이미지를 더 좋아할 수도 있겠죠. 보는 이의 마음에 달린 거예요. 제가 보여주겠다고 정한 모습이 없으니까 사람들은 본인이 보고 싶은 것을 제게서 보는 거죠. 아는 만큼 볼 수도 있고요. 가령 저의 TV연기만 보신 분이라 해도 말끝의 여운이나 슥 지나가는 표정만으로도 저의 숨은 이면을 짐작하는 예도 있겠죠.
-대중적 이미지와 실제 모습 사이 간극이 유독 벌어져 있는 까닭은 뭐라고 보세요? 가만히 살펴보면 20대 초반의 연기도 청순미보다 현실적이고 당찬 면이 많았는데 말이죠. =제 결혼의 영향이죠. 닫혀버렸으니까요. 보고 싶어도 무엇인가에 의해 차단되어 못 본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준 인상이죠. 결혼생활 할 때는 친구도 거의 안 만났어요. 꼭 만나지 말라고 한 건 아닌데 그런 기대를 느꼈고 그래서 만나지 않게 됐어요. 게다가 간간이 흘러나가는 기사는 경호원이 어쨌다더라 하는 내용이니 상상할 소재는 툭툭 던져준 셈이잖아요?
이상하게 저는 혼자 하는 일이 이것저것 많아요
-맏딸이고 외동딸입니다. 혹시 “아빠가 주말마다 나만 데리고 여행 다녔다”는 <해변의 여인>의 대사는 당신의 경험에서 나온 건가요? =그 대사는 제 이야기는 아니에요. 부모님이 기대가 많으셨어요. 그것이 사랑이란 생각은 나중에야 했고 당시에는 부담스러웠죠. 제 능력 이상으로 기대를 채워드리려고 말썽도 안 피우고 철든 척하며 일찍 늙어 있었어요.
-어린 시절 친구에 따르면 말수가 적고 주로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하던데요. =지금 제 키(172cm)가 중1 때 자란 키예요. 전 그냥 큰 정도가 아니라, 너무 커서 이상한 아이였어요. 봄에 산 옷을 가을에 입지 못할 정도로 성장 속도는 빠른데, 보통 애들보다 밥을 더 안 먹으니 빈혈을 달고 살았죠. 모든 음식이 비위에 맞지 않아 괴로웠어요. 흰밥도 다 못 먹어 야단맞고 억지로 먹다가 토하기도 했고, 항상 머리가 아팠어요. 병원에서는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말만 들었는데 병명이 없는 거죠. 누가 뭐라고만 않는다면 며칠이라도 안 먹고 싶었어요. 김밥 한줄을 하루에 다 먹기 힘들었으니까요. 그러다 스물두살에 전남편을 만난 무렵부터 식욕이 나아졌어요. 그래도 약한 비위는 지금도 남아 있긴 해요.
-키가 눈에 띄게 크다는 건 2차 성징이 일찍 나타나는 여자아이로선 남자애들에게 놀림받는다는 뜻도 되잖아요. 정신적으로 조숙할 수 있는 계기도 되고요.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한명의 친구, 중학교부터 또 한명의 친구가 있었고, 대학 시절을 통틀어 한명의 친구가 있었어요. 일단 몸이 약해 잘 나가놀 수가 없으니 양보다 질로 사귀었죠. 절친한 친구라 해도 계속 뭔가를 함께해야 하는 스타일이면 제가 견디지 못해요. 이상하게 저는 혼자 하는 일이 이것저것 많아요. 그래도 고무줄놀이에는 참여를 했죠. 오래 못해서 그렇지 워낙 키가 되니까, 잘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하하.
-운동을 즐기지는 않는다는 사실은 유명해요. 그런데 일단 하면 잘한다는 말도 들었어요. <히트>의 정두홍 무술감독에 따르면, 보통 배우들이 두달은 훈련을 받는데 고현정씨를 첫날 시켜보고서 훈련 필요없겠다고 연출자에게 연락했다고 하더군요. 주먹 한번 질러보게 하면 알 거라고 하시던데요. =훈련을 안 받은 것치고 잘한다는 말씀이겠죠. 화면으로 보면 어설프잖아요? 예전에는 100m를 13.5초에 달렸어요. 오래 안 뛰어도 되니까. 반면 오래달리기는 못했고요. 넓이뛰기나 높이뛰기 선수로 뽑히기도 했고 초등학교에서는 배구, 농구 선수로 스카우트될 뻔도 했어요. 순발력은 있는데 몸이 약해 계속할 수가 없는 거예요. 뭐든 배우면 한순간은 잘하는데 관심이 없어서 오래 못해요.
