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점 사이로 보이는 사진 이미지는 분명 눈이 덮인 산의 모습이다. 붉은 기운이 도는 한 가지 색채의 산 이미지 위에는 화면 전체로 군데군데 뿌려진 하얀색 점들이 있다. 그중 일부의 선을 이어서 그린 것 같은 검은 선의 슈트 케이스. 폴 콜드웰의 <Site of memory> 시리즈 중 <Suitcase>다. 작품 속에서 작가는 여행의 기억을 되새기려고 하고 있다. 작품은 마치 완벽하게 되돌려놓을 수 없는 과거의 기억을 이미지로 형상화한 것처럼 보인다. 폴 콜드웰이 작업 전반에서 표현하려고 하는 것은 ‘부재의 존재성’. 지나간 시간, 사물의 의미, 기억에 대한 흔적 등, 상실에 대한 의미를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영국 런던국립예술대학 소속 캠버웰 대학교수이자 작가로 알려져 있는 폴 콜드웰은 서양 철학과 동양 사상에 대한 관심, 그리고 프로이트박물관에서 연구원으로 지낼 만큼 푹 빠져 있었던 심리학 등을 작품에 반영하고 있다. 이렇듯 철학적인 문제들을 사진에 가까운 이미지와 간단한 드로잉으로 표현해 간결하게 전달하고 있는 폴 콜드웰의 작업방식은 ‘전통’과 ‘디지털’을 결합하고자 했던 25년간 연구의 결과다. 사진에 가까운 이미지와 간단한 드로잉의 조합으로 보여지는 작품은 컴퓨터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사용한’ 전통적인 판화 형식에 가깝다. 카프카의 일대기 중 일부를 단편으로 썼던 앤서니 루돌프와 함께 작업한 <Kafka’s Doll>을 비롯, <SITE of MEMORY>, <MEANS of EXCAPE> 시리즈 등이 전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