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증언들이 흥미로울 것만 같다. 영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에는 청년 체 게바라와 함께 모터사이클로 남미대륙 횡단 여행을 떠나는 생화학도 친구 알베르토 그라나도가 등장한다. 게바라는 1967년 볼리비아 정부군에게 총살당했지만, 그라나도는 아직도 살아 있다. 쿠바 혁명정부 관직에 몸담았던 그는 현재 85살로 손자들까지 거느린 채 아바나에 거주한다고 한다. 현지 인터뷰를 기획해 게바라의 체취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고 싶은 마음은 순전히 직업적 호기심 때문인지도 모른다.
얼마 전 <이현상 평전>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지리산 유격대 남부군 총사령관이었던 이현상의 일대기에서 나는 하수복이라는 인물에 관심이 끌렸다. 간호요원으로 입산해 산에서 이현상의 아이를 임신했던 그녀는 현재 팔순의 할머니로 생존해 있다. 그녀의 증언을 듣기 위해 기자와 역사 연구자들이 접근했지만 허사였다. 산중의 일에 관해선 단 한번 입을 벙긋한 적도 없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현상에 관한 단 한마디라도 듣는다면 특종이 될 거다. 그녀를 만나고 싶다.
1년 전, 이현상을 재조명하려는 바람이 잠깐 불었다. 멀리 남미의 게릴라 지도자 체 게바라에게만 열광할 것이 아니라, 남한이 낳은 세계적인 게릴라 지도자에 관해서도 관심을 갖자는 주장이었다. 그의 생애를 살피면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일제 치하 12년간이나 옥살이를 하면서도 고문과 회유를 이겨낸 지주 가문 출신의 지식인. 그는 1948년 10월부터 5년간 지리산에서 수천명의 남한 군경과 미군을 사지에 몰아넣었던 빨치산의 영웅이다.
그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60돌’을 맞는 현재의 시점 때문이다. 1948년 8월15일 정부수립을 선포했던 이승만의 대한민국 정부에게 ‘이현상 제거’는 가장 급박한 과제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제주 인민들은 그해 5월10일 열린 남한만의 제헌의회 선거와 6월23일 재선거를 잇따라 거부하며 무장투쟁을 벌였다. 제주 파병을 거부한 국방경비대 제14연대는 여수에서 총부리를 거꾸로 돌렸고, 이현상의 지도 아래 지리산의 빨치산들과 합류했다. 2년 뒤엔 북이 쳐들어왔다. 1953년 7월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된 뒤에도 이현상은 살아남았다. 9월18일에야 그는 지리산 반야봉의 한 계곡에서 사살된 채 발견됐다. 남한 지배세력을 공포에 떨게 한 반란 집단의 ‘괴수’가 제압당하는 결정적 순간이었다.
알려졌다시피, 빨치산들은 남과 북에게 모두 버림받았다. 2년 반이라는 기나긴 휴전협상 기간에 미국이 북한에 건넨 파격적인 제안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남한 치안의 안정을 위해 지리산과 소백산맥 일대에 잔류한 빨치산 1천여명을 전쟁포로로 그냥 돌려주겠다고 했음에도! 결국 그들은 1954년 2월까지 국군 제5사단이 벌인 대규모 동계 토벌작전의 표적이 되었고 완전히 씨가 마른다.
오, 역사의 미아가 된 가련한 이들이여. 근데 난데없이 이 지점에서 비정규직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빨치산도 따지고 보면 비정규직 아니던가. 남한에선 전멸당하고, 철석같이 믿었던 북한에게도 내쳐진 비정규 전투요원들. 이제 ‘환갑잔치’을 여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그 빨치산 같은 존재가 비정규직 노동자라면 억지일까? 사용자에겐 착취당하고, 어깨동무해야 할 정규직에게도 외면당하는 그들. 그 숫자가 전체 임금노동자의 54%에 이른다는 놀라운 통계(한국노동사회연구소 2008년 3월 조사)는 거대한 그늘처럼 느껴진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바글대는 사회는 빨치산이 출몰하는 준전시 사회를 연상시킨다. 양극화는 치안 붕괴를 부른다. 막장에 몰린 자들은 ‘보급투쟁’에 뛰어든다. 멕시코가 생생한 모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