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우리가 들어본 적 없는 음악. 시규어 로스의 음악을 규정하는 말로서 저것보다 빨리 와닿을 문장은 없다. 한때 슈게이징이라는 편협한 용어로도 설명됐던 시규어 로스의 음악은 편의에 의해 만들어진 장르의 카테고리 어디에도 속할 수가 없다. 그들은 클래식 오케스트레이션의 권위도 복종시킬 수 있는 록이고, 역사상 가장 상상력이 뛰어난 팝이며, 속세에 진정한 영혼의 자유를 가르치기 위해 내려진 성가(聖歌)다. 마치 고고학자처럼, 시규어 로스는 예술로서의 음악의 원류를 찾으려는 과제를 실천 중인 것도 같다. 언제나 모국어인 아이슬란드어로 앨범 이름을 짓고 가사를 쓰고 부르는 그들이 이해될 법하다. 어떤 이야기를 담았는지 궁금치 않은 건 아니지만, 시규어 로스는 바벨탑 이전의 시대를 상상하며 노래하는 음악가들 같아서 굳이 언어를 매개로 소통하지 않아도 풍요롭다. 종교의 이름없이 만들어질 수 있는 가장 영적인 음악. 이번에 발매된 다섯 번째 정규앨범은 예외적으로 <All Alright>라는 영어곡을 담고 있으며, 전작들보다 몇배나 감상에 무리없는 대중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 라이언 맥긴리가 찍은 앨범 커버도 소장의 물욕을 일으킨다. 시규어 로스를 알고 싶다면 이번 앨범부터 시작하길. 참고로 이번 앨범의 제목 뜻은 이렇다. ‘아직도 귓가를 울리는 잔향 속에서 우리는 끝없이 연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