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이 회화에 비해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비단 3차원의 작품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재료를 택할 수 있고, 또 물성을 작품에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 역시 가지고 있다. 조각에 있어서 긴 역사와 전통을 가진 이탈리아에서 대표적인 현대작가 31인의 조각 작품 50여점이 국내에 소개된다. 언뜻 보기에는 핸드백, 컵, 변기 등 그저 일상적인 오브제처럼 보이는 작업들이지만, 잘 들여다보면 재료와 물성, 그리고 에너지와 관계를 맺고 있는 조각 작품의 재미가 엿보인다. 전시 공간의 먼지와 쓰레받기로 ‘곧 사라질 아라베스크’ 문양을 창조한 이솔라와 노르치의 작업은 조각 개념에 대한 새로운 화두를 던져준다. 신체의 배설물이 일시적으로 담기는 공간인 변기를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로 마감처리한 니콜라 볼라의 <허상: 변기>도 눈여겨볼 만하다. 언뜻 보기에 이 작품은 예술의 권위에 도전하기 위해 미술관에 ‘변기’를 가져다놓았던 마르셀 뒤샹의 <샘>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변기의 용도 그리고 크리스털이라는 재료를 놓고 본다면 이 작품은 오히려 변기 안에서 작용하는 의미의 모순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고전적인 조각의 재료인 대리석으로 작업한 작품들도 속속 보인다. 그간 쉽게 볼 수 없었던 이탈리아 현대 조각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기회다. 서울대 미술관이 주한이탈리아대사관, 주한이탈리아문화원, 그리고 전시 작품들을 대거 소장하고 있는 이탈리아 토리노 예술문화재단 가루죠시각예술원과 공동으로 주최했다. 관람료 3천원(단체 및 관악구민 2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