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숙한 천재 예술가. 다음의 세명 모두에게 허용될 편리한 호명. 15살부터 20살 사이에 완성한 작품만으로 후세에 알려진 19세기 시인 아르튀르 랭보, 정치성에서 벗어나 상징주의에 경도된 듯한 밥 딜런, 토드 헤인즈 감독이 랭보의 이름을 빌려 딜런을 표현하기 위해 캐스팅한 벤 위쇼. <아임 낫 데어> 속 랭보는 나머지 여섯 딜런에 비해 가장 정적이고 추상적이며 분량도 적다. 그는 <아임 낫 데어>에서 책상 위로 드러난 바스트숏으로만 잡힌다. 대사는 언제나 카메라를 응시한 채 이뤄지고, 표정의 변화도 없다. 불필요한 살점은 1g도 허용치 않는 몸을 연상시키도록 가냘픈 손가락, 권위자를 대하는 따분하지만 물러섬없는 눈빛과 제스처…, 위쇼가 랭보를 표현하기 위해 가진 객관적인 도구는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돌이켜보면 그를 전세계에 알린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냄새로만 세상과 소통했던 반사회적 예술가 장 밥티스트는 배우에게는 가혹한 캐릭터다. 함께 연기했던 더스틴 호프먼은 분량을 마치고 세트장을 떠나면서 “이제 무성영화를 찍겠군”이라며 행운을 빌 정도였다. 그러나 티크베어 감독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쥐스킨트의 소설을 힘겹게 스크린에 옮긴 그 영화에서 유일한 볼거리는 짐승처럼 킁킁거리는 코로 본능적 언어를 완성한 위쇼의 클로즈업뿐이었다. 그러니 이 깡마른 스물여덟살의 청년이 카메라 앞에서 가능한 모든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순간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로열 아카데미 오브 드라마틱 아트 재학 당시 “가장 촉망받는 신인상”을 수상한 그는 스물셋의 나이로 로열 내셔널 시어터 연출가 출신 트레버 넌에게 발탁되어 젊은 햄릿을 연기하여 호평받은, 웨스트엔드의 든든한 재목이었다. 2005년 <스톤드>에서 키스 리처드를 연기한 바 있는 그는 현재 제인 캠피온 감독의 존 키츠 전기영화 <브라이트 스타>에 출연 중이다. 물론 그의 역할은 19세기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키츠. 예술가의 젊은 초상으로 이보다 어울리는 얼굴은 현재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