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홍콩영화계에서 활동하는 액션고수들 중 홍콩 토박이는 드물다. 견자단은 원화평의 권유로 미국에서 건너왔다 할 수 있고, <포비든 킹덤: 전설의 마스터를 찾아서>의 예성은 대만 출신이며, <살파랑>의 오경도 대륙에서 건너왔다. 그래도 역시 이연걸이 그랬던 것처럼 대륙 출신 ‘용병’들의 활약이 가장 대단했다. 이연걸과 함께 <소림사> 시리즈에 악역으로 출연했던 <황하대협>(1988)의 우승혜, 이연걸에 이어 <황비홍> 시리즈를 이어받은 조문탁, 이연걸처럼 앳된 외모로 그의 뒤를 이을 것 같았던 오경 등을 언급할 수 있다. 중국과 홍콩의 경계가 사실상 무의미한 현재, 아마도 그 마지막 세대는 주성치의 <쿵푸허슬>에 십이로담퇴를 구사하던 짐꾼으로 나와 환상의 발차기를 선보인 석행우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도화선>은 견자단, 예성, 석행우가 한자리에 만난 꿈의 프로젝트다.
1978년생인 석행우는 하남 숭산소림사 32대 제자인 실제 소림승 출신이다. 12살에 소림사에 들어가 계속 수련을 쌓아온 그는 수십개국을 방문해 소림사를 알리는 해외 시범단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주성치를 만나 <쿵푸허슬>에 출연하게 된 건데, 말하자면 이연걸이 사실상 소림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반면에 그는 진짜 소림사 출신인 것이다. 그것은 오래도록 문호를 개방하지 않던 소림사가 2000년대 들어 활발한 대외사업을 펼치던 중에 생겨난 일이다. 이른바 ‘소림사 CEO’로 불리며 지나친 상업성 추구에 대해 제법 비판도 듣고 있는 석영신 주지(소림사에 인터넷을 깔고 승려들에게 외국어를 익히도록 장려한 MBA 출신의 스님이다) 특유의 경영방식이 끼친 영향도 컸다. 그렇게 몇년 전 석행우는 다른 3명의 스님과 함께 당시 MBC 프로그램 <대단한 도전>에도 출연해 직접 소림무술을 선보인 적 있다. 그전에는 이른바 소림사 홍보영상물이라 할 수 있는 <소림진공부>라는 작품에도 직접 출연했다.
아마도 ‘양발 찢어 날아 차기’를 제대로 구사할 수 있는 이는 석행우가 유일한 것 같다. 테크닉과 파워를 겸비한 파이터 역할로 제격이다. 게다가 연기가 받쳐주지 않는 게 천추의 한일 정도로 얼굴도 꽤 귀엽게 생겼고 오랜 수련으로 다져진 가슴 근육은 정말 경탄할 만하다. 역시 그를 눈여겨본 것은 견자단이다. <쿵푸허슬> 이후 <용호문>(2006)에 딱히 연기가 필요없는 최후의 악당 화운사신 역을 맡긴 것. 계속 가면을 쓰고 있어 얼굴을 확인할 수 없음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도화선>처럼 MMA영화라 해도 틀리지 않는 나수요 감독의 <흑권>(2006)에 출연해서는 오경과 맞붙었는데, 그들은 맹수처럼 한치 양보도 없는 멋진 대결을 펼쳤다. <살파랑>을 경험했을 때처럼, 지난 10여년간 홍콩영화에서 거의 잊고 있던 감각의 부활이라고나 할까. 그럼에도 단순한 악역 이상은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석행우에게 대사다운 대사가 있는 거의 유일한 영화인 <도화선>은 그가 전업배우로 성공할 수 있는지를 점쳐볼 수 있는 시험대다. 무서운 기세로 욱일승천하던 토니 자가 왜 한풀 꺾였는지 생각해보면, 그 역시 지금 중요한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