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와 바이올린 소리가 바람처럼 흐른다. 그런데 이건 봄바람이 아니라 가을 혹은 겨울바람이다. 스산하고 쓸쓸하다. 서늘하고 날카롭다. 올라퍼 아르날즈라는 이름 옆에 아이슬란드라는 국적과 시규어 로스, 요한 요한슨과 레이첼스가 나란히 붙어 있다면 수긍하게 된다. 건반과 현악으로 구성된 클래시컬 사운드가 그려내는 풍경은 한차례 비가 내린 뒤의 해안도로 같다. 하늘은 맑은데 파도는 높다. 멀리 등대가 보이지만 인적은 드물다. 맞다. 휴양지의 풍경은 아니다. ‘0040’, ‘0048/0729’, ‘0952’, ‘1440’, ‘1953’ 같은 일련의 숫자로 된 트랙의 제목들은 해안도로에 적힌 익명의 낙서처럼 무의미하거나 의미심장하다. 나른하고 격정적인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앨범을 정의한다. 차라리 늦은 휴가에 어울리는 배경음악이다. 곧 가을이다. 찬바람이 아침과 저녁을 정의할 것이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1987년생인 올라퍼 아르날즈의 이 앨범이 힌트가 될지도 모른다. 이 앨범으로 독일과 오스트리아, 스위스와 영국에서 인기를 얻은 올라퍼 아르날즈는 시규어 로스와의 투어도 준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