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지식채널e> 김진혁 PD가 이번주 방송을 마지막으로 프로그램에서 물러난다. <지식채널e>는 3년 전 그가 직접 기획한 프로그램으로, 2005년 9월5일 방영된 ‘1초’를 시작으로 매주 두편씩, 무려 450편이 전파를 탔다. 애초 두명의 PD가 배정된 프로그램이었지만 6개월 전부터는 김 PD가 홀로 연출을 도맡아왔다. 5분짜리 SB(Station Break) 프로그램인 <지식채널e>를 EBS 간판 스타로, 탄탄하고 폭넓은 시청층을 자랑하는 방송으로 일궈낸 그가 프로그램을 떠나는 것은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지난 5월12일 방영한 ‘17년 후(광우병을 다룬 방송)’ 때문에 경영진이 청와대의 눈치를 살펴 ‘보복성 인사’를 했다는 비난이 EBS 안팎에서 거세다. EBS 경영진은 김 PD에 대한 이번 인사 조치가 “가을철 정기인사를 단행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본인은 이번 인사를 어떻게 받아들이나. =다른 프로그램으로 옮기게 될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지만 경영진이 노조쪽에 ‘17년 후’와 관련해 인사 등 불이익을 주지 않겠다고 약속한 상태라 정말 발령이 날 줄은 몰랐다. 당시 노조는 이러한 전제 아래 경영진이 외압에 굴복했던 사실을 대외적으로 문제삼지 않기로 했다. 경영진은 ‘정기인사’라는 핑계로 노조와의 약속을 일방적으로 어긴 것이다.
-히틀러의 나팔수였던 괴벨스를 소재로 한 방송(괴벨스의 입)을 두고 “김진혁 PD가 연출한 최고의 복수”라고들 하는데. =한달 전에 아이템을 결정하기 때문에 ‘괴벨스의 입’은 이번 인사와는 무관하고, 오히려 <PD수첩>과 관련이 있다. <PD수첩>을 옹호하는 쪽과 <PD수첩>을 공격하는 쪽 모두가 서로에게 “정치적 선전·선동을 한다”고 비난하지 않나. 누구 말이 맞는지 가리려면 정치적 선전·선동이란 무엇인지, 그 분야 달인을 모셔보자고 생각했다. 이건 <지식채널e>가 늘 해오던 방식이다. 현상이 아니라 이면 혹은 역사적 뿌리를 말하는 5분짜리 사전이랄까. 권투경기를 중계하는 게 아니라 링이 어떻게 생겼는지 살펴보는 거다.
-별도 촬영 없이 자료화면을 활용해 제작하니까 어차피 ‘권투중계’는 못하는 거 아닌가. =물론 제작 방식도 프로그램 성격에 영향을 미쳤다. 관심이 집중되는 현장에 달려가는 대신 한 발짝 물러서서 본질을 보여주는 것,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일이>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잘 알고 있다고 여기지만 실은 알지 못하는 것을 찾아서 ‘빈 곳’을 메우는 역할을 하려고 했다. 그렇게 쌓은 지식의 힘으로, 우리가 주변에 널린 온갖 ‘신화’에 현혹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실의 반대는 거짓이 아니라 신화니까.
-가치중립적인 지식을 전달하지 않고 시사적인 이슈에 치우쳤다는 지적도 있다. =시사적인 게 아니라 시의 적절한 거다. (웃음) 방송은 사람들의 관심사를 다뤄야 하고, 요즘은 시사적인 이슈가 주목받으니 그걸 선택했다. 아무도 관심없는 이야기를 하는데 누가 방송을 보나. 내게 ‘좌빨’(좌파 빨갱이)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는데, <지식채널e>는 사실 굉장히 보수적이고 계몽적인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 주인공이 ‘지식’이다. 실제 있었던 일, 그 사람이 한 말, 사진 자료 등 ‘팩트’만 나오고 비평이나 분석은 하지 않는다. 주요 시청층이 학생과 교사다. 학교 숙제를 하는 데 도움이 되고 교과 단원 부교재로 활용하면 좋다고 하더라.
-원래 지식이 풍부한 사람인가 보다. =원래는 아니었는데 3년 동안 나아진 것 같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다 아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었으니 이 정도면 득도한 거 아닌가. (웃음) 사람은 누구나 지식에 대한 목마름이 있는 것 같다. <지식채널e>가 단행본으로도 출판됐는데 1, 2권 합쳐 15만부 넘게 팔렸다. 예상 못했던 일이다. 세상의 이치를 밝히는 지식, 살아 있는 지식, 나를 올곧게 지켜주는 지식을 좇았던 지난 3년은 개인적으로 무척 행복했다. 배경음악에 대한 문의가 많아서 프로그램 O.S.T 음반을 만들려고 했는데 시간이 없어 못했다. 그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