-지속적으로 흥미를 유지하며 하는 일은 결국 연기뿐인 셈인가요? 하긴 배우의 일은 뭉뚱그려 말하면 ‘연기’지만, 거기 포함된 활동은 다양하잖아요. 말도 잠깐 타고, 그림도 잠깐 그리고, 음악도 잠깐, 조금씩 샘플링하면서 무엇인‘척’하는 셈이니까. =바로 그게 저랑 딱 맞는 거예요. 무엇인 척하는 것. 다만, 그렇게 척할 때 다른 사람들보다는 정확히 핵심을 찌르고 나오고 싶어요. 치고 빠지고, 얇고 넓게 사악 깔아놓는 거죠. (웃음)
-그렇다면 만사에 대체로 심드렁했던 건데 학교 다닐 때는 하루 중 어떤 시간이 제일 좋았어요? =학교에 있는 동안 좋은 시간은 없었어요. 아침에 몸을 일으켜서 나가는 일부터 힘들었으니까. 무엇보다 매일 똑같은 일을 한다는 점이 지겨웠어요. 속으론 정말 싫었지만 부모님 실망시켜 드리기는 싫고 할 일은 하는 성격이라 지각도 거의 안 했어요. 특별히 좋아한 수업도 없고, 점심시간은 떠드는 소리와 음식 냄새 때문에 어지러웠어요. 처음에는 교실을 나가 있었는데 그러다 들어오면 더 냄새가 심하다는 걸 알게 돼 나중엔 그냥 있었어요. 그리고 늘 불합리하다고 생각한 것이, 화장실에 다녀오기엔 쉬는 시간이 말도 안 되게 짧다는 거였어요. 애들이 늘 줄을 서 있고 교실이 4, 5층인데 화장실이 3층에 있질 않나 도무지 볼일을 못 봐요. 그래서 전 꼭 공부시간에 손들고 “화장실 다녀오겠습니다” 하고는 조용히, 여유롭게 갔죠. (좌중 웃음)
-이상한 애라고 수군거렸겠네요. =신경 쓰지 않았어요. 어려서부터 키를 줄일 수도 없으니 원래 어울리기도 힘들었고요. 초등학교 때 기를 쓰고 반장을 한 이유가 맨 뒷줄에서도 머리 하나 이상 튀어나온 제 모습이 싫어서였어요. 그나마 반장 돼서 제일 작은 친구 앞에 서면 덜 부자연스럽잖아요. 제가 다닌 중학교가 귀빈로에 있어서 대통령이나 국빈 지나가면 국기를 흔들러 나가곤 했는데, 아이들과 국기 흔들고 있으면 구경나온 동네 아줌마들이 그래요. “아유, 이 선생님은 어쩜 너무 앳되었다.” (웃음)
-남들이 자꾸 그렇게 말하면, 그 이미지를 자신이 내면화하기도 하잖아요? =세뇌당하는 거죠. 학교에 버스로 통학했는데, 학생표를 낼 때마다 의심쩍게 쳐다봤어요. 그게 싫어서 아예 두장을 내고 싶은데 엄마는 용돈을 더 주지 않잖아요. 스트레스받은 나머지 가끔 등굣길에 두개를 내버리고 아현동에서 개봉동까지 걸어가기도 했어요.
-1989년 미스코리아대회 출전은 여러모로 갑작스런 전환점인 것 같습니다. 유년기에 다른 사람들과 동떨어지게 만든 요소인 키와 외모를 적극 이용한 셈이고, 사교적이지 않던 아이가 간단히 말하면 남들에게 잘 보여야 하는 일을 시작한 거니까요. =저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믿지 못했어요. 중학교부터 단짝친구는 미쳤냐고 했어요. 그런데 저는 어떤 일을 해볼까 싶은 생각이 고개를 들면 대개 해버리는 편이에요. 결혼도 그랬죠. 아주 어렸을 때는 키가 크니 이 다음에 미스코리아 나가라는 말에 필요 이상 발끈했어요. 그런 ‘창경원의 원숭이’ 싫다며 되바라지게 화를 냈죠. 그런데 고등학교 다니면서 세상 지루하더라고요. 길게 기른 머리를 잘라버리려고 미용실에 갔다가 문득 미스코리아 나가란 말을 다시 들었는데 그때는 “진짜 내가 해도 될까?”싶으면서 확 재밌어지는 거 있죠? 또래들과의 키 차이가 중·고등학교 가면서 줄어들고, 그러면서 어째 좀… 지루한 감도 있었고. (일동 폭소)
배우라는 일은 당해야 해요
-동국대 연극영화과로 진학했는데요. 정규 연기교육이 배우로서 형성되는 데에 제공한 요소가 있나요? =수업이란 진도가 있고 매 시간 눈에 보이는 내용이 있잖아요. 근데 그건 형식일 뿐이고 동국대 안민수 교수님이 제게 주신 것은 굉장히 깊은 중심이었어요.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는 상태를 만들려면 너의 삶 자체가 어떠해야 한다, 육체도 그렇지만 정신도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죠. 비록 수업 열심히 받은 학생은 아니었지만 저는 그 떨림이 왔고 굉장히 행복했어요. 그런 거 있잖아요? 내 머릿속에서 뿌옇게 서린 생각을, 공부 많이 한 사람이나 어휘력 좋은 사람이 딱 문장화해줄 때의 시원함! 미스코리아가 되고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를 하면서 제가 연기도 아닌 짓거리 같은 걸 할 때 주변에서는 곧잘 한다 그랬어요. 하지만 어떤 장면에서 무엇을 할 때 내가 왜 그렇게 하는지 정당성을 알지 못했죠. 그 근거를 교수님이 주신 거죠. 내가 하려는 일이 배냇짓 같은 게 아니라 근거가 있다는 것. 반면 그런 가르침을 잘 못 받아들이면 말발만 늘고 합리화만 늘어날 위험성도 있어요.
