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하남과의 사랑도 이미 해봤고(드라마 <사랑한다 말해줘>), 하룻밤 불장난이 가져오는 폐해(영화 <내 생애 최악의 남자>)도 잘 알고 있다. 7월30일부터 시작하는 SBS 수목드라마 <워킹맘>에서 염정아는 또다시 비슷한 상황에 직면했지만 이번에는 좀 다르다. 염정아의 현재 모습이 비친다. 지난 1월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된 ‘리얼맘’ 염정아가 캐릭터 안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집에만 있었더니 일하고 싶고 막상 촬영장에 나오니 집에 있는 아이가 생각난다. 그는 극중 두 아이를 키우면서 회사도 다녀야 하는 ‘워킹맘’ 최가영과 도무지 답이 안 나오는 길을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골격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깡마른 몸매는 둥글어졌고 패셔너블하던 인상도 많이 옅어졌다. 여기에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높여가며 남편에게 “징그러운 인간아”라며 타박하고, 빽빽대는 아이들에게 “맞아볼래?”라며 눈을 부라리는, 여느 아줌마의 행동을 덧입힌 염정아는 분명 낯설다. 최진실이 처음으로 억척스런 아줌마로 변신했을 당시 만큼 촌스러운 외양은 아니지만, 세련된 이미지의 대명사였던 염정아로서는 상당한 변신이다. 그는 오직 <사랑한다 말해줘>를 함께했던 오종록 감독만을 믿고 산후조리를 채 끝마치기도 전에 덜컥 작품을 수락했다. 임신했을 때 18.5kg가 늘어 원래 몸무게로 돌아오려면 아직 5.5kg을 더 빼야 하지만 여분의 살 때문에 망설이지는 않았다. “아줌마 역할에는 살집이 있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아서요.” 뾰족하고 차가운 인상 탓에 성격마저 완벽주의일 것 같던 염정아가 들려준 느긋한 답이었다. 화면에 예쁘게 비치길 원하는 게 모든 여배우들의 속마음일 텐데, 염정아에겐 이제 그보다는 작품에 동화되는지의 여부가 더 중요해졌다는 뜻이다. 다시 한번 기존 이미지를 뛰어넘느냐 마느냐 시험대에 선 그에게 한결 여유로워진 태도가 눈에 띄었다.
이 작품은 지난해 강남의 교육열풍을 다뤘던 드라마 <강남엄마 따라잡기>의 김현희 작가가 집필을 맡았다. 김 작가는 주부들이 공감할 만한 디테일을 잡아내는 데 여전히 능숙하다. 가정이 있으면서도 미혼여성을 향해 현란하게 눈을 굴리고, 여자와 노닥거리느라 중요한 제사에 늦고 심지어 잔뜩 술에 취해 제사상 앞에서 고꾸라지는 남자. 주부들이 “저거 내 남편인데”라고 무릎을 탁 칠 만한 에피소드가 곳곳에서 펼쳐진다. 주인공이 육아와 일을 양립해야 하는 상황으로 철저히 몰아붙이기 위해, 비상구도 일찌감치 막아뒀다. 대개의 워킹맘들이 슬그머니 육아문제를 기대게 되는 부모님들에게 “황혼인 그들도 사랑을 갈구한다”는 설정을 끼워넣은 것. 마지막으로 기댈 부모마저 손주 돌보기 대신 자신의 인생을 찾아 나선다.
가영의 눈앞이 깜깜한 것은 남편의 외도 상대이자 회사 후배였던 고은지(차예련)가 이제는 가영의 상사로 군림할 뿐 아니라, 은지의 어머니 김복실(김자옥)이 다름 아닌 자신의 아버지 최종만(윤주상)의 연인이란 사실이다. 복잡하게 얽히고설키게 된 가정사의 주범은 남편 박재성(봉태규)이다. 염정아는 몹시도 미운 재성이 실제 남편이라면 절대 같이 못살 것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설마 상대가 봉태규씨일 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쾌재를 불렀죠. 밉상이지만 봉태규씨가 연기하니 예뻐 보이지 않나요?”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