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올림픽의 마지막 성화 봉송 주자는 중국의 체조영웅 리닝(李寧)이었다. 와이어에 몸을 의지한 채 그 넓은 경기장을 옆으로 누워 뱅글뱅글 도는 모습을 보니, 그냥 바로 붙이면 되지 굳이 불안하게 왜 그러나 싶기도 하면서 오바이트가 쏠릴 정도였다. 양궁선수에게 불화살로 성화를 점화하게 하는 것은 이해되는 일이지만, 그런 와이어가 체조선수와 무슨 관계인가 싶기도 하고 말이다. 균형 감각 때문인가? 하여간 1984년 LA올림픽 남자체조부문에서 불과 21살의 나이로 3관왕에 오른 그는 뒤늦게 올림픽에 참가한 ‘중공’의 올림픽 영웅이었다. 이름 발음과 비슷한 링 종목에서 보여준 신기의 기술은 아직도 머릿속에 또렷이 남아 있다. 그것은 물론 다소 행운의 결과이기도 했다. 여전한 냉전의 시대, LA올림픽은 체조 강국 ‘소련’이 불참한 대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소련이 참가한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리닝은 도마에서 엉덩방아를 찧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주며 ‘노 골드’로 귀국해야만 했다.
이후 리닝은 1990년대 접어들면서 중국과 홍콩의 오묘한 화해무드를 틈타 홍콩영화계의 러브콜을 받았다. 체조선수로서 그의 ‘개인기’는 이연걸 등에 비교해도 그리 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또 한명의 ‘짝퉁 이소룡’인 여소룡(발음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소룡의 영어 이름은 정말 짝퉁스럽게도 ‘Bruce Le’다) 감독, 주연의 <용화장성>(1990)에 출연했고 소림사를 무대로 한 TV시리즈 <무존소림>(1993)에는 소림사 스님으로 나왔다. 역시 체조로 다져진 유연한 액션이 볼 만했지만 분장한 게 너무 티나는 가짜 대머리여서 많이 아쉬웠다. 같은 시기 배우가 아닌 제작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1990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스포츠 브랜드 ‘리닝 스포츠’를 출범시켰고 그 자금력을 바탕으로 영화제작에 나선 것. <야반가성>(1995), <금옥만당>(1995)도 제작에 참여한 작품들이니 ‘선구안’이 그리 나쁜 투자자는 아니었다.
리닝의 출연작 중 주연으로 기억할 만한 작품은 양자경과 연인처럼 등장한 정소동 감독의 <칠금강>(1994)이다. 고아이자 대륙 출신인 7인의 특수 경호부대원의 리더로 출연한 그는 중국인 무기거래상과 미국쪽 무기거래상을 동시에 체포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마치 <가면 라이더>처럼 늘 오토바이를 타고 행동하는 그들은 그 상태에서 난이도 높은 액션을 선보이는데 리닝 역시 도마를 다루고 링에서 균형을 잡듯 오토바이 위에서 애크러배틱한 액션을 펼쳤다. 체조선수 아니랄까봐 떨어지는 물건도 굳이 몸을 날려서 몇 바퀴 돈 뒤 잡아야 직성이 풀리는 묘기를 선보였다. 하지만 홍콩영화사를 통틀어 영화 속에서 양자경의 마음을 얻은 몇 안 되는 남자치고는 촌스러운 하얀색 ‘난닝구’(제발 리닝 스포츠 제품이 아니길)가 귀엽긴 했어도 연기력이 별로였다. 침사추이 앞바다에서 양자경이 자신이 잡아야 할 대상인지도 모르고 함께 바다로 뛰어드는 장면은 민망함 그 자체다. 당연히 둘은 너무 안 어울렸고. 하지만 이연걸의 시작도 그러했듯 그가 계속 액션영화에 매진했다면 지금쯤 꽤 근사한 중견 액션배우가 돼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