-경험으로 체득하지 않고 신입생 시절에 연기철학을 이론으로 받아들이면 위험할 수도 있겠죠. =사실 자기 방어와 자기 합리화에 그만큼 훌륭한 무기가 없으니까요. 그 안에서 굉장히 편안하고 안락할 수 있죠. 그런데 배우라는 일은- 제가 배우가 어쩌고 하는 게 우습지만- 당해야 해요. 깨지고 바닥을 보고 만신창이가 되고 그 기분이 어떤지, 거기서 이만큼 그리고 다시 저만큼 일어나려면 얼마나 감정을 추슬러야 하는지 겪어보는 게 제일 좋아요. 그걸 잘 기억해야 하고요. 그런데 중요한 건 기억은 그 감정을 쓸 수 있는 상태까지만 만들고 연기는 감독이 준 상황 안에서 매번 새롭게 해야 한다는 점이에요. 예를 들어 뺨 맞는 장면에서 엄마한테 맞았을 때 기억한 정확한 감정을 대뜸 내놓으면 의문을 갖지 않게 돼요. 감독이 왜 그 신을 거기 넣었는지 앞뒤를 보지 않고 그 신만 볼 때 배우들의 문제가 생겨요. 기억된 감정이 있으니 갑자기 거기서 물을 만나 잘해버리는 거죠. 그러면 뒤에 가서 더 강렬한 신은 어쩌려고요.
-지금 말씀하신 것 같은 생각은 언제 했어요? =결혼생활 하는 동안요. 말하자면, 저는 한동안 완전히 다른 세계에 가 있었던 거잖아요? 정확히 말하면 연예계를 흥미롭게 보면서도 아니라고 부정하는 곳이죠. 그런 상황에서 부딪히고 깨지면서 보이기 시작한 게 있어요. 어떤 상황 내부에 들어가 있으면서 동시에 빠져나와 생각하고, 다시 그 장면을 풀숏으로 넓게 보기도 하고 내부로 쑥 들어가서 보는 상황에 많이 단련이 됐어요.
-지나가는 행인 역도 좋다고 하면서 <여명의 눈동자>에 합류했다는 기사가 있었어요. 1991년인데 그 무렵부터 벌써 좋은 작가, 감독과 작업하고 싶다는 욕심을 냈나 봅니다. 컴백 이후에도 검증된 작가와 감독에 대한 욕심이 커 보이고요. =제가 좋아했던 드라마를 돌아보면 황인뢰, 김종학 감독님 작품이 많았어요. 그런데 김종학 감독님이 <여명의 눈동자>를 시작한다는 거예요. 그맘때 저는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외에 경력도 없는 아무것도 아닌 연기자였고요. 단순히 저런 때깔, 저런 그림 안에 나도 들어가고 싶다는 소망이었어요. 정말 배가 고픈데 그 허기를 이왕이면 내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채우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연기에 복귀하면서는 그 욕구가 극에 달했던 것 같아요.
-<작별> <여우야 뭐하니>에서 공연한 윤여정 선생님과 친분이 깊죠? =윤 선생님과 인연은 <여자의 방>에서 시작됐어요. <작별>에서 제 어머니로 나오셨고요. 극중 어머니로 분한 선배를 계속 엄마라고 부르는 배우도 있지만, 저는 깍듯한 인사 이상 살갑게 구는 법을 몰라요. 그런데 결혼 초 한 식당에서 우연히 선생님을 만났어요. 석달에 한번쯤 댁으로 찾아뵙고 편안히 이야기를 많이 나눴죠. 이문구 선생의 소설을 선생님이 주시면 읽고 와서 제가 “이건 무슨 말이에요?” 묻기도 하고. 그래서 선생님이 좋아요. 보통 배우들의 대화는 아주 원색적이고 직접적이라 제 성격엔 빨리 지루해지는데 선생님은 뭔가 매개체를 주세요. “얘, 이 포도 봐라?” 이러면서 포도 이야기로 한 시간이 가는데 간접적인 그 대화 안에서 뭔가 풀리는 게 있어요. 어차피 솔직하게 다 말 못할 거면 터놓고 대화하는 척하기보다 상관없는 이야기를 깊이 파고드는 쪽이 낫다고 생각해요.
