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120억원 규모의 음향기기 회사를 30년간 운영해온 회장님은 후계자로 누굴 세울지 고민이다. 급기야 오랜 시간 함께 일한 전무와 상무, 전문경영자인 사장, 뒤늦게 일을 배우기 시작한 큰아들을 후보로 정하고 직접 인터뷰에 나선다.
부모의 이혼으로 다섯살 때부터 친척집을 전전하며 자란 스무살 은지는 엄마가 자신을 왜 버렸는지 궁금하다. 용돈 받을 때나 가끔씩 보는 엄마가 자신을 사랑보다는 책임감 때문에 키운 것은 아닌지 하는 혐의를 지울 수가 없다. 결국 이모와 외할머니, 엄마의 직장 동료들을 만나 물었다. 엄마가 자신을 왜 버렸냐고.
SBS <인터뷰 게임>(화요일 오후 8시50분)은 가족, 친구 등 소중한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궁금증과 고민을 해결해보는 프로그램이다. 사연을 가진 신청자가 인터뷰어가 되어 주변 사람들을 인터뷰이로 삼아 진실과 답을 찾아간다. 지난 3월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선보이며 좋은 반응을 얻은 뒤 6월24일부터 정규편성됐다. 프로그램을 연출한 남규홍 PD는 “대화가 단절된 가족에 주목했다”며 “기자나 PD가 딱딱하게 묻는 것보다 자신이 가진 궁금증을 직접 묻고 듣는 인터뷰 방식으로 가족간에 쌓인 갈등과 오해를 풀고자 했다”고 말했다.
정확하고 예리한 질문만큼 듣기가 중요한 ‘인터뷰’ 방식은 예상대로 효과적이었다. 글로벌 마인드, 강력한 리더십 등을 가진 후계자를 찾던 회장님은 인터뷰 과정을 통해 늘 가까이 대했지만 속깊게 알지 못했던 직원들과 자식을 좀더 잘 알게 됐다. 자신이 ‘밖에선 21세기 경영자, 안에선 19세기 아버지’였단 사실도 깨닫는다. 은지도 엄마에게 품은 오해를 풀었다. 엄마가 왜 어린 자기를 두고 집을 나갈 수밖에 없었는지, 또 같이 살기 위해 얼마나 악착같이 일하고 있는지 주변 사람들에게 들으며 눈물로 엄마의 아픈 마음을 헤아렸다. 귀를 여니 굳게 닫혔던 마음이 열리는 건 한순간이었다. 남규홍 PD는 “많은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은 부부문제와 부모 자식간의 문제였다”면서 “파란색 마이크를 들고 직접 해답을 찾아나선 출연자들은 인터뷰 과정에서 서러움과 고통을 한바탕 눈물로 쏟아내며 서로를 이해하는 귀중한 시간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일반인이 만드는 다큐멘터리의 느낌을 주는 <인터뷰 게임>은 보통 사연당 7~10일간의 촬영기간을 거친다. 제작진은 인터뷰가 이어지지 못할 때 끼어들어 진행을 도울 뿐 답을 찾는 여행의 길 안내자 역할만 한다. 프로그램은 같은 질문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말의 힘이 증폭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터뷰의 진정성처럼 묵직하게 전달한다. 준비된 인터뷰어와 달리 갑작스럽게 마이크를 건네받은 인터뷰이들이 방송을 경계하거나 재밌어하는 반응에서 터지는 웃음은 덤이다.
한편으로 걱정되는 건 사생활 노출에 대한 지적이다. 사연에 따라 깊이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아픈 과거사 같은 지극히 사적인 것들이 튀어나온다. 제작진은 “사적인 내용을 보여주면서 사적인 내용을 또 얼마나 감출 것인지도 딜레마지만 인터뷰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데서 그 답을 찾겠다”고 했다.
애부터 덜컥 만든 딸과 동갑내기인 스무살 사위가 가장의 능력이 있는지 알고 싶던 장모, 피아니스트가 될 줄 알았던 딸이 개그맨이 되겠다고 해서 걱정인 엄마 등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출연자들은 인터뷰 끝에 원하는 답을 듣든 못 듣든 간에 의미있는 시간이었음을 털어놓는다. 일주일간의 인터뷰 여행이 자기 성찰의 시간도 됐음을 인정한다. 마이크가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사이, 나와 내 소중한 주변 사람들 사이에 놓인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가 돼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