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건대, 나는 얼마 전까지 불면증 환자였다. 불면증은 무서운 병이다. 이 병에 걸리면 하루 스물네 시간 중 고작 한두 시간 정도만 온전히 잠들 수 있다. 그런 생활이 몇 개월쯤 지속되면 잠을 자고 있어도 자는 것 같지 않고, 깨어 있을 때에도 약간은 몽롱한 정신으로 살게 된다. 아주 늦은 새벽에도 내가 깨어 있다는 걸 아는 몇몇 친구들은 나를 완벽한 야행성 인간으로 여겼다. 하지만 숙면을 위해 온갖 노력을 반복하다 해가 떠오를 때쯤 잠이 드는 기분이 썩 상쾌하지는 않았음을 지금은 말할 수 있다. 2007년 여름부터 2008년 5월까지의 일이다.
불면증에 대한 나의 고백을 절대 믿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있다. 지금은 나의 ‘선배’가 되신 <씨네21>의 기자들. 사연은 이렇다. 이곳에 입사하기 전 나는 1년 동안 <씨네21>의 객원기자로 일했다. 객원기자의 주요 업무는 일정 기간 동안 열리는 국내의 크고 작은 영화제에 참석해 <씨네21> 기자들과 함께 공식 데일리를 만들고 취재를 돕는 것이다. 영화제에 가면 데일리를 만드는 기자들은 같은 숙소에 묵는데, 나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제대로 씻지도 않은 채 잠이 들곤 했다. 낯선 장소에 적응하느라 잠을 설치기는커녕 옆사람이 뒤척이는 줄도 모르고 매번 곤히 잤으니, 나와 함께 숙소를 사용했던 선배라면 ‘불면증이 웬말이냐’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객원으로 활동했던 기간이 불면증을 앓았던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러한 경험에 따르면 잘 자고 못 자는 시기의 차이란 ‘당신은 자신의 에너지를 마음껏 소비하며 살고 있는가’란 질문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듯하다. 나는 <씨네21> 객원기자로 활동할 때만큼은 정말 ‘마음껏’ 즐겼다. 객원기자는 기대 이상으로 많은 일을 경험하게 된다. 현장에서 예상치 못했던 ‘뉴스’를 접하게 될 수도(지난 부산영화제의 <M> 기자회견장이 그랬다), 한 분야에서 명성을 쌓은 대가의 인생 얘기를 ‘직접’ 들을 수도 있다(독일의 페미니즘 영화감독 헬마 잔더스 브람스와의 대화는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집중의 대상이 다양할수록, 마음속에 품어두었던 개인적 고민들을 금세 잊을 수 있었다. 그리고는 내일을 생각하며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던 것 같다. 반면 영화제에서 돌아오면 모든 에너지를 쏟았던 그곳에서의 추억이 자꾸만 떠올라 한동안 잠을 못 이루는 부작용(?)이 발생하곤 했다. 객원기자로 일했던 1년은 이처럼 설레거나 혼란스러운 감정의 반복이었다. 나의 수면 습관 또한 변덕스러운 마음 상태처럼 이리저리 변화했다. 짝사랑. 지금은 그때의 감정을 이 한마디의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 내게 객원기자의 추억은 <씨네21>이란 짝사랑의 대상을 아주 가까이서 훔쳐보고, 경험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짝사랑 상대를 직업으로 삼게 된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한가. 마감의 압박 때문에 동트고 자리에 눕는 일은 종종 있지만, 잠이 오지 않아 괴로운 불면의 날들은 더이상 계속되지 않는다. 이런저런 실수를 하며 ‘나는 왜 이럴까’ 늘 자책하지만 마음이 무겁지는 않다. 여전히 매력적인 사람들을 많이 만나며, 매 순간 에너지를 즐겁게 소비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를 직접 체험하고 싶은 분들이라면, 주저하지 말고 객원기자에 지원하시라. 영화와 현장을 모두 좋아하는 당신이라면, 후회하지 않을 것을 보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