-두분이 작품이나 연기 이야기를 할 때는 신랄할 거라는 상상이 드는데요. =완전히 가루로 만들죠. (웃음) 서로의 연기에 대해서도요. 그런데 정말 그 사람이 고칠 수 없는 부분은 얘기해봤자 기분만 상해요. 대화란 진짜 고도의 에티켓이 필요해요. 이번 영화에서 공연하는 김태우씨랑도 그렇지만 얼핏 아프게 주고받는 듯해도 덜 지루한 대화가 좋아요.
-2004년 연기자로 복귀한 이후 공연한 후배들이 인사치레일지 몰라도 공히 “고현정 선배가 알게 모르게 도움을 주셨다”는 이야기를 했더군요. 배우가 다른 배우를 돕는다는 게 어떤 식으로 가능한지 궁금합니다. =그 친구들에게 스스로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부분들이 있었어요. 대개 사람들은 일터와 전선에 나가면 약점을 일단 가리고 보잖아요? 저는 그러지 말라고 했어요. 다 까라. 감추는 데에 에너지를 쓰다가 놓치는 것도 많고 이 직업이 감추려는 의도 자체를 다 들키는 일이다. 그러느니 다 까고 도움을 받아라. 네가 생각하는 약점이 파란색이야? 그럼 파란색을 너의 온몸에 칠해봐. 그러고 나면 뭘 할 수 있을까?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한국에서 연기생활 하는 구조 자체가 약점을 숨기다보면 얻는 것도 없거든요. 제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너 혹시 알고 보니 똑똑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거니? 나도 그런 거 있었거든. 똑똑해지고 싶으면 공부를 해야 하는데 공부하긴 싫지? 그렇지만 살짝살짝 “저 사람 의외인데?” 하는 반응을 얻고 싶은 거지? 그러려면 이렇게 저렇게 하면 돼. 근데 너 그게 굉장히 시시한 일이라는 건 알지? 그런 이야기요. 배우들이 그렇게 시시하고 약한 데가 있어요. (웃음)
-앞서, 연기를 떠나 결혼생활을 하는 동안 오히려 연기에 대해 알았다고 말씀하셨어요. 당신이 배우로 살지 않은 10년을 단절로만 생각하면 인터뷰가 아주 힘들 것 같아요. 그 시간들도 지금 배우로 일하는 고현정이라는 사람 안에 포함돼 있다는 관점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맹세코 10년간 얻은 것만 있어요. 만약 제가 <모래시계> 이후 연기를 계속했다면 웃기지도 않은, 구경거리 인간이 돼 있을 거 같아요. 배우는 성취도가 높은 일을 하다보니 한 일에 비해 많은 걸 받기도 하고, 연기를 평가받기보다 인기라는 뿌연 것에 기대게 돼요. 결혼생활을 하면서 자신에 대한 평가를 아주 인색하게 내리게 됐어요. 밖으로부터 요구받는 행동을 하면서도 상황 속에서 빠져나와 나를 객관화하는 법을 단련한 좋은 훈련 기간이었어요. 그리고 제가 그 사람의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이, 너무 다행스럽고 좋아요. 함께할 수 없는 상황이 있었던 것이지 지금도 내가 다시 결혼을 생각하고 아이를 낳을 만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해요.
-단순히 말하자면, 상류층 생활을 하면서 보통 사람이 접하기 어려운 좋은 곳 많이 가보고, 좋은 것 많이 보고 듣고 입고 맛보았을 텐데요. =예전에는 제가 그림을 몰랐어요. 10년 동안 완전히 빠질 수 있던 대상이 그림이에요. 일단 집 안에 막 걸려 있고 몇달에 한번씩 교체되니까요. (웃음) 집에 걸어놓았으니 누가 물어볼 텐데 그때 몰라요, 그냥 걸어놨어요 하면 곤란하죠. 처음에는 타의로 시작했지만 공부하다 보니 마음 둘 데가 거기였어요.
