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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에트 스타일의 ‘환상특급’ <제로 시티>
이영진 2008-09-10

<제로 시티> Zero City 카렌 샤크나자로브 | 소비에트 연방 | 1988년 | 103분 | 컬러 | 칸 감독주간 40주년 특별전

기술자 바라킨은 에어컨 부속품 납품공장이 있는 마을 ‘제로 시티’에 도착한다. 그런데 이 마을, 뭔가 이상하다. 납품공장 여비서는 나체로 타이핑을 하면서 손님을 맞질 않나. 잠깐 들른 식당에서는 정성스레 준비한 디저트를 맛보지 않았다고 주방장이 총으로 자살하는 소동까지 벌어진다. 바라킨은 모스크바로 서둘러 돌아가려고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바라킨은 평생 이 마을에서 살다 죽을 것이라는 아이의 예언을 듣고 코웃음치지만, 얼마 후 목숨을 끊은 주방장이 당신의 아들 아니냐는 경찰의 심문까지 받게 되고 제로 시티에서 빠져나가지 못한다. <아이 위클리>가 ‘소비에트 스타일의 <환상특급>’이라고 소개하기도 한 영화는 넌센스의 연속이다. “말도 안돼”라고 주인공이 외치는 순간 더 어이없는 상황들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제로 시티>는 스탈린 이후 관료제 아래에서 말살된 개인의 정체성을 비꼬는 대목들로 가득하다. 제로 시티는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 기괴한 초현실의 상황을 잉태한 아이러니한 도시. 위대한 미래를 예언했던 역사적 영웅들은 초상화로 박제되어 침묵할 뿐, 바라킨은 제로 시티에서 초점 잃은 눈으로 매장된다. 원점에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되, 목적지를 알지 못하고 경주에 내몰리는 인물들의 슬픈 운명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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