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를 살아본 사람이라면 백골단을 기억할 것이다. 일단 끌려온 전경 대원들과는 골격 자체가 달랐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당시에 무술 유단자로 구성됐다는 얘기도 들었다. 전경들이야 늘 대열을 이루고 있어 상대하기가 쉬운 편이었다. 저쪽에서 최루탄을 쏘면, 이쪽에서는 짱돌을 던졌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맞서기에 전경을 상대하는 것은 그리 무서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백골단은 다르다.
그들의 임무는 시위대의 체포에 있기 때문에 언제라도 대열에서 튀어나와 시위대로 돌진할 수 있었다. 무거운 진압복을 벗고 하얀 헬멧에 경무장을 하고 있었기에 몸놀림이 전경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게다가 신체조건은 얼마나 좋은가? 질주를 하는 속도 또한 거의 전국체전에서 보는 운동선수 수준이었다. 게다가 한번 붙잡히기라도 하면 가해지는 욕설과 구타의 남다른 차원이란….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백골단의 모습도 사라졌다. 그러다가 이번에 다시 부활한 모양이다. 뉴스를 보니 새로이 ‘경찰관 기동대’라는 것이 창설됐다고 한다. 이들이 창설 기념으로 진압 시범을 보이는 사진이 인터넷에 떴다.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를 연상시키는 검은색 보호장비를 착용한 채 고함을 지르는 모습이 매우 위협적이다. 저들은 도대체 누구를 향해서 저렇게 소리를 지르는 것일까?
적어도 90년대 이후 다시 거리에 나가 ‘정권 퇴진’을 외칠 일이 생기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게다. 정권이 워낙 복고풍이다 보니 거리 풍경도 복고로 돌아갈 모양이다. 도처에 경찰차로 바리케이드를 쳐놓고, 닭장차에 시민을 마구 연행하는가 하면, 수배자를 잡겠다고 아무에게나 검문검색을 하기도 한다. ‘수배자’, 이 말은 또 얼마나 오랜만에 들어보는 정겨운(?) 단어인가. 단 몇 개월 만에 세상이 이렇게 바뀔 수 있다니….
그동안 이명박 정권이 보여준 실력은 과연 눈부셨다. 미국에 배신당하고, 일본에 망신당하고, 중국에 업신여김을 당하고, 북한을 고립시키려다 외려 통미봉남에 걸려 북한에 퍼주지 못해 안달하는 처량한 신세가 됐다. 거의 종교적 신앙으로 ‘한·미·일 동맹’을 믿더니, 결국 미국과 일본 사이에서 독도문제로 외통수에 걸려버렸다. 집권 초기에 MB가 했던 말 기억하는가? “한국에 내 경쟁자는 없다.”
보이스 비 MB셔스, 우리의 MB는 미국의 부시, 러시아의 푸틴, 중국의 장쩌민 정도를 자신의 경쟁상대로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지금 드러난 것으로 볼 때 그의 MB션은 지나치게 야무졌던 것 같다. 미국에 뒤통수 맞고, 일본에 앞통수 맞고, 중국에 꿀밤 맞고, 북한의 코브라 트위스트에 걸린 MB. 문제는 이 글로벌 호구가 그래도 국내에서만은 자신의 경쟁자가 없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재미있지 않은가? 밖에 나가 줄줄이 얻어터지고 다니는 호구가 집에만 들어오면 갑자기 폭군으로 돌변한다. 방송사 물어뜯지, 인터넷 단속하지, 시위대 연행하고 체포하고 기소하지, 그것으로도 모자라 시민단체를 상대로 온갖 소송 다 걸어놓더니, 마침내 백골단까지 부활시켰다. 그렇게 억압하지 않으면 통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모양일까? 그렇다면 그 판단은 유감스럽게도 ‘지극히 옳다’.
부활한 백골단은 매우 상징적이다. 사회가 민주화되면 백골단은 저절로 기능을 잃는 법. 민주주의란 한마디로 억압이 아닌 자율에 기반한 통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사회에서 한동안 백골단이 사라졌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하필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난데없이 백골단이 부활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간단하다. 현 정권이 더이상 민주적 방식으로는 시민을 통치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얘기.
사진 속의 백골단원들은 당수 시범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 내뻗은 그들의 손 모양이 공교롭게도 장풍을 쏘는 듯이 보인다. 그런데 그 장풍으로 과연 시민들의 마음속에 타오르는 촛불까지 끌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