-퍼포밍 아트를 정식으로 배우고 싶어서 2년 동안 공부해 국내 대학원에 진학하려고 한 적도 있었죠? . =그림들을 많이 보다보니 그림들을 비디오로 찍어서 공간 전체에 프로젝터로 쏘고 거기서 영감을 받은 무용을 공연하는 작업을 하면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매체를 혼합하고 싶기도 하고, 섞인 중에 한 요소를 빼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았어요. 알고 보니 퍼포밍 아트라는 분야가 있더군요. 극장이나 공간에 대한 욕심이 있어서 사정이 되면 언젠가 운영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했죠. 그러려면 공부가 필요할 것 같아 진학을 준비했는데 기사가 나오면서 (집안에서) 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해 받았어요. 아쉬웠죠. 회화보다는 설치쪽을 더 좋아해요. 호들갑스런 표현일지 몰라도 회화는 너무 푹 젖어드니까 제가 흔들려요. 하지만 설치미술은 사람을 심하게 휘어잡지 않으면서 자극하고 신선하게 환기시켜줘요.
야단을 치면 쳤지 싸우는 건 잘 안 해요
-큰 키가 직업적으로는 어떤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여배우에게 큰 키는 그리 도움은 안 돼요. 오페라나 공연예술쪽이라면 도움이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제가 사람들 앞에 서는 건 카메라 앞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아요. 대학 시절 학교 연극을 몇편 했는데 관객 반응이 일일이 보이고 들려서 심하게 민망했어요. 무대 위에서는 관객의 반응에 대해 딱 닫고 집중해서 내 페이스를 잃지 말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요. 객석에서 웃음이 나오면 그때부터 웃은 관객과 같이 가면서 제 연기가 이상해지는 거죠.
-<히트>의 마지막 회에서 대치한 연쇄살인범을 “아니, 넌 그냥 찌질한 애정결핍환자일 뿐이야”라고 냉랭하게 일축할 때 저런 식으로 평소에 말다툼을 한다면 꽤 무섭겠구나 싶었습니다. 화가 나면 흥분하나요, 가라앉나요? =싸우는 건 잘 안 해요. 일방적으로 야단을 치면 쳤지. (좌중 폭소) 입 열지 않고 죽 보고 있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이야기할 뿐 싸우지는 않아요. 따지지도 않아요. 반면 제 자신은 남한테 그런 불쾌한 일을 당하고 싶지는 않아서 야단맞을 행동이나 책잡힐 일은 안 하려고 애쓰죠. (웃음)
-고현정씨의 연기는 감정의 결이 풍성한 스타일이에요. 근본적으로 멜로드라마틱해요. 작은 연기로도 배우가 느끼는 바를 쉽게 전달받을 수 있죠. 그러다보니 작품의 인상에 강렬한 영향을 주기도 하고요. 그런가 하면 안에 담은 정서가 워낙 다양하다 보니 배우 본인이 새로운 자극을 받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좀 신파적이죠? 진하면 안 좋은데. (웃음) 그런데 내 안에 여러 가지 정서가 있다는 건 어디까지나 말이고 생각일 뿐이에요. 그래서 연기가 재밌어요. 연기란 그것을 실제 감정과 행동으로 만들어내고 감독의 힘도 빌려서 완결짓는 실천이니까요. 그렇게 실천의 차원으로 옮겨갈 때 머릿속에 있던 것과는 다른 연기가 나오기도 하고요.
-보는 이의 감정을 흔드는 센 연기를 하다보니 말과 행동이 많은 역할보다 고현정씨의 어떤 모습을 흘깃 바라봄으로써 표현하는 작품을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해변의 여인>에서 벚꽃을 만진다거나 혼자 숲길을 걷는 장면이 그런 예였죠. =선배들이 들으면 욕하시겠지만 전면에 나서서 행동이 5할 이상을 차지하는 연기는 지금까지도 많이 한 것 같아요. 부정확한 표현이겠지만 ‘순한’ 연기를 많이 하고 싶어요. 허진호 감독님 영화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그래서 있었고요.
-<해변의 여인>에 매혹적인 미스터리 같은 장면이 있어요. 문숙(고현정)이 다른 여자와 술을 마시며 남자의 거짓말을 안 다음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차를 세우고 숲길을 헤매는 장면요. 그 신은 남자가 시나리오 트리트먼트를 완성하는 장면과 교차편집돼 있는데요. 영화 전체의 인상을 많이 바꿔놓은 장면이었어요. 그때 무슨 생각을 한 걸까요? =실제로 저야 “벌레가 많네. 이러다 밤새겠다” 하는 생각을 했죠. (웃음) <해변의 여인>은 이미지와의 싸움이 중요한 내용이었잖아요? 문숙 역시 자기 안에서 올라오는 전형화된 생각을 극복해보려고 한 것 같아요. 제가 연기를 못해 잘렸겠지만, 원래는 숲으로 들어가기 전에 안에 있는 것을 우어어 토해내듯 소리지르는 장면도 있었거든요.
