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지상에서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됐다. 동명의 애칭으로 유명하던 할리우드 최고의 전문 성우 돈 라폰테인이 지난 9월1일 68살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의 소속사는 라폰테인이 지난 8월 LA의 한 병원에 폐질환으로 입원해 투병 중이었으며, 결국 합병증으로 숨졌다고 전했다.
33년 동안 <대부> <터미네이터> <배트맨 리턴즈> 등 5천편 이상의 영화 예고편에 출연한 라폰테인은 목소리만 들어도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몇 안 되는 성우 중 한명이었다. 영화 예고편의 제왕답게 그가 가장 자주 사용했던 말투는 “~하던 세계…”(in a world where…)였으며 이는 수많은 코미디언과 언론이 지금까지 즐겨 사용하는 유행어로 자리잡았다. 늘 리허설도 없이 10분 남짓한 짧은 시간 안에 완성도 높은 작품을 내놓았기에 영화사들은 목소리 녹음이 필요하면 앞다투어 라폰테인을 찾았다. 투병 전까지 한편당 2천달러의 돈을 받으며 하루 평균 10편 미만의 작품을 녹음했다는 일화는 인재 많기로 소문난 할리우드에서 그가 얼마나 독보적인 존재인지 알 수 있게 한다. 한편 라폰테인에 대한 사용자들의 무한 신뢰는 ‘신인을 채용해 모험을 하기보다 믿을 만한 사람을 꾸준히 기용하는 게 낫다’는 뜻의 ‘라폰테인 효과’란 용어를 낳기도 했다.
돈 라폰테인은 처음부터 성우가 될 생각은 아니었지만 ‘될 성부른 떡잎’이었다. 오디오 엔지니어로 일하던 1965년의 어느 날, <카사 그란데의 총잡이>라는 서부극 예고편의 내레이터가 오지 않자 그는 임시로 투입돼 첫 녹음을 마쳤다. 할리우드의 대형제작사 MGM이 이 아마추어의 작품을 지적 한마디 없이 받아들였으며, 굵고 깊은 그의 목소리를 오히려 선호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런 라폰테인이었기에 할리우드의 동료들과 영화팬은 그의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하고 있다. 목소리해설 전문가로 활동하는 라폰테인의 동료 조앤 베이커는 “돈 라폰테인은 각 단어의 역동성을 이해하고 있었으며, 리듬감있게 그것을 읽어낼 줄 알았다. 그는 목소리 산업의 보물이었다”는 말을 통해 아쉬움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