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님 뵙고 싶었습니다. 정말 뵙고 싶었어요. 정말 멋지십니다 누님. =용건이 뭐지?
-아. 물론 인터뷰 때문에 만나자고 요청한 거죠. 근데 이렇게 정말로 나타나실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나와주시니 어찌나 감사하신지 눈물이 막 나고 팔다리가 저려요. =그럼 인터뷰를 시작하시든가.
-아 넵. 시작부터 이런 질문 드리기가 좀 무섭긴 한데. 누님이 일하시는 비밀 암살 조직 프레터니티는 희생자를 방직기가 천으로 짜낸 코드를 읽어서 결정한다고 들었습니다. 양심의 가책도 없이 기계가 지목하는 인간을 죽이는 게 좀 꺼려지지 않으십니까. =세상 이치가 그런 거지. 경험상으로 보자면 방직기가 지목하는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그 인간은 나중에 더 큰 후환을 만들어내지. 그런 게 바로 세계가 돌아가는 논리이고 방직기는 그 논리를 충직하게 따를 따름이야. 생각해봐. 쓸모없는 인간애나 인간에 대한 믿음 따위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따지자면 죽였어야 할 인간들을 내버려둔 건 이해가 안 됩니다. 히틀러는 왜 그냥 두셨어요? 무솔리니는? 이디 아민은? 조지 부시는? 아아. 빌 게이츠는 정말 아깝습니다. 그 인간만 암살해주셨더라도 우리 모두 바이러스랑 악성 코드 고민없이 안전한 맥을 쓰며 기뻐했을 텐데. =내가 방직기니? 방직기한테 물어보렴. 다음에 네 이름이 안 나오기만 기도하라고.
-근데 누님. 인터뷰고 인간애고 뭐고 말입니다. 실은 만나뵙자고 요청드린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응?
-저도 킬러로 만들어주십쇼. 저도 킬러가 되고 싶습니다. 제가 제이슨 본이나 제임스 본드 같진 않지만 그래도 제임스 맥어보이랑 비교하면 키도 몸집도 비슷하거든요.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칼로 찌르셔도 좋고 피터지게 때리셔도 좋아요. 죽이지만 말고 뭐든 하십쇼. 킬러로만 만들어주세요. =우리 세계의 킬러는 타고나야 하는 거야.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킬러 유전자를 몸에 지고 태어나야 하는 거지.
-그럼 제가 킬러 유전자를 갖고 있는지 없는지만이라도 한번 시험해주십쇼. 한번 해봐야 얘가 킬러인지 아닌지 알 거 아닙니까. 천재 유전자를 타고났는데도 그걸 모르고 샐러리맨으로 늙어죽는 사람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흐음. 그럼 이거 쏴봐.
-네? 뭘…. =이거. 총말이야. 네가 정말로 킬러 유전자를 타고났다면 총 쏘는 법은 몸이 저절로 깨닫게 되어 있어. 저기 삼중으로 쌓여 있는 컨테이너 박스 밑에 쥐새끼 한 마리 보이지? 수염만 딱 맞춰서 날려봐.
-하하 농담도. 그런 걸 제가 맞힐 수 있을 리가 없죠. 제가 부산에서 행정병으로 근무한 터라 총은 훈련소에서만 몇번 쏴봤는데요. 게다가 낡은 M16밖에 안 건드려봐서 이런 베레타 권총은 어떻게 쏘는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총 잘 쐈으면 전방에 배치됐죠 후방에서 바닷바람 맞으면서 컴퓨터나 두들겼겠어요? =잔소리말고 쏴. 맞을래?
(피터지는 흐느낌과 작렬하는 총소리와 허공을 가르는 쥐새끼의 비명소리. 폭스가 고기처럼 너덜너덜해진 쥐새끼 시체를 들고 온다.)
=수염만 맞히랬더니 이게 뭐니. 킬러 유전자 좋아하시네. 너 대체 왜 날 찾아온 거야. 나한테 훈련을 받고 싶어하는 이유가 뭐야.
-그게요. 우물쭈물. =누나 화났다. 거짓말 하나에 한대씩.
-거짓말 아닙니다요. 저 정말 킬러 되고 싶어요. 매주 목요일마다 마감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십니까. 편집장이랑 편집기자는 빨리 마감하라고 말없이 닦달이죠. 글은 마음대로 안 써지죠. 저 그냥 총이나 쏘고 폼나게 살래요. 저 좀 거둬가세요. 아니아니 차라리 입양을 해주세요. 듣자하니 대륙에서 하나씩 입양하신다던데 나이가 뭐가 문젭니까 말만 잘 들으면 되죠. 입양을 해주세요 입야아앙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