-<해변의 여인> 마지막 장면은 개펄에 빠진 문숙의 차가 모르는 남자들의 도움으로 빠져나오는 장면입니다. 그처럼 잘 모르는 사람들의 사소한 친절로 마음의 매듭이 풀린 경험이 혹시 있나요? =많아요. 그리고 자주 울컥해요. 이런 것 때문에 세상이 돌아가는 걸 거야, 그래 그냥 이렇게 사는 거야 하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결말장면을 감독님한테 받고 깜짝 놀랐죠. 우리가 친구나 지인과는 만남의 수준보다 깊은 이야기를 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도 해보곤 하지만, 가끔 아주 단순하게 그런 일로 마음이 정리가 될 때가 있잖아요.
-한국의 아주머니들에 대해 주책이라고 타박하는 이야기도 많지만, 그분들이 전철에서 서 있는 제게 저쪽 빈자리에 어서 앉으라고 챙겨줄 때, 이상한 위로를 받을 때가 있어요. =제가 씨족사회라는 말을 잘 써요. 내 삼촌은 저 사람의 사촌일 수 있고 가족적인 기준으로 관계를 따지는 문화가 동양에 있잖아요. 그런데 요즘에는 나이프 포크 문화인 서구식 에티켓을 강조하면서 그것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나 윗세대를 질책하듯 보는 시선이 있어요. 마치 그것이 사람의 품성이나 수준을 가리는 척도처럼 보는 게 아쉬워요. 행동의 뿌리는 못 보고 가지에 대한 평가만 무성한 거죠.
-<여우야 뭐하니>의 고병희는 어수룩하고 순한 여자인데 바위처럼 단단한 구석이 있어서 재미있었어요. 예를 들어 성격 좋은 의사의 구애를 받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결혼하려고 하다가도, 마음의 진실을 일단 깨닫고 나자 좋아하는 남자를 보러 환자복 바람으로 병원에서 뛰쳐나오는 강단이 있잖아요? 변변찮은 직장이라고 불평해놓고선, 위기가 닥치니 지켜내려고 애를 쓰는 모습도 그랬고요. =병희를 많이 좋아했어요. <여우야 뭐하니>는 시놉시스를 볼 때부터 재미도 있고 뜻도 있고 현실적이면서도 꿈을 줄 수 있는 드라마라고 생각했어요. 당신의 아픔은 당신 것만이 아니라 내게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이야기였어요. 병희는 대표성이 있는 캐릭터 같아요. 직장, 남편, 남자친구, 부모님 등등 평소에 불평하다가도 무슨 어려운 일이 생기면 일단 챙기고 돌보는 것이 한국 여자들이 아닌가 싶어요. DVD를 위한 인터뷰에서 제가 그랬어요.“그냥 사랑하세요.” 삶의 용기를 말한다는 점에서 의외로 <모래시계>와도 통하는 면이 있는 작품이었어요. 병희의 감춰진 강인함이 드러나는 후반으로 가면서 김도우 작가, 권석장 감독께 죄송하기도 했어요. 다큐멘터리적 현실성을 느낄 만한 배우가 했다면 작품의 참신함이 부각됐을 텐데 이런저런 이미지가 붙어 있는 고현정이 함으로써 작품의 미덕이 가리지 않았나 걱정됐거든요.
-<여우야 뭐하니>에서는 의식적으로 화장을 하지 않은 건가요? 좀 과장하면 “나 예쁘게 보이는 것 신경 쓰지 않아요”라고 들이대는 느낌마저 있었거든요. (웃음) =그런 의도로 비쳐지는 것도 싫어요. 고백하는데, 정말 의식적으로 화장을 안 한 게 아니라 부지런하지 못했어요. 밤샘 촬영에 들어가면서 미용실 안 가는 대신 한 시간이라도 더 자는 쪽을 택한 날이 많았어요. 그러다 중반이 넘어가니까 아예 대본에 “화장을 좀 한다”고 명시돼서 나오더라고요. (웃음) 본래 색조화장을 좋아하지 않아요. 화장을 하면 도시적이고 세련돼 보여야 하는데 저는 효과가 덜 해요.
-<히트>를 공동집필한 김영현 작가는 주인공 강력반장 차수경이 긍정적으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인생에 대한 짜증을 일에 대한 몰입으로 발산하는 인물로 설정했다고 해요. 그래서 드라마 초반에 연쇄살인에 집착하며 소리 지르고 고집 피우는 장면이 많았는데 그 탓에 시청자는 배우가 짜증나는 연기를 한다고 반응해서 고현정씨에게 미안했다고 하더군요. =제가 소화를 제대로 못한 거죠. 소리를 지르더라도 요철을 줬어야 하는데. 드라마란 신이 축약적이고, 순간순간을 상품화해야 하는 면이 있거든요. 채널이 돌아가니까요. 배우들이 흔히 인터넷 반응을 보고 상처받는다고 하는데 저는 심하진 않아요. 제게 가까운 사람이 실망하고 화내면 흔들리죠. 시청자를 소중히 생각 안 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분들이 어떤 분들인지 잘 모르잖아요. 개중에는 그날 기분이 좋지 않아 악평을 하신 분도 있을 테고. 제가 일일이 반응에 신경을 쓰면 애정을 갖고 보시는 분들에게 에너지를 다 쏟지 못할까봐 걱정되기도 하고요.
