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마츠가네 난사사건>이 개봉할 무렵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은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욧짱>이란 제목의 영화를 지웠다. 오사카의 한 방송사가 주최하고 오사카부 모리구치시 주민들이 협조하며 완성된 영화 <욧짱>은 <우울한 생활> <바보들의 배>에 이은 야마시타 감독의 세 번째 작품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야마시타 감독이 ‘상영 봉인’을 선언하면서 지금까지 모리구치시 이외의 장소에서 한번도 상영된 적이 없다. 야마시타 감독은 <욧짱>을 ‘완전 실패’라 말했고, 그의 영화 동지인 각본가 무카이 고스케, 촬영감독 곤도 류토도 이에 동의했다. 하지만 2007년 야마시타 감독은 문득 <욧짱>을 찾아 오사카로 떠났다. 그리고 그 과정을 <파리 텍사스 모리구치>란 이름의 영화로 담았다. <린다 린다 린다>로 상업적인 자신감을 얻었고, 2007년 <마츠가네 난사사건>과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으론 100%에 가까운 비평적 지지를 받았던 그가 갑자기 과거로 회귀한 이유는 뭘까. 생애 첫 다큐멘터리를 완성한 야마시타 감독에게 지난 1년의 이야기를 물었다. 올해 그는 디지털시네마서울에 <파리 텍사스 모리구치>와 <참 작은 세상> 단편만 두 작품을 들고 왔다.
-상영작이 두편이다. <참 작은 세상>과 <파리 텍사스 모리구치>. 어떤 게 먼저인가. =2007년 4월에 <파리 텍사스 모리구치>를 찍었고 같은 해 12월에 <참 작은 세상>을 만들었다.
-우선 <참 작은 세상>에 대해 물어보겠다. 더 피즈란 밴드의 <실험4호>란 곡이 모티브라고 들었다. 소설가인 이사카 고타로와의 합동 작품이기도 한데 어떻게 시작된 프로젝트인가. =<컷>이란 잡지의 편집장인 몬마가 이사카 고타로와 친하다. 그런데 한 6년 전에 몬마가 이사카에게 <리얼리즘 숙소> DVD를 건넸나보더라. 이사카가 너무 바빠서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니까 기분전환 겸 보라고. 그 영화를 보고 이사카가 재밌다며 같이 작업해보고 싶다고 했다더라. 그래서 어떤 형태든 좋으니까 같이 무언가를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다 단편소설과 중편 정도의 영화를 만들자고 합의를 했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는 데에도 서로 동의했다. 단, 미래를 영상으로 표현하기엔 돈이 많이 드니 구체적인 것들은 소설로 소화를 해주겠다고 하더라. 이사카가 나를 많이 배려해줬다.
-그렇다면 <참 작은 세상>은 소설도 읽어야 완성되는 작품인가. =그렇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일단 소설과 영화가 DVD 세트로 같이 팔리고 있다. 서로 다른 독립적인 작품이기도 하지만 또 같은 작품이기도 하다. 소설과 영화를 함께 보고 머릿속에서 서로 섞어가며 감상해줬으면 좋겠다.
-극중 등장하는 학교는 참 특이하다. 지구 온난화가 심각해지는 가운데 단 하나 남은 지구상의 학교란 설정인데 어떻게 떠올린 건지 궁금하다. =일단 세명의 아이들, 아비, 하루, 신은 더 피즈의 멤버다. 이름도 똑같다. 또 극중에서 아비가 졸업하고 화성으로 떠나는데 그는 결혼하고 아이가 생겨서 밴드에서도 먼저 탈퇴한 인물이다. 밴드의 이야기를 영화에 그대로 넣었다. 구체적인 스토리는 소설에 자세히 나와 있다. 소설과 영화의 내용은 서로 연결된다. 가령 아이들이 공부하는 장면에서 창밖으로 드럼 소리가 들리는데 그건 소설에 등장한 인물이 치고 있는 거다. 단, 영화에는 아비가 떠난다고 되어 있지만 소설에선 한명의 인물이 돌아온다. 나는 아비가 떠나도 언젠가 돌아올 거라 생각했다.
