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빅씨. =(거만하고 능글능글한 표정으로 쿠바산 시가를 꺼내며) 절 그렇게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캐리와 세 친구들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빅씨라니. 미스터 빅도 아니고.
-아. 네. 미스터 빅이라고 부르면 ‘추억의 80/90 헤비메탈 밴드 인터뷰’처럼 보일까봐서요. 그러니까 댁의 본명이…. =존(시가 앞을 잘라내고). 제임스(시가에 불을 붙이고). 프레스턴(시가를 빨아당긴다).
-존 제임스 프레스턴! 미스터 빅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때는 잘 못 느꼈는데 확실히 집안 좋은 거물(Big)의 향기가 솔솔 나는 이름이군요. 존 제임스 프레스턴이라니. 와아. 몽고메리 클리프트 이후 이렇게 이스트 코스트 부잣집 자제스러운 이름은 처음 들어요. 도널드 트럼프보다 훨씬 멋지군요. =도널드 트럼프라. 직원 해고가 취미인 늙은 호색한 따위에 비교하다니. 그것도 실례군요. 제가 편집장이었다면 당신 같은 기자는 바로 해고입니다. You’re Fired!
-호.호.호. 재밌네요. 이스트 코스트 부동산 거물다운 농담인가보죠. 근데 그거 아세요? 한국 여자들이 <섹스 앤 더 시티>에서 가장 싫어하는 캐릭터가 미스터 빅이라는 거. =그럼 한국의 달링들은 누가 제일 좋답니까.
-에이든이요. (존 제임스 프레스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네. 저도 그 표정이 무슨 뜻인지는 잘 압니다. 저도 에이든 싫어요. 여친 바람도 용서 못하는 찌질한 결혼지상주의자. 알고보면 여자 사정, 여자 마음, 하나도 이제 못해주는 조선시대 선비죠 선비. =뭐, 한국 달링들 취향이 유머감각도 없는 가구쟁이라면야 저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뭐 제가 딱히 신경써야 할 일도 아니고요. 포포프스키가 아닌 건 좀 다행이군요.
-포포프스키? 그게 누구죠? =파리에서 캐리 뺨 후려쳤다던 그 러시아 마피아놈.
-아, 포포프스키가 아니라 페트로프스키예요. 마피아가 아니라 예술가고요. =무슨 예술? 여친 뺨치기 예술?
-킥킥. 저도 사실은 무슨 예술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뭐 형광등 같은 걸 막 여기저기다가 갖다붙이는 전시회 같은 걸 하는 것 같던데. 아유, 현대미술은 좀 골치가 아파서…. 근데 도대체 왜 결혼식장 앞에서 달아나셨어요. 4년 전에 이미 캐리와 정착하겠노라 다짐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거 보쇼. 저라고 달아나고 싶어서 달아났답니까. 결혼. 저도 그거 피할 나이는 이제 아닙니다. 근데 지금의 캐리가 어디 예전의 캐리랍니까. 신상 구두 하나 그으면 카드 빵꾸나던 가난한 독신 칼럼니스트가 아니라 개인비서까지 따로 둘 만한 거물급이라고요. 게다가 <보그> 사진기자들이 잔뜩 모인 결혼식장에 비비안 웨스트우드 같은 아방-펑크 디자이너에게 받은 광대 같은 드레스를 처입고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간 큰 남자가 가뿐한 마음으로 결혼한답니까. 기자 양반이었다면 결혼식장 앞에서 바지에 똥오줌을 골고루 지렸을 게요.
-아무튼 두분이 결국 결혼까지 하셨으니 어쨌거나 다행입니다요. 물론 혼전계약서는 작성하셨겠죠? 브래드쇼양보다 재산도 훨씬 많을 텐데 이혼이라도 하면 큰일나는 거잖아요. 이번 영화가 워낙 흥행이 좋아서 속편도 만든다던데. 누구 하나 바람 피워서 이혼하는 내용이 속편에 나올 건 뻔한 일이고. =여러분의 로맨틱한 환상을 깨는 건 신사가 할 일이 아니죠. 혼전계약서 여부는 비밀입니다.
-혼전계약서 여부야 그렇다고 쳐도 제 원룸 오피스텔만한 신발장을 만들어주셨으니 앞으로 그걸 마놀로 블라닉, 지미 추, 크리스천 르부탱 신상으로 채우려면 부동산 많이 파셔야겠습니다 그려. =지금 제가 신은 구두 보이세요?
-아… 음. 페라가모인가요? =아뇨. 구치. 물론 페라가모도 있죠. 발리도 있고요. 하지만 이탈리아 장인들이 개별 제조하는 맞춤 수제화를 주로 신어요. 돈이 많아서라고요?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저는 마놀로 블라닉의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남자입니다. 그리고 마놀로 블라닉의 아름다움에 수백달러를 내던지는 여자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건 비싸기 때문에 아름다운 게 아니라 아름답기 때문에 비싼 거예요. 브래드쇼가 왜 절 사랑하는지 아시겠죠, 이젠?
-(고개를 숙이며) 천생연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