엄마가 하고 있는 일을 보여주고 싶어요
-사람을 들여다볼 줄 안다고 생각하는 표가 나요. 상대를 신뢰할 수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는 기준이 있나요? =어렸을 때는 상대를 믿을 수 있는지 여부를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그러나 결혼하고 얼마 뒤부터는 필요없다고 깨달았어요. 상대를 신뢰할 수 있느냐를 판단하려는 건, 사실 자기가 좀 편하고 싶어서 맘을 놓고 싶어서이거든요. 그래서 안 될 건 없지만 더 중요한 건 내가 잘사는 거예요. 기준을 높여서 나를 엄히 관리하면 상대가 어떠하건 좌우되지 않으니까요.
-연기할 때나 대화할 때 상대방 눈을 뚫어지게 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대화할 때 장난스런 이야기건, 어제 있었던 일화건, 꿈 이야기건 그냥 상황 때문에 꺼내는 이야기는 별로 듣고 싶지 않아요. 그럴 바엔 차라리 조용히 있었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그런 말들은 어차피 잘 귀에 들리지 않거든요. 하지만 진짜 자기 생각을 조금이라도 꺼내면 갑자기 확 몰입이 돼요. “야 모두, 조용히 해봐, 뭐라고?” 하면서.
-양쪽 머리를 쓸어 귀 뒤로 넘기는 동작도 자주 해요. =(머리를 넘기며) 이거요? 마음을 다잡는 거예요. “아, 또 너무 느슨해졌나?” 하면서 다시 긴장하는 거죠.
-이야기를 하다보면 쓰는 어휘가 약간 특이해요. 70년대 작가들의 소설에서 보는 ‘엽렵하다’ 같은 단어도 자주 쓰고 사자성어도 튀어나오고요. 약간 문어체랄까. 혼자 글을 쓰기도 하나요? =일기는 어려서부터 썼어요. 웃기지도 않은 것들을 자꾸 적죠. 전남편한테 노친네 같은 말 좀 쓰지 말라고 혼나기도 했어요. ‘생경스럽다’라든가 ‘적확하다’ 같은 말 썼다가 지금 내외하는 거냐고, 핀잔도 듣고요. 저는 할머니들이 생활에서 쓰는 말들이 참 좋아요. 달이 차면 기운다거나, 친손자 손잡고 걸리고 외손자 업으면, 업은 외손자 발 시릴까봐 걸린다거나, 처삼촌 벌초하듯 한다거나 하는 그런 말들이 좋아요. 속담, 고사성어, 한시가 좋아서 이병한 선생이 쓴 <치자꽃 향기 코 끝을 스치더니> 같은 책은 밑줄 그어가며 봤어요.
-힘든 나머지 머리로는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극단적인 행동이나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해본 적이 있나요? =남에게 기대지 않는 편이라고 해서 그런 일을 아예 안 하진 않아요. 단, 사고치고 나서 도와달란 소리는 안 하는 편이죠. 기본적으로 곪은 건 언제 터져도 터진다고 생각해요. 홍역 치르듯 남들이 해보는 일을 시기만 다를 뿐 한번쯤 다 하긴 한 것 같아요. 보통 10대에 치는 사고를 30대에 친다거나. (웃음)
-여전히 기자들한테 만나기 힘든 상대로 여겨지고 영화제 참석도 한 적이 없는데 한달 전 홍대 앞 상상마당에서 <해변의 여인> 상영회 뒤 관객과의 대화에 나섰습니다. =홍상수 감독님이 사정이 있어서 갈 수 없다고 제 형편을 물으셨는데 마음이 훅 갔어요. 관객이 스무명 남짓 계셨는데 무척 좋았어요. 막간을 이용해 10분쯤 진행한다고 하기에 10분이면 인사하다 끝날 텐데 20∼30분은 해야겠다고 말씀드렸어요. 개봉이 한참 지났고 인기 높았던 영화도 아닌데 고마웠어요.
-만약 몸에 문신을 새긴다면 어떤 말이나 도안을 넣고 싶은가요? =배우가 아니라면 문신 하고 싶어요. 물고기 도안이나 물고기와 관련된 그림을 새기고 싶어요. 제 별자리가 물고기자리이기도 하고 거대한 애부터 작은 애까지 다양한 어종의 생김새가 매력있어요.