-더 피즈란 밴드, <실험4호>란 곡은 어떤 느낌인가. =<실험4호>는 그냥 들으면 술 취해서 부르는 노래 같다. 그런데 그 곡이 수록된 앨범은 아비가 밴드를 나온 다음 다른 멤버가 새로 들어간 뒤 만들어진 거다. ‘아직 장소는 남아 있다, 돌아오라’는 메시지가 들어 있다. 노래 가사 중에 ‘확실히 옛날엔 미래가 있었는데’란 내용이 있는데 그 미래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어서 그걸 키워드로 뭔가 만들어보고 싶었다.
-자막이 없는 DVD로 영화를 봐서 놓쳤는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영화를 볼 때는 온난화의 설정이 있는 줄 몰랐다. 그만큼 영화가 SF적인 요소와는 거리가 멀뿐더러 소박하기도 하다. =최근 온난화가 심해서 화제가 됐기 때문에 설정한 부분이다. 온난화가 점점 더 심해지면 인간이 화성에 가버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쓴 거고 그게 리얼리티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다만 더 피즈는 남성적인 밴드고, 좀 멍청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영화를 너무 진지하게 만들면 재미없다는 이야기를 이사카와 했다. 사실 미래에 온난화가 심해져도 지구가 뭐 그리 많이 변하겠느냐, 별로 변하진 않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작은 학교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이 떠올랐다. 특히 사라져가는 학교라는 점에서 동일하게 느껴졌다.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에선 졸업식이 나오지 않는다. 졸업식 뒤의 장면이 그냥 이어진다. 그래서 이번엔 졸업식을 찍고 싶었다. 아이들이 모여 졸업식 리허설을 하는 장면을 담은 것도 그 이유에서다. 학교가 중요했다기보다 이번엔 졸업식이 메인인 영화를 찍고 싶었다.
-당신 영화에선 공간이 도쿄가 아닌 어떤 곳이라는 점이 중요하게 느껴진다. 바보 삼부작을 시작으로 <마츠가네 난사사건> <린다 린다 린다>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 그리고 이번 영화까지 모두 작은 도시, 혹은 지방의 어딘가에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나는 아이치현 출신이고 도쿄에 오기 전 오사카에서 살았다. 그냥 도쿄 이외의 지역에서 영화를 찍고 싶은 막연한 마음이 있다. 지역마다 나름의 색깔이 있기 때문이랄까. 도쿄는 내가 살고 있는 곳임에도 막연한 이미지다. 지방이 무대라기보다는 도쿄가 아닌 곳이라는 게 포인트다. 도쿄 그 자체를 그리는 것에 위화감을 느낀다. 내 안에서 나오는 게 도쿄 이외의 것이라서 그런 것 같다.
-같은 맥락에서 당신 영화는 도쿄에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도쿄가 아닌 곳에서 보이기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에서도 소요(가호)가 도쿄로 수학여행을 갔다 온 뒤 다양한 일이 벌어진다. 도쿄가 완전히 배제된 것이 아니라 잠재적으로 도쿄를 의식하는 작은 공간들, 혹은 도쿄에서 소외됐기 때문에 떠올릴 수 있는 어떤 것들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느낌이다. =일단 도쿄는 독특한 곳이다. 일본의 중심지이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동경하거나 콤플렉스를 갖는 장소이기도 하다. 다만 나는 4년째 도쿄에서 살고 있는데도 왠지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느낌을 못받는다. 그냥 거대한 장소, 직장, 마을이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다. 사람을 지그시 바라보거나 그들의 생활을 그리기엔 무리인 장소 같다. 도쿄에 더 오래 살다보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겠지만 도쿄를 생각하면 그곳의 인간관계, 생활이 떠오르는 게 아니라 머리가 아프다. 내가 아직 도쿄에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파리 텍사스 모리구치>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이 영화는 <마츠가네 난사사건> 개봉 당시 당신이 필모그래피에서 <욧짱>이란 영화를 지웠다는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욧짱>은 어떤 영화이고 왜 지우자고 했던 건가. =오사카예술대학에 다닐 때 한 방송사 주최로 영화를 찍은 적이 있다. 4명이 각각 영화를 만들고 방송사 사람들이 우리가 영화 찍는 과정을 다큐로 쫓아가는 거였다. 처음엔 가볍게 그냥 ‘모리구치시에서 찍겠습니다’라고 지원했는데 도와주겠다고 팩스가 왔더라. 정말 친구들끼리 모여 자주영화처럼 찍을 계획이었지만 모리구치시 마을회관, 상점가, 지역 커뮤니티 등이 참여하면서 규모가 커졌다. 그렇게 돼버리니까 부담이 생기더라. 모리구치 마을이 나를 삼켜버린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좋은 작품이 안 됐다.
