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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내 생애 최초의 칸
최하나 2008-06-27

기억이란 오래 묵을수록 연하고 보드라워진다. 한때 치를 떨 정도로 분노했거나 가슴을 후벼 팠던 상처도 감정의 모서리가 마모되면서 결국엔 ‘그땐 그랬지’ 정도의 두루뭉술한 덩어리로 남는다. 그러니 호의적인 기억은 두말할 나위 없다. 시간의 경과에 비례해 추억의 당도가 꾸역꾸역 상승한다. 가끔씩 드물게 그 상승의 기울기가 몹시 가팔라질 때가 있는데, 바로 얼마 전 그 특수한 사태를 경험했다. 칸. 지금 막 이 한자를 타이핑하는 것만으로도 심장 박동이 빨라졌으니 이건 정말 중증이다. 칸(아, 다시 한번 가슴이 떨린다)에 다녀온 지가 이제 2주 남짓인데, 당도는 평소의 20배속으로 치솟아 이제는 가히 맹목적 찬양의 수준에 이른 것 같다.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좋지 않았던 것들부터 (애써) 말해보련다. 칸은 국제영화제를 단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무지한 기자의 (드레스와 턱시도풍의 우아한 분위기에 대한) 환상을 여지없이 깨뜨렸다. 대체로 떡진 머리에 땀냄새 솔솔 풍기는 기자들은 영화 상영 한두 시간 전부터 줄서기 시작하고, 입장이 임박하면 서로 빨리 들어가 좋은 자리 차지하겠다며 꽤나 파렴치한 몸싸움을 벌인다. 어찌나 사정없이 밀어대는지, 한 열댓번 정도는 아저씨 기자들의 도톰한 뱃살과 매우 긴밀한 접촉을 했다. 욕설도 빠질 리 없다. 새치기한 인간이나 입장 안 시키고 뜸들이는 진행요원을 향한 분노의 언어 공격은 부패 정권 규탄 수준이다. 무엇보다 챙겨야 할 영화는 절대적으로 많았으며, 시간과 수면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모든 것은… 아름다웠다. 의도치 않았던 접촉의 불쾌함은 스크린이 영롱한 빛을 내뿜는 순간 사르륵 녹아버렸고, 어깨를 대리석화했던 피로는 칸의 따가운 햇살을 받아 자글자글 타버렸다. 이건 결코 과장이 아니다…! 훌륭한 영화는 훌륭해서 좋았으며, 후진 영화는 농담거리를 제공해줘서 좋았다. 딱딱한 바게트는 오래 씹을 수 있어서 좋았고, 캔 하나에 3200원짜리 콜라는 아껴 먹으니 좋았다. 천근만근 데일리는 줄 섰을 때 읽을거리 되니 좋았고, 변덕스런 날씨는 지루하지 않아 좋았다. 내 생애 최초의 칸은 내 생애 최대의 낙천주의라는 기이한 증상을 안겨준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작가 빌 브라이슨은 매일매일 낯선 나라의 골목을 거닐며 평생이라도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는데, 그 표현을 적용하자면 매일매일 크루아제트를 누비며 영화를 세편씩 보면서 평생이라도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물론, 마감은 이 그림 안에 없다). 살인적인 마감으로 밤을 꼴딱 새우고도 4시간 반짜리 영화를 보는 동안 단 1초도 졸지 않은 것, 바로 이런 게 칸의 기적이 아니었을까.

영화제가 폐막하던 날, 수상작 발표까지 모두 끝났을 때 복도에서 만난 한 일본인 평론가는 활짝 웃으며 “그럼 내년에 보자”고 인사를 건넸다. 쨍, 하는 소리와 함께 약기운이 확 달아났다. 저토록 아무렇지 않게 내년을 기약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라는 사실이 호되게 머리를 후려쳤다. 바게트는 돌덩이가 됐고, 콜라는 김이 빠져버렸다. 해는 숨어버리고 장송곡처럼 비가 내렸다. 깜빡, 하고 눈을 감았다 뜬 순간 나는 한국에 와 있었다. 그리고 공덕동 사무실 내 작은 자리로 돌아와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불과 2주 전의, 그러나 지금은 그저 꿈처럼 느껴지는 칸에 대한 무한한 찬탄의 감정에 사로잡힌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