-최근 개봉영화 중 <원티드>를 재미있게 봤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라디오에 나와서 안젤리나 졸리 예찬도 하셨죠? =안젤리나 졸리한테는 유감이 많아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배우가 브래드 피트거든요. 쉽게 이혼할 것 같지도 않고. 어머나, 결혼 안 했어요? 그게 더 위험해요. 얼마나 좋으면 결혼도 안 하고 그렇게 살겠어요? (웃음) <원티드> 같은 영화에 나온 졸리가 좋다는 뜻이었어요. 대단한 설득력이잖아요. 다른 여배우들은 총 쏘는 액션 연기를 하면 약간 “애쓴다”는 느낌이 있는데 졸리는 감정이입에 전혀 장애물이 없어요.
-그 밖에 대단하다고 인정하는 여배우가 달리 있나요? =<아임 낫 데어>의 케이트 블란쳇을 보면서, 저 사람이 정말 밥 딜런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존 카사베츠 감독의 영화를 이상하게 다 좋아하는데 <영향 아래 있는 여자>(A Woman Under the Influence) 의 지나 롤랜즈 연기도 좋았고요. 대체 뭘까요? 그런 영화가 좋다는 건? 시드니 루멧 영화도 좋아해요. <노팅힐> 같은 영화도 좋아요. 참, <노팅힐>을 한국에서 만든다면 누가 연기자로 좋을 것 같아요?
-글쎄요. (잠시 생각) 이영애씨와 하정우씨요? 만약 고현정씨가 줄리아 로버츠 역이라면, 송강호씨와 조합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웃음) 그러고보니 얼마 전 케이블TV에서 강수연 선배와 김갑수 선배의 <지독한 사랑>을 보면서 문득 송강호 선배와 저런 작품을 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네요.
-현재 자신에게 들어오는 일과 기회에 만족하나요? =아니요. 음, 이건 작은 바람인데… 이제 제 아이들이 많이 컸잖아요? 조금 더 매체에 노출되고 싶어요. 되도록 많이 TV에 나와서 아이들에게 엄마 모습과 엄마가 하고 있는 일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것이 여러 가지로 지금 제 상황에서는 취할 수 있는 건강한 방법인 것 같아요.
-이제는 웬만한 일을 겪어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있나요? =아니요. 늘 힘들고, 일이 닥칠 때마다 힘들 거예요. 예감인데요. 제가 마흔다섯 아니 쉰살이 넘으면 삶의 질이 좋아질 것 같아요. 여성성이 줄어들고 나면 편할 것 같아요. 지금은 필요하지 않은 곳에 힘을 써야 할 때가 있거든요. 저 혼자 자유롭다고 해봤자 먹히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이고요. 만약 제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며 살아간다면 쉰살 이후로 괜찮을 것 같아요. 아이들 이야기를 자꾸 해서 그렇지만 다시 만났을 때 아이들 눈에 엄마가 산뜻했으면 좋겠어요.
-언제나 아이들의 시선을 상상하면서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부모님으로부터 부모가 사는 모습이 자식 인생에 영향을 준다는 말씀을 많이 들었어요. 어찌됐건 저도 부모가 됐고 게다가 저는 못 기르고 나왔잖아요. 너무 의식해서 어깨에 짊어지는 것도 불필요하지만, 하여튼 이제는 계획을 갖고 구체화하면서 제 삶을 잘 살고 싶어요.
追伸 한치가 맛있다는 횟집 평상에 세 남녀가 마주앉은 신. 스크립터의 공책에는 테이크 번호가 23번까지 적혔지만, 수평선에 밤이 내리도록 감독은 온전히 흡족한 장면을 얻지 못했다. 이튿날 재촬영이 결정됐다. 김태우, 문창길 두 배우와 더불어 A4 용지 반장 길이의 대사를 단숨에 쏟아내야 했던 고현정도 녹초가 됐다. 촬영 구경에 나선 동네 주민 중에는 사내아이를 안고 나온 아빠가 있었다. 아기의 보드라운 살성과 향기라면 어쩔 줄 모르는 고현정이 언제 기진맥진했냐는 듯이 환해졌다. 한손을 씩씩하게 휘두르며 노래를 불러주는 예쁜 ‘아줌마’한테 아기도 혹했다. 제법 묵직한 꼬마를 어여차 안아 올린 고현정은 천장에 닿도록 둥둥 어르며 도무지 내려놓을 줄 몰랐다. “민형이에게. 건강하게 크기를”이라고 사인한 그녀는 성에 차지 않는지“고양이도 그려줄까?”제안했다. 그리고 다짐하기를 잊지 않았다.“이건 민형이 거니까 아무도 손대면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