-<바보들의 배> 이후인가. =<바보들의 배> 이후, <리얼리즘 여관> 전.
-그렇다면 방송사쪽에서 만든 메이킹 영상도 남아 있겠다. =그게 나를 포함해 두명은 완성을 했고 나머지 두명은 완성을 못해서 중단됐다. 우리를 따라다니며 찍은 영상이 어디 있겠지만 그것도 완성되진 못했다. 하지만 그 자료가 남아 있다면 아마 내 영화보다 훨씬 재밌을 거다. 영화를 찍으면서 내가 얼마만큼 작아지고 있는지가 보일 테니. (웃음)
-그럼 <마츠가네 난사사건> 이전까지는 필모그래피에 <욧짱>을 써왔던 건가. =일단은 넣었었다. 그런데 <마츠가네 난사사건> 개봉 때 배급사 사람이 <욧짱>이란 영화는 결국 볼 수 없는 거 아니냐, 그럼 빼도 되지 않겠냐고 하더라. 그래서 그냥 오케이해버렸다.
-그렇다면 2007년에 다시 <욧짱>을 기억해낸 이유는 뭔가. =간다라영화제에서 30분 정도의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로 했었다. 그 상영일이 가까워지고 있었고, 뭐든지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기획 중이던 단편 하나가 주인공 배우가 회사를 떠나면서 무산됐다. 2주 정도 시간이 있었는데 그 안에 새로운 작품을 찍는다는 건 자기 이야기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무카이, 곤도와 얘기하던 중 <욧짱> 이야기가 나왔고, 조금은 자학적이지만(웃음) 그 이야길 다시 해보자고 했다. 지금 다시 보면 좀 재밌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영화를 보면서 2007년에 <욧짱>이란 영화를 다시 꺼내 생각한 게 현재 당신의 고민과 관계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당신은 <린다 린다 린다>를 만들면서 ‘야마시타 부시(節)(일본의 언론은 야마시타 감독의 바보 삼부작에서 보였던 독특한 리듬과 유머를 그만의 특징이란 의미로 야마시타 월드, 야마시타 부시라 표현했다)’는 최대한 배제하며 찍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영화는 상업적으로 성공했고 이후 당신은 오리지널 기획보다 제작사의 기획을 받아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됐다. 그렇다고 <린다 린다 린다> 이후 당신의 영화가 초기작들과 완전히 다른 색채의 작품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파리 텍사스 모리구치>에도 모리구치시 사람들은 당신에게 <타이타닉> 같은 영화를 만들어라, 제대로 된 해피엔딩의 영화를 만들라는 이야기를 한다. 감독 야마시타로서의 고민이 <파리 텍사스 모리구치> 연출의 시작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말한 그대로다. (웃음) 지난해 1년 동안 무카이랑 계속 오리지널 각본으로 작품을 하자고 많이 얘기했었다. 열심히 노력도 했고. 하지만 장편을 하나도 만들지 못했다. 차기작도 결국 원작이 있는 작품으로 하게 됐다. 물론 너무 오리지널만 고집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파리 텍사스 모리구치>를 찍으러 모리구치에 가서 그쪽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내가 생각하는 영화와 그들이 생각하는 영화가 다르다는 걸 알겠더라. 아직 내 영화가 영화를 좋아하는 일부 사람들에게만 전달되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고. <욧짱>이 꼭 계기는 아니었지만 지난해가 나에겐 이런저런 고민을 했던 시기인 것 같다.
