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사람들
[히구치 신지] “원작을 해칠까 부담스러워 도망치고 싶었다”
강병진 사진 오계옥 2008-09-09

제2회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에 초청된 히구치 신지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의 <숨은 요새의 세 악인>을 리메이크한 히구치 신지 감독이 한국을 찾았다. 제2회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 개막작의 감독으로 초청된 것이다. 우리에게는 <일본침몰>의 감독으로 알려진 그는 “누가 만들어도 원작을 해칠 게 뻔한” 이 프로젝트를 맡게 된 배경을 농담조로 설명했다.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사무실에서 맨 끝자리였는데, 앞에 있는 10명의 사람들이 길을 비켜주지 않아서 연출을 맡을 수밖에 없었다. (웃음)” 결국 히구치 신지는 마쓰모토 준과 나가사와 마사미를 데리고 1958년 영화를 정확히 50년 만에 재현해냈다. 인터뷰가 마무리될 무렵, 그는 이 프로젝트의 연출을 맡을 수밖에 없었던 진짜 이유를 밝혔다. “옆에 있는 야마우치 아키히로 PD의 선조가 야마우치 가제토요라는 유명한 사무라이다. 칼을 들지 않고도 사람을 베어버렸다더라. 너무 무서워서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웃음)”

-왜 도망치고 싶었나. =일단 나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팬이다. 그처럼 훌륭한 영화를 많이 만든 사람의 작품을 다시 만들때 실패는 불 보듯 뻔하다. 원작을 해칠 게 당연하니까. 그래서 너무나 부담스러웠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어떤 점을 좋아했나. =그의 영화의 활기있는 인물들이다. 그의 영화를 보면서 처음으로 영화에는 인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같다. 아마 당신은 자막으로 영화를 보기 때문에 모르겠지만 일본인에게는 영화의 대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어떤 인물이든 일단 막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거든. (웃음) 그래도 그런 느낌이 살아 있는 게 매력적이다.

-당신이 만든 영화는 원작에서 활극의 느낌만을 가져왔다. 리메이크를 구상하면서 맨 처음 고민했던 것은 무엇이었나. =나 역시 캐릭터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원작을 사무라이의 관점에서 연출했다. 그 역시 사무라이 가문의 후손이다. 그러다보니 신분이 낮은 사람은 우스꽝스럽게 묘사됐는데, 나는 거기서 약간의 위화감을 느꼈다. 20살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윗사람에게 꾸중을 듣던 나는 어떤 관점에서 봐야 할지를 생각했고, 그래서 낮은 신분의 관점에서 보자고 했다.

-영화를 만들면서 구로사와 아키라와의 공감을 느낀 적이 있었나. =주요 인물들이 나뭇더미를 등에 지고 걷는 장면이 많다. 그런데 배우에게 나뭇더미를 지게 했더니, 화면 안에 사람들이 많이 못 들어가더라. 이걸 어떻게 찍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원작을 봤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어떻게든 찍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는 아예 나뭇더미의 양을 줄여서 찍었더라. 영화를 보다가 “이런 약아빠진 아저씨!”라고 외쳤다. (웃음)

-극중 사무라이의 모습이 <스타워즈>의 다스 베이더와 무척 흡사하더라. <스타워즈>도 원작에서 그 모습을 가져왔겠지만, 리메이크작은 <스타워즈>에서 가져온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 시대 사무라이의 투구는 당시 스페인이나 포루투갈에서 썼던 투구를 가져와 변형한 것이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종류가 수만 가지였다. 영화에 나온 건 내가 고른 것이다. <스타워즈>의 다스 베이더가 일단은 인상적인 악인이기 때문에 비슷한 느낌을 생각하기는 했다. 하지만 정말 똑같은 모습을 가져오려 했던 건 아니었다.

-다음 작품은 어떤 건가. =아직 밝힐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만든 것 중 가장 힘들고 큰 영화가 될 것 같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