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앨범 ≪Prestige≫가 실패한 건 비극이다. 속상하지만 한번 더 돌아보자. 사람들은 <Cum2me>라는 싱글의 제목과 의상이 너무 노골적이라고 난리를 쳤다. 순결한 척 뒤로 호박씨 까는 한국 네티즌의 졸렬함이 짜증스런 방식으로 표출된 거다. ‘아줌마가 뭐하는 짓이냐’는 댓글에는 하나하나 댓댓글을 달아주고 싶었다. “너네가 죽었다 깨어나도 엄정화처럼 멋지게 나이먹을 수 있을 거 같아?”라고. 이젠 상관없다. 영리한 엄정화는 9집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끝내주는 새 앨범 ≪D.I.S.C.O≫를 들고 복귀했다. 앨범을 프로듀싱한 건 지금 한국에서 가장 품질 좋은 공장생산품을 만드는 YG엔테테인먼트다. 빅뱅도 곡을 쓰고 피처링을 했다. 첫 번째 싱글 <D.I.S.C.O>는 대프트 펑크를 연상시키는 세련된 댄스곡이고 G드래곤이 만든 <Party>는 지금 트렌드가 뭔지 제대로 이해하는 곡이다. 어디선가 들은 듯한 노래들이지만 작곡과 믹싱의 수준이 비범할 정도로 높다. 그렇다면 이건 엄정화가 아니라 YG의 앨범인가? 그렇지 않다. 엄정화는 직접 고안한 컨셉을 딱 맞는 프로듀서에게 요구하고 통제할 줄 아는 유일한 여자 대중가수다. 게다가 그녀는 먼 옛날 주영훈의 말처럼 “노래를 연기할 줄 안다”. 가요계 소녀시대에 당도한 위풍당당한 언니의 재기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