-이어서 질문하면 당신은 영화 말미에 <욧짱>은 모리구치시와 섹스해서 낳은 사생아라고 표현했다. 아들이긴 아들이지만 사생아고, 도쿄로 데려가지 않고 오사카에 그대로 놔둘 거라고. 그 대사가 초기의 야마시타 영화와는 이제 일정한 거리감을 두겠다는 의미로 들렸다. =(웃음) 그 대사는 영화를 어떻게든 마무리하려고, 좀 재밌게 끝내자고 한 말이다. 농담처럼 얘기했고 좀 심하지 않았냐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사실 그 안에는 내 본심도 있었을 거다. <욧짱>은 나의 못난 구석들이 전부 드러난 작품이다. 완전히 옛날로 돌아갈 순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새로운 걸 할 수도 없다. 조금은 다른 어떤 방향을 선택해야 하긴 하는데 그게 고민인 것 같다. 지난해 내 영화에 친구들과 우리끼리 돈 모아서 만든 작품의 파워가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사실 이런 고민을 한국에선 들킬줄은 몰랐다. (웃음)
-어떤 의미에선 당신이 조감독이나 연출부 경험 없이 감독으로 데뷔했기 때문에 갖게 된 고민이 아닌가 싶다. <린다 린다 린다> 때 한 인터뷰를 보니 무카이, 곤도, 그리고 당신 3인 대 나머지 스탭으로 대립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통역 프로듀서가 있을 정도로 현장 스탭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웠었다는 말도 있고, 쫑파티에선 제작부가 많이 화를 낸 적도 있다고 했더라. =<린다 린다 린다>를 찍고 나서 ‘영화도 상업적인 거구나, 일이구나’라는 의식을 갖게 됐다. 그 영화가 경계다. 옛날엔 돈은 안 돼도 우리가 하고 싶은 걸 만들어서 보고 싶은 사람에게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여러 가지 이유로 옛날처럼은 못할 것 같다. 시간도 돈이고 영화를 만들면 개봉도 해야 한다. 또 프로 감독으로서 어떤 기대를 채워줘야 하는 부분도 있다. 다만 프로라는 것에서 벗어나고 싶다,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은 한다. 하지만 그렇게 잘되지 않는다. 생각하지 않은 채 무언가 하고 싶은데 상업적이라는 부분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같다.
-그럼 <린다 린다 린다> 이전과 이후 연출에서 달라진 점도 있나. =내가 자주 드는 예인데 첫 장편인 <우울한 생활> 때에는 내가 연기할 수 있는 선상에서만 연출했다. 그 이상은 안 됐다. 손가락 인형을 손가락에 끼고 100% 나의 뇌가 조절하듯이 배우 앞에서 연기를 하고 그대로 연출을 했다. <리얼리즘 여관> 때에는 그 방법에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고 보고 배우에게 여백을 주려고 했다. 마리오네트 인형을 움직이는 것처럼 머릿속 세계에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린다 린다 린다> 때에는 여고생 세계에 대한 이야기기 때문에 리모컨으로 조작하듯이 연출했다. (웃음) 나는 전혀 모르는 세계니 그녀들에게 나오는 것들을 멀리서 보고 있다 취하는 방식이었다. 지금은 그 세 가지가 다 섞여 있는 것 같다. 베테랑 배우랑 할 때는 한발 물러서서 지켜보는 편이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손가락 인형 다루듯이 할 때도 있다.
-바보 삼부작과 <마츠가네 난사사건> 그리고 <크림 레몬> <린다 린다 린다>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 당신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영화가 이렇게 두 분류로 나뉘는 것 같다. 약간은 괴기스런 이야기와 동화 속 세계에 가까운 이야기가 공존한다. 시기상의 문제인지, 오리지널 기획, 그렇지 않은 기획의 차이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냥 단순하게 당신의 생각이 궁금하다. =일단 바보 삼부작은 모두 야마모토 히로시가 주인공인 영화다. 야마모토는 내 대학 선배이기도 한데 그 당시에는 그의 세계관이 나에게 매우 중요했다. 바보 삼부작은 모두 야마모토 히로시란 인물에서 탄생한 거다. 그러고 나서 좀 시야를 넓히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내 안에선 나올 수 없는 영화겠구나 싶어 찍은 게 <크림 레몬>이다. 에로…, 에로에 도전한 거기도 하고. <린다 린다 린다>는 음악이나 여고생, 십대 등 나와 정반대에 있는 부분에 도전을 하고 싶어 만든 영화다. <마츠가네 난사사건>의 경우, 본 사람들은 다시 옛날로 돌아간 게 아니냐고 자주 말하는데 사실 나와 무카이는 이전에 우리가 했던 걸 모두 부수자고 생각하며 만들었다. 내용 자체는 그렇다. 다만 촬영 방식이나 리듬이 여전해서 예전 스타일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은 나에게 완전히 새로운 도전이었다. 처음으로 여성 작가의 작품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고, 각본도 여성 작가(와타나베 아야)였다. 여성과 작업하면 어떤 스타일의 영화가 나올지 궁금했다.
