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이 인간을 지배한다. EBS <다큐프라임> 제작진은 사람들을 한방에 모아놓고 하얀 연기가 점차 스며들도록 했다. 방이 연기로 가득해졌지만 모두들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남들이 가만히 있기에 나도 움직이지 않았다”고 했다. 1969년 달리와 라타네가 했던 ‘연기실험’을 재현한 것이다. 제작진은 이 밖에도 인간이 상황에 얼마나 쉽게 휩쓸리는지 보여주는 유명한 심리실험 15가지를 국내 최초로 재현했다. 횡단보도를 걷던 사람들은 그중 세명이 하늘을 올려다보자 일제히 하늘을 쳐다봤고 다른 이가 오답을 말하자 정답을 알면서도 오답을 골랐으며 치과의사가 혀를 코에 대보라고 하거나 경찰관이 팔굽혀펴기를 시키는데도 ‘권위’에 스스럼없이 복종했다.
그러나 이처럼 허약하고 형편없는 우리는, 또한 상황을 지배할 수 있다. 목격자가 많을수록 남을 도울 확률이 적다는 ‘제노비스 신드롬’은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평범한 청년에겐 예외다. 제작진은 같은 상황을 다르게 볼 수 있다면, 주어진 상황을 조금만 바꾼다면 인간은 타고난 선인이요,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