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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 스토리] 이성 OFF, 감성 ON

이성보다 감성으로 호소하는 CF들, KTF의 SHOW, 박카스, 초코파이-정

어떤 외과의사가 급박한 상황에 환자의 동의없이 돼지의 간을 이식했다. 환자는 사람이 아닌, 돼지의 간을 이식했다는 것에 분개해 소송을 건다. 의사는 그때 사람의 간을 구할 수 없었고 돼지의 간을 이식하지 않았다면 그 환자는 죽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의사는 당시 정부보조금으로 돼지의 장기이식을 연구 중이었고 그해 안에 이식 실험을 해야 하는 압박을 받고 있었다. 이러한 정황 때문에 배심원은 의사가 자신의 연구 때문에 불필요하게 돼지의 간을 이식했다는 환자쪽 주장에 더 신뢰를 두었다. 불리한 상황에서 의사쪽 변호사가 최후 변론을 한다. “환자가 그렇게 혐오해 마지않는 그 돼지의 이름은 마이클이었습니다. 우리 한번 불러봅시다. 마이클. 우리 잠시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죽어간 마이클의 명복을 빕시다.” 결국 배심원들은 의사쪽 손을 들어준다.

미국 법정드라마 <엘리 맥빌>의 에피소드 중 하나다. 왜 배심원들은 마음을 돌렸을까? ‘돼지의 쇼’ 때문이다. 감성을 자극하는 쇼. 돼지의 이름이 ‘마이클’이라는 것은 재판의 이슈와 관계가 없다. 하지만 판결에 영향을 끼쳤다. 가장 이성적이어야 할 판결에서 한낱 돼지에게 이름을 붙여줌으로써 ‘동정심’이라는 감성이 개입된 것이다.

인간은 이성적일까? 광고라는 프리즘으로 볼 때 인간은 이성적이기보다 감성적이다. KTF가 ‘SHOW’를 런칭하기 전 소비자 조사를 해보았더니 핵심 서비스인 화상통화에 사람들은 긍정적이지 않았다. 남녀를 불문하고 불편할 것 같다는 반응이었다. ‘앞으로는 맨 얼굴로는 전화 못하는 것 아니냐’, ‘아내 몰래 다른 곳에 갔는데 전화 오면 어떻게 하느냐’. KTF는 이러한 장벽을 감성으로 뛰어넘었다. 이성적으로 화상통화를 판단하지 못하도록 ‘재미’라는 감성을 덮어 씌웠다.

한살배기의 걸음마와 옆방에 MT를 온 여대생들, 대통령 꿈과 탕수육은 화상통화 서비스와 전혀 관계가 없다. 광고 끝에 이 모든 것이 화상통화로 이루어진다는 느슨한 연결고리만 만들어놓았다. 하지만 1살, 7살, 20살의 쇼를 보면 즐겁다. 그 즐거움은 ‘SHOW’에 대한 이성적 판단을 유보시키고 그냥 ‘SHOW’를 좋아하게 만든다.

‘박카스’는 자양강장제다. ‘비타500’과 같은 경쟁상품들이 나오면서 예전의 독점적 위치를 위협받고 있다. 그런데 박카스는 “우리가 원조다”, 혹은 “박카스가 맛이나 효과가 더 좋다”고 이성에 호소하는 대신 ‘당신의 피로회복제는?’이라는 캠페인을 시작함으로써 감성의 영역에 뛰어들었다. 박카스라는 자양강장제품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개개인의 피로를 가시게 만들어주는 것들로 공감을 만들고 박카스는 광고 말미에 슬쩍 붙여버린다. 할머니의 재봉틀과 박카스는 아무 상관없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향수, 직장인으로의 고단함과 같은 ‘공감’은 비타500과 같은 경쟁 브랜드가 나온 뒤 ‘구식’으로 느껴졌던 박카스를 왠지 모르게 친근하게 만든다.

‘초코파이-정’도 이런 접근을 했다. 오리온 초코파이는 다른 브랜드의 초코파이와 분명히 구별하기 위해 ‘정’이라는 캠페인을 펼쳤다. ‘어떤 맛이 더 좋을까’, ‘맛은 비슷비슷하니까 가격 보고 정하자’ 같은 이성적 기준은 사라졌고, 그냥 그놈의 ‘정’ 때문에 오리온 초코파이를 먹게 만들었다.

산업이 발달할수록 제품들간에 큰 변별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경쟁제품에 비해 제품상의 우위가 미약하다면 광고의 역할은 이성을 마비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광고는 소비자의 니즈(needs)를 자극하는 이성적인 접근보다 원츠(wants)를 만드는 감성적인 접근이 되어야 한다. 당신의 판단이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가?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감성적인 돼지의 쇼’에 이끌려 비이성적인 판단을 거듭하고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