-<린다 린다 린다> 때 한 기사를 보니 내가 잘 모르는 세계이기 때문에 그냥 지켜보듯이 연출했다는 말을 했더라. 본인의 세계가 아닌 작품에서, 혹은 제안받은 기획일 땐 멀리서 지켜보며 관찰한 것들을 수용하는 방식이 당신의 연출법인가.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에서의 와타나베 아야와의 작업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솔직히 말해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은 나의 색깔, 자아를 가능하면 드러내지 말자고 마음먹고 임한 작품이다. 와타나베와 이야기할 때도 가능하면 원작에 충실하자고 그랬고. 현장에서도 밖에서도 원작 중심의 작품이었다. 영화를 본 분들은 그래도 야마시타의 리듬이 있다고 얘기하지만 나는 항상 무대 뒤에 있었던 느낌이다. 원작자 구라모치 후사코가 교장선생님이라면, 와타나베 아야가 교감, 내가 한 클래스를 담당하는 담임선생님이었다. (웃음)
-개인적으로는 바보 삼부작처럼 당신의 안에서 나온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린다 린다 린다>나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처럼 당신이 한발 떨어져서 만들었다고 표현한 작품들을 좋아한다. 예전엔 좀 불편하게 녹아들었던 마(間, 대사와 대사, 행동과 행동 사이의 빈 시간)가 <린다 린다 린다> 이후엔 부드럽고 아름답게 완성돼 있다. 본인의 색깔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말하긴 했지만 그 작품들에 대해 감독 자신의 평가는 어떤가. =초기 작품들은 주인공이 나와 같은 눈높이다. 같은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 등장인물이라 악의도 들어 있고 부정적인 부분도 포함되어 있다. 뭔가 기분 좋지 않은 공기가 느껴진다. 하지만 <린다 린다 린다>나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 같은 경우 촬영을 하면서 나도 몰랐던 느끼지 못했던 공기나 마가 생겨났다. 영화를 볼 때에도 <린다 린다 린다>나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은 나 자신도 편안하고 재밌다. <마츠가네 난사사건>이나 바보 삼부작은 뭔가 창피하고 겸연쩍다. 영화의 리듬을 나의 생리로 만들었기 때문에 저걸 왜 저렇게 했을까 부끄럽기도 하고 마치 나 자신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도 받는다.
-지난해 많은 고민을 했다고 했는데 그 결과가 궁금하다. 더불어 오사카예술대학 시절의 추억이 지금 당신에겐 어떤 의미인가. =대학 시절 함께 작업했던 무카이, 곤도와는 지금도 같이 작업을 하고 있다. <파리 텍사스 모리구치>는 대학 시절 영화 만들기의 연장이었고. 영화제에 초청받고 어떤 식으로 구상한 영화냐고 질문을 받긴 하지만 사실 우리 셋이 카메라로 논 거다. (웃음) 나에게 영화는 지금도 취미고, 최고의 시간 때우기다. 일이란 부분을 무시할 순 없지만 영화는 놀이의 연장이다. 실제로 이번 신디 경쟁부문에 온 이시이 유야 감독도 오사카예술대학 출신이고, 구마기리 가즈요시 감독도 학교 선배다. 같은 대학 출신 감독들이 많아 그냥 아직도 계속 함께 노는 기분이다.
