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렬하다. 극장 한가운데 들어선 무대. 사면이 객석으로 둘러싸여 손끝의 움직임은 물론 향수 내음까지 은밀하게 전달되는 오픈된 무대에서 배우들이 물어뜯을 듯 노려보고, 사납게 울부짖는다. <씨왓아이워너씨>는 근대 일본 문학의 거장으로 칭송받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소설 <케사와 모리토> <덤불 속에서> <용>을 원작으로 끌어오고, 역시 아쿠타가와의 단편을 토대로 만든 구로사와 아키라의 1950년작 <라쇼몽>을 디테일로 언급할 만큼 야심만만한 뮤지컬. 절대 진리라는 추상적인 가치에 의문을 던지는 이 작품은 ‘내가 원하는 것만 본다’(See What I Wanna See)는 간결하고 단정적인 제목과 달리 뜨겁고 논쟁적이다.
가장 먼저 무대를 차지하는 건 막간극 ‘케사와 모리토’. 중세 일본, 무력한 남편에 회의를 느낀 케사는 모리토와 맺은 불륜에 탐닉하지만 이마저도 염증을 느껴 마지막 정사를 나눈 뒤 그를 죽이려 한다. 귀를 찢는 파열음이 공기를 채운 가운데 모리토의 가슴에 단도를 꽂아넣는 케사. 뒤따르는 1막의 제목은 ‘라쇼몽’이다. 영화 <라쇼몽>과 마찬가지로 살인사건을 두고 각기 다른 주장을 펼치는 다섯 인물이 등장하지만 배경은 일본이 아닌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 극장에서 <라쇼몽>이 상영되던 어느 밤, 피에 굶주린 듯 뇌쇄적인 릴리와 그녀의 남편 루이, 그녀에게 반한 택시기사 지미가 센트럴파크의 음습한 어느 건물에 모인다. 지미는 여자를 겁탈한 다음 루이를 살해했다 하지만, 릴리는 남편을 죽인 이는 자신이라 주장하고, 죽은 루이는 영매의 입을 빌려 정숙하지 못한 릴리의 모습에 자살하고 말았다고 증언한다. 루이의 시체를 발견한 극장 경비원 역시 어딘가 미심쩍기는 마찬가지. 2막이 끝난 다음 <케사와 모리토>가 다시 삽입되지만 이번에 단도를 휘두르는 이는 케사가 아닌 모리토다. 그리고 이어지는 3막의 제목은 ‘영광의 날’. 9·11 이후 신의 자비를 의심하게 된 신부가 센트럴파크에서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는 거짓 계시를 퍼뜨리고, 마음을 의지할 무언가가 필요했던 절망적인 사람들이 여기에 모여든다. 모든 이들이 절실하게 기적을 바라던 순간 신은 그 모습을 드러내지만, 기적을 믿지 않았던 신부만이 이를 목격할 뿐이다. 모든 이를 위한 거짓과 단 한 사람만을 위한 진실. 그렇다면 진실은 과연 무엇인가.
치정과 살인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는 만큼 가장 매혹적인 건 역시 2막이다. 3막이 선사하는 은근한 유머와 화음의 조화도 인상적이지만 다정한 아내에서 치명적인 요부로, 사랑에서 배신으로 치닫는 변신의 템보가 무척이나 관능적이다. ‘미국 뮤지컬의 미래’라고 불린다는 마이클 존 라키우사 원작의 이 뮤지컬은 무엇보다 배우들의 탄탄한 개인기 없이는 성사될 수 없는 작품. 홍광호, 차지연, 양준모, 박준면, 김선영, 강필석 등 거의 모든 배우가 훌륭한 연기력의 소유자라는 게 거침없는 각본에 조응하는 화룡점정이랄까. 뉴욕에서 <라쇼몽> <보이체크> <고도를 기다리며> 등을 선보인 콜롬비아 출신 하비에르 구티에레즈가 지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