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안. 계룡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분지로, <정감록>을 통해 조선왕조 이후 신도읍이 될 것이라고 예언되면서 이상사회의 터전으로 받들어졌고, 일제시대 이래 각종 신종교와 무속신앙의 집성지가 됐다. 미술가 박찬경의 <신도안>은 바로 현대인들에게는 낯설게 느껴질 그 공간을 조명한다. <블랙박스: 냉전 이미지의 기억> <세트> <파워통로> 등으로 미술과 영화의 접점에 선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해왔으며 박찬욱 감독의 동생이기도 한 박찬경은 미신으로 폐기처분됐던 ‘계룡산 문화’를 다큐멘터리와 실험영화가 혼합된 방식으로 불러냈다. 6월21일부터 8월17일까지 신사동 아틀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리는 개인전에 앞서 작가와 이야기를 나눴다.
-신도안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과거 계룡산을 찾은 적이 있는데, 산의 모습이 굉장히 충격적이더라.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장엄하면서도 두려운 느낌이었다. 관심이 생겨서 자료를 찾아봤더니 무속의 중심지이고 역사가 뿌리 깊더라. 신종교, 무속신앙 등 다양한 종교들이 뒤섞여 있는데, 알아가는 과정에서 마침 자료를 수집하고 계신 분을 알게 됐다. 그분이 보여준 자료들이 굉장히 놀라웠고, 바로 영화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작품에 드러난 신도안의 모습이 굉장히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두렵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다. =사실 지역의 정신적 문화는 미신과 신비주의로만 치부되지 않았나. 제도 종교가 토착화에 성공하고 급성장한 반면에 그 원천은 미신으로 취급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우리는 토머스 무어의 <유토피아>를 이야기하면서도 한국적 이상사회라는 것은 폄하하고, 기도문과 주문도 사실 같은 것인데 한쪽에 대해서만 강한 편견을 갖고 있다. 한국의 근대화를 이야기하면서 타자에 대한 논의를 많이 하는데, 나는 지역종교가 바로 최대의 타자라고 생각한다.
-전작들은 주로 냉전과 분단을 다루고 있지만, 역사와 기억에 관한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이번 작품과도 공통점이 있다. =역사적으로 억압된 기억들에 대해 계속 이야기해온 것 같다. 냉전, 분단에 대해서도 사실 블록버스터영화들만 많이 나오지 않았나. 그것도 신기한 거다. 요즘은 사극들이 주로 나오는데, 억압이 심하기 때문에 오히려 상업적인 방식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 같다.
-미술가이지만 영화적인 작업들을 해왔다. 전시공간에서 작품이 상영되는데 45분이라는 상영시간이 부담스럽진 않나. =요즘은 미술과 영화의 경계가 없다. 물론 45분은 전시로 따지자면 엄청나게 긴 시간이다. 하지만 내 작품은 몇개의 에피소드로 나뉘어져 있고 계속 반복되면서 상영되기 때문에 중간에 봐도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형인 박찬욱 감독과 서로의 작품에 대해 조언을 주고받나. =둘 다 워낙 바쁘니까 세부적인 이야기들은 못한다. 형이 시나리오를 보내주면 내가 읽어보고 이야기를 해주고 또 내가 작업할 때도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그게 내용적인 조언은 아닌 것 같다. “잘 지내지?” “응” 이런 식이다. (웃음)
-다음 작품으로 구상하는 것이 있나. =펀딩의 문제인데, 사실 <신도안>이 일종의 트레일러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아직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남아서, 최종적으로는 신도안에 대한 1시간 반짜리 작품을 만들고 싶다. 그 다음으로는 극영화를 생각하고 있다. 물론 내가 그런 작업에 익숙하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