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판 다큐멘터리 <지구>는 아마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다큐 흥행사를 새로 쓴 작품일 것이다. 2007년 독일 개봉 당시 3천만달러의 흥행수입을 올렸고, 프랑스에서는 그해 프랑스 박스오피스 3위 안에 들었으며, 스페인에서는 자연 다큐 개봉작들 가운데 역대 최고 개봉성적을 냈다. 일본에서는 당시 흥행 1위를 달리고 있던 <나는 전설이다>를 순위에서 끌어내리고 개봉주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스크린 수 규모는 <나는 전설이다>의 절반에 불과했고, <지구>는 지난 10년간 일본에서 가장 흥행한 다큐멘터리로 남았다. 전세계 관객을 매료시킨 자연다큐 <지구>에 관한 이모저모.
1. 촬영 뒷이야기
-코끼리를 덮치는 사자떼 칠흑 같은 밤. 40~50마리쯤 되는 사자떼들이 새끼 코끼리를 덮치려는 모습이 HD카메라에 포착됐다. 물론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 카메라 뷰파인더에 눈을 갖다댄 여성 카메라맨뿐이었다. 동료들은 멀리 떨어져 지프에서 대기 중이었고, 여성 카메라맨은 적외선 조명을 이용해 “건졌다”는 신호를 보냈다. 겁에 질린 수십 마리의 어미 코끼리들, 그리고 그들을 사냥하기 위해 동정을 살피는 나머지 사자떼들이 카메라맨을 둘러싼 채였다.
-바다표범을 한입에 삼킨 백상어 <지구> 촬영에 동원된 최첨단 장비 중 하나는 바로 포트론이라고 불리는 초고속촬영 디지털카메라다. 이 카메라는 초당 2000프레임까지 찍어내고, 필름이나 테이프 없이 촬영 즉시 영상메모리가 컴퓨터로 자동전송되는 첨단 기술장비다. 이것으로 촬영한 장면은 40배속까지 느림 재생도 가능하다. <지구>에서 길이 7.5m, 몸무게 2.5t에 달하는 거대 백상어가 바다 표면 위로 솟구쳐 바다표범을 한입에 삼켜넣는 모습이 이 장비로 촬영되었다. 해당 장면은 러닝타임상 50여초 정도 지속되는데 실제 촬영시간은 1∼2초에 불과한 것이라고.
-히말라야 산맥을 넘는 쇠재두루미떼 새들이라고 늘 자기 의지대로 날아다니는 건 아니다. 겨울이 되면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남쪽으로 가는 쇠재두루미떼는 이때 인도양의 수증기가 만들어낸 강풍과 맞서야 한다. 이 장면을 찍기 위해 촬영팀은 약 8400m 고도의 상공을 날며 촬영 시점을 노리고 있었다. 타이밍을 잡았을 때 카메라맨에게 저산소증이 왔다. 손가락들이 뒤틀리고 눈알이 뒤로 넘어가는 증세였다. 조종사는 15초 만에 고도를 3000m 낮추고 카메라맨의 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오길 기다렸다. 두루미들이 산을 넘기 전에 사람 목숨이 먼저 넘어갈 뻔한 순간이었다.
2, 다큐멘터리계의 스필버그, 알래스테어 포더질
영국 <BBC>의 TV다큐 시리즈 <살아있는 지구>(2006), 해양 TV다큐 시리즈 <아름다운 바다>(2001) 등을 제작한 다큐멘터리 감독 알래스테어 포더질은 다큐계의 스필버그라고도 불리는 인물이다. 상어, 사자, 고릴라 같은 동물들의 야생을 스펙터클한 화면에 담아왔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포더질 감독은 <BBC>의 20년짜리 장수 자연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었던 <The Really Wild Show> 등에서 주목받았고, 심해 속 자연을 생중계로 방송하는 실험적인 프로그램 <리프와치>(Reefwatch)로도 이목을 끌었다.
1960년 태생으로 던햄대학에서 동물학을 전공한 그는 학생 시절에 이미 <오카방고 땅 위에서>라는 자신의 첫 다큐를 만들었다. BBC 자연사단에 입사한 건 1983년. 그때부터 포더질은 <BBC> 채널 1번과 4번을 오가며 꾸준하고 왕성한 활동을 해왔다. <트라이얼 오브 라이프>(The Trials of Life, 1990)는 여러 야생동물들의 일생을 “도착”(Arriving), “성장”(Growing Up), “집 만들기”(Home Making) 등 12개 단계로 나눠 각각 에피소드로 엮은 다큐. <라이프 인 더 프리저>(1993)는 남극의 야생을 6편짜리 에피소드로 다룬 다큐다. 1992년 포더질은 BBC 자연사단장으로 임명됐다. 1998년 그는 <아름다운 바다>의 극장판 <딥 블루> 제작에 집중하기 위해 단장직을 사직했다.
지금까지 포더질이 작업한 다큐들은 비평과 흥행 면에서 많은 성공을 거뒀다. 일부 자연보호론자들과 동료 다큐 감독들은 그의 작업이 ‘위기에 직면한 야생에 겉치레를 입히는 일’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살아있는 지구> 역시 ‘장밋빛 안경을 쓰고 바라본 자연’이란 비판을 면치 못했다. 포더질의 답은 이렇다. “야생의 종을 지켜내는 방법 중 하나는 그것을 재밌는 이야기로 만들어 화면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이 대중을 환기시키고 지지를 끌어낼 수 있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3. BBC 자연사단(BBC Natural History Unit)
BBC 자연사단은 <BBC> 내에 있는 자연사 및 야생 관련 TV·라디오 프로그램 제작부서다. 주로 자연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이 팀은 1940년, 데스몬드 호킨스라는 젊은 프로듀서가 자연주의자들을 소재로 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시작됐다. 이 프로그램이 히트를 하자 <새의 노래> <영국의 새들> 등의 프로그램 제작이 이어졌고 1957년 지금의 형태로 부서가 갖춰지게 됐다. <사파리에서> <해저 세계의 모험> 등이 히트했다. 컬러TV의 등장 이후, <문명>(1969>이라는 예술사 TV영화다큐멘터리가 제작되면서 <BBC> 다큐멘터리의 블록버스터 시대가 열렸다. 2007년, BBC 자연사단은 창립 50주년을 맞아 <지구를 지켜요>(Saving Planet Earth) TV용 다큐영화를 제작했다. 이 방송은 BBC 야생동물보호기금이 270만달러의 후원금을 모금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