-차기작 이야기를 잠깐 했는데 어떤 작품인가. 서울 로케이션을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70년대 도쿄가 배경이고 사다이 유지(비터즈 엔드 대표)가 그런 풍경을 서울에서 찾을 수 있을까 싶어 올 초에 로케이션 헌팅차 한국에 간 적이 있다. 적당한 곳은 못 찾았다고 하더라. 전공투 시대에 한 젊은 저널리스트가 살인사건에 휘말리면서 벌어지는 청춘영화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그럼 차기작의 경우 굳이 말하자면 어느 쪽의 영화인가. 한발 물러서서 바라보는 느낌? 아니면 당신 내부의 것을 꺼내서 만드는 영화인가. =글쎄.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내가 어디까지 들어갈 수 있을진 모르겠다. 등장인물도 꽤 많아서 아직은 확실히 그림을 모르겠다. 굉장히 높은 벽을 오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린다 린다 린다> 이후 2년 배두나,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과 재회하다
배두나와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이 <린다 린다 린다> 이후 2년 만에 만났다. 오랜만에 재회한 그들은 무슨 대화를 나눴을까.‘CinDi 토크’ 행사로 진행된 두 배우, 감독의 이야기를 지면으로 가져왔다.
야마시타 노부히로: (한국어로)안녕하세요. 2년 만이네요. 작품 때문에 오긴 왔지만 배두나씨를 만나는 게 더 긴장됩니다.
배두나: 너무 뵙고 싶었어요. 제가 원래 영화 찍으면서 감독님이랑 잘 친해지는 편인데 가장 못 친해진 분이 야마시타 감독님이거든요. 감독님이 낯을 많이 가리셔서.
야마시타 노부히로: 두나씨하고는 <플란다스의 개>를 보면서 같이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배두나: 봉준호 감독님이 일본의 젊은 천재 감독이 나를 캐스팅하고 싶어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캐스팅 제의가 들어오면 꼭 하라고 강력 추천을….
야마시타 노부히로: 사실 보통 영화 보면서 특정 배우와 같이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은 잘 안 해요.
배두나: 근데 <파리 텍사스 모리구치>요. 자막 없이 봤는데요, 깜짝 놀랐어요. 감독님 왜 이렇게 말이 빠르지 하면서.
야마시타: 고등학생 때부터 독립영화를 많이 찍어서 영화 출연하는 건 좋아해요. 근데 막상 카메라 앞에 서니까 긴장해서 너무 흥분한 것 같네요.
배두나: 근데 연기를 되게 자연스럽게 잘하시더라고요. 나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인터뷰인 줄로만 알고 언제 영화가 시작되지 그랬어요.
야마시타 노부히로: 제 필모그래피를 보면 알겠지만 제가 영화 출연을 많이 했어요.
배두나: <린다 린다 린다> 때 합숙하며 연기하던 것 생각나네요.
야마시타 노부히로: 네명의 멤버가 친해지는 게 매일 눈에 보여서 감독 입장에선 연출하기 좋았죠.
배두나: 가시이 유우도 정말 잘해줬는데. 그 뒤로 많이 친해져서 일본 가면 꼭 만나곤 해요. 합숙이 좋은 점이 있어요. 지방 촬영 오래 하면 커플도 많이 생기고.
야마시타 노부히로: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도 다섯살 꼬마에서부터 고등학생까지 합숙하며 찍었어요. 결과적으로 일일이 연기 지시를 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분위기와 장면이 연출되더라고요.
배두나: 그런데 감독님 영화에 매번 나오시는 분이 있잖아요. 그분 되게 부러워요.
야마시타 노부히로: 대학 선배인 야마시타 히로시예요. 서로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어서 신경이 쓰이고 불편한 게 있어요. 그래서 최근 작품에는 거의 출연을 안 했습니다. 배두나씨와 거리감을 두는 것도….
배두나: 네, 친하게 지내지 않는 게 좋겠어요. (웃음) 감독님 근데요, 제가 일본영화 출연 계획이 잡혀 있어요.
야마시타 노부히로: 마음이 조금 복잡한데요.
배두나: <괴물> 이후로 본의 아니게 많이 쉬었는데 올해 책 작업 마무리하고 10월, 11월에 한국영화와 일본영화 촬영을 준비할 것 같아요.
야마시타 노부히로: 저도 최근에 1년 반 동안 단편만 찍었는데 곧 심기일전해서 영화 찍으려 해요.
배두나: 저 도쿄에서 찍으니까 감독님 꼭 놀러오세요.
야마시타 노부히로: (손으로 끼적 전화번호 물어보는 척) 어디선가 제 이름을 발견하게 되면 두나씨도 꼭 관심가져 주세요. (한국어로) 감사합니다.
(정리: 이주연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