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농사를 짓고 있다. 물론 다섯평짜리 농사지만, 하다보니 땅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 제5회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이하 EXiS) 박동현 집행위원장은 실험영화제의 필요성을 묻는데 농사 얘기로 말문을 연다. “실험영화는 다양성의 측면에서 중요하다. 자양분으로서 비옥한 토양, 토대를 마련하는 게 바로 실험영화다. 지속적으로 실험영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국내 최초의 실험영화제로 출범한 EXiS가 올해로 5회를 맞이했다. 1회 때부터 살림을 꾸려온 박동현 집행위원장을 만났다.
-4회까지 영화제를 평가한다면. =지금까지 영화제가 이어져온 것만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초기엔 홍보가 부족해서 적극적으로 관객을 만나지 못해 아쉬웠지만 영화제가 양적·질적으로 꾸준히 성장했다. 영화제 예산도 열배 가까이 늘었고 해외에서 들어오는 작품 수도 늘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다.
-영화제 슬로건이 ‘유희’다. =다양한 스펙트럼으로서의 즐거움을 생각했다. 철학책을 보며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종이에 끼적끼적 낙서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실험영화는 작가가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을 관객이 상상력을 발휘해 작품의 나머지를 채워나갈 수 있는 부분이 많다. 관객의 상상력을 끄집어내어 ‘상상력의 유희’를 펼칠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
-올해 영화제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인가. =이번에 처음 ‘EX-라이브’라는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사운드와 퍼포먼스쪽으로 영역을 확장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국제비경쟁부문인 ‘EX-초이스’의 존 케이지 특별전을 준비하면서 처음 얘기가 나왔는데, 라이브 형식으로 퍼포먼스, 사운드 퍼포먼스를 보여주면 좋겠다 싶었다. 감독들이 작곡가랑 연계해서 작업을 하고 있으며, 현장에서 영상과 함께 라이브 사운드가 곁들여지는 형태가 될 것 같다.
-‘핸드메이드 필름 랩’ 프로그램이 올해는 해외 랩들의 참여로 확장됐다. =지난해에 처음 섹션을 마련했는데 필름을 직접 만지며 작업하는, 조금은 오래된 방식의 영화 만들기가 아직도 유효하다는 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이런 랩들이 세계적으로 조직되어 있기도 하고. 지난해에는 처음 준비한 거라 국내의 스페이스 셀 작품만 상영했는데 올해는 캐나다 랩 세곳과 함께한다.
-실험영화가 어렵고 난해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어려운 영화들이 있다. 그러나 일단은 이미지만 즐겨도 충분한 영화들이 대부분이다. 앞에서 상상력 얘기를 했는데 우리가 한번도 제대로 예술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지 않나. 외우는 거 말고는 해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영화가 예술의 장르로 들어가 어려운 얘기를 하면 심하게 거부감을 느낀다. 전세계 어딜 가든 200~300명씩 관객이 차는 실험영화 상영관은 거의 없다. 우리는 많은 관객을 원하는 게 아니라 영화를 보고 사람들이 상상력을 키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영화제 청사진을 그려놓은 게 있나. =개인적으로는 ‘언제 빨리 영화제에서 손을 뗄까’ 그게 청사진이다. (웃음) 영화제가 자율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면 자연스럽게 그만둘 것 같다. 영화제 규모를 키울 생각은 없다. 영화제가 최상의 형태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지속적으로 실험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한다. 현재 영화제의 몸통이라고 할 수 있는 다이애고날 필름 아카이브가 작품을 많이 모아놨다. 이 공간에 비디오룸 같은 걸 만들어서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실험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하는 게 꿈이다. 국내외 좋은 영화들을 지속적으로 수집·보관하고, 돈이 생긴다면 과거 좋은 작품들도 모으고 싶다.
-올해 영화제에서 놓치면 안 되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올해 처음 기획한 ‘랩 데이’라는 하루 일정의 행사가 있다. 하루짜리 맛보기 시간이 되겠지만 관객이 직접 필름으로 영화를 만들어볼 수 있다. 실험영화가 얼마나 즐거운 작업인지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영화를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