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돌아왔다.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의 김종현 집행위원장은 올해 10회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여느 때보다 더 바쁘게 뛰어야 했다. 1998년 학생들과 함께 다큐멘터리 <너희가 중딩을 아느냐>를 만들었던 그는 학교쪽과의 갈등으로 해직당한 뒤 올해 초 복직했다. 서울영파여자중학교의 영어선생님으로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한편, 청소년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일하면서 학기 중에도 해외영화제를 순방하는 모험을 감행해야 했다는 그는 아이들의 시험이 끝난 요즘에서야 한숨을 돌리고 있었다. “내 천성이 아이들을 좋아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아직 이 일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걸 보면 즐거움을 느끼는 건 맞는 것 같다. (웃음)” 내년에도 선생님의 외도는 계속될 예정이다.
-요즘도 학생들에게 영화를 가르치고 있나. =지금은 아이들에게 영화 이야기를 잘 안 한다. 아직 그들에게 나를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이야기를 꺼내기가 어렵더라. 복직한 뒤에도 영화제작반이 아니라 밴드부를 지도하면서 아이들과 놀고 지냈다. (웃음) 하지만 이제 아이들이 영화제를 찾으면 내가 어떤 곳에 관심이 있는지 알게 될 것 같다.
-영화제가 10회를 맞이했다. 9회를 운영할 때부터 걱정이 됐겠다. =걱정은 많이 했지만, 1회 때의 컨셉을 그대로 가져가는 게 옳다고 봤다. 규모 면에서는 해외 청소년들의 작품과 성장영화들을 더 많이 가져왔다는 것이 10회의 특징일 거다. 또한 한국 성장영화들을 상영하는 섹션을 만들었고, 올해 독일을 시작으로 앞으로 매년 각 나라의 성장영화 특별전을 열기로 했다. 아마도 내년에는 일본의 성장영화들이 소개될 거다. 그 밖에도 성장영화를 지원하는 사전제작지원제도를 신설했다.
-외국의 학생들과 우리나라 학생들이 만든 작품의 차이를 많이 느꼈을 것 같다. =우리 학생들은 극영화에 강하다. 그런가 하면 외국 청소년들은 다큐멘터리에 특히 강하더라. 개인적으로는 우리 학생들이 다큐멘터리를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는데, 역시 입시에 시달리느라 시간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5년 전에 비해서는 양쪽간의 차이가 많이 없어졌다. 인터넷이 활성화되어선지, 지금의 작품들을 보면 같은 지구 안에 살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10년을 거친 청소년영화제의 성과를 어떻게 결산하고 있나. =이 영화제는 <너희가 중딩을 아느냐>가 계기가 된 행사다. 그 작품이 아이들에게 자신도 진실을 드러낼 수 있고,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기 때문에 청소년영화제를 하게 됐다. 1회 때 참여한 학생들이 이제는 충무로 현장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학생이나 선생님뿐만 아니라 심리학 연구자나 의사, 상담치료사 등도 이 행사에서 발굴된 작품을 찾고 있다. 해외의 영화인들과 교류했던 것도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 많은 청소년 지도자가 서울에 오고 싶어하는 걸 보면 이제는 찾아갔던 영화제가 아니라 찾고 싶은 영화제가 된 것 같다.
-이곳을 거쳐간 영화인들이 스승의 날에 학교를 찾아오듯 영화제를 찾는 경우는 없나. = 김곡·김선이나 김삼력, 윤성호, 김태희 감독 등이 있고, 편집이나 음향 등 현장에서 스탭으로 일하는 친구들이 꽤 있다. 그들이 이 영화제를 고향처럼 생각하는 건 있다. 그 친구들 때문에라도 이 영화제가 변질될 수는 없을 것 같다. 올해는 10주년이라서 이곳을 거쳐간 영화인들을 초청해 일종의 홈커밍데이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제는 오히려 우리가 그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점이 된 것 같다. (웃음)
-영화제 초기부터 경쟁부문을 가져왔다. 혹시 학부모들이 자녀의 입시를 위해서 영화제에 출품시키는 경우도 있을 것 같다. =1, 2, 3회 때 수상했던 친구들이 몇몇 연극영화과에 들어가면서 그런 이야기를 종종 듣곤 했다. 그런데 그런 목적을 나쁘게 볼 것만은 아니다. 나는 오히려 재능있는 아이들이 재능만으로 연극영화과에 갈 수 있는 때가 와야 한다고 본다. 단지 우리 영화제의 수상결과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상세한 활동내역을 검토받아서 진학을 하는 것이다. 국·영·수 과목 점수로 연극영화과에 진학하는 건 좀 이상하지 않나. 좀더 많은 대학들이 이런 맥락에서 문을 열었으면 좋겠다.
-<너희가 중딩을 아느냐>를 만든 영파여중 아이들은 이제 20대 중·후반이다. 어떻게 자랐는지 궁금하다. =그 아이들 중 3명은 영화쪽에서 일하고, 2명은 방송쪽에서 일하고 있다. 지금 봐도 기특한 친구들이다. 여전히 자기 표현의 목소리를 당당히 낼 줄 알고 건강하게 살고 있다. 가르치는 입장에서나, 부모의 입장에서 우려했던 것들을 그들이 직접 불식시키고 있다. 앞으로 10년 뒤에는 지금의 아이들한테 그런 느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선생님과 영화제 집행위원장, 또 각종 청소년 관련 문화사업의 정책가로서 살아온 시간을 돌아봤을 때는 어떤 생각이 드나.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며 살았는데, 중요한 건 어떤 일에서든 포커스는 청소년이었다는 거다. 학교에서나 영화 일을 하면서, 문화활동에서도 중심은 아이들이었다. 그 모든 일이 다 한 묶음인 거나 마찬가지다. 남들은 개인생활이 없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데, 이게 내 개인생활인 거다. 그러고 보면 아이들과 정말 질긴 인연이 있는 것도 같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