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싸대기 한방이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80년대 초반, 어느 지방 소도시의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해프닝이다. 특수반 신설과 관련된 학교쪽의 방침에 반발하며 2학년 한반 학생 60여명이 들고일어난다. 반장의 주도 아래 그들은 각자의 의자를 들고 운동장의 조회대 앞에 집결해 앉는다. 수업을 거부하고 비장한 침묵시위에 돌입한 것이다. 잠시 뒤, 소식을 접한 교감이 교련 선생과 함께 달려온다. 주동자인 반장과의 말없는 눈싸움 5분여. 교감은 갑자기 육두문자와 함께 반장의 귀싸대기를 후려친다. 풀썩, 주저앉는 반장. 이어지는 교감의 발길질. 잔뜩 독을 품었던 학생 군중의 시위는 어이없이 썰렁하게 진압된다. 그리고 오리걸음… 매타작….
1980년대 초반은 고등학생 운동의 암흑기로 기억된다. 29년 11월의 광주학생운동과 60년 4·19 학생의거의 빛나는 전통을 자랑하지만, 군사정권의 등장 이후 그들은 애 취급을 당하며 입도 벙긋하지 못했다. 일차적으로는 패션 탄압이었다. 바리깡으로 박박 밀어버린 머리와 시커먼 교복, 바짝 조여야 하는 후크. 대학가는 시위로 시끄러웠지만, 고등학교 주변은 숨죽였다. 감히 개갰다가는 교사들로부터 거의 개처럼 맞았다.
‘귀싸대기’는 일제시대 일본 순사의 채찍을 계승했다. 그것은 꼰대의 시대를 상징하는 키워드 중 하나였다. 금기어는 ‘말대꾸’였다. 훈계하면 잠자코 들어야 했다. 말대꾸하면 귀싸대기가 날아왔다. 시대는 변했다. 고등학생, 아니 고딩들은 더이상 꼰대를 참아주지 않는다. 거지 같은 훈계엔 말대꾸를 넘어 아예 마이크를 잡는다. 귀싸대기를 맞는다면 손목을 물어뜯거나 인터넷 동영상으로 복수할 것이다. “미친 소 너나 먹어!”라는 플래카드가 휘날리는 미국산 쇠고기 개방 반대 촛불 집회장에서 자신의 논리와 권리를 밝히는 그들을 보며 든 생각이다.
조·중·동은 꼰대를 닮았다. 80년대 초반 제자들의 소박한 침묵시위를 귀싸대기 폭력으로 잠재우던 교감을 연상시킨다. 첫째, 10대를 무작정 철없는 어린애로 치부한다. 그들이 똑똑한 어른들 밑에서 자랐고, 논술이라는 이름의 고급 논리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은 무시한다. 둘째, 이해관계가 있다. 교감은 교장으로 승진해야 한다. 승진의 장애 요소를 미리 제거해야 한다. 조·중·동은 방송 겸업 따야 한다. 이명박 정권에 잘 보여야 한다. 그 결과는 수입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누가누가 더 멋지게 떠벌리면서 보도하느냐 하는 경쟁으로 나타나는 듯하다.
학생운동의 순수함은 현실의 경제적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운 신분에서 나온다. 취직 걱정에 찌든 대학생이 점점 더 자유로움을 잃어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자유롭지 못하면 미래의 공기를 호흡하지 못한다. 현실과 타협한다. 이제 순수한 학생운동의 중심이 고딩에게로 이동한다고 하면 너무 섣부른 예측일까. 물론 섣부른 예측이다. 취직 걱정은 이르지만 입시 걱정이 압도적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뭔가에 집중할 때 고딩이 대학생보다 열광적인 건 분명하다.
얼마 전 고딩들의 광고 효과에 관해 들은 적이 있다. 지하철에서 나눠주는 무가지 한장이 교실에 들어가면 엄청나게 높은 회독률을 보인다고 한다. 휴대폰이나 MP3 등 전자기기의 광고주들은 주요 광고 타깃을 아예 대학생에서 고등학생으로 낮추기까지 했다는 거다. 심지어 텔레비전이나 오디오 같은 전자제품까지 예외가 아니란다. 가족 단위에서의 소비와 관련된 발언권과 결정권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높아진 탓이다.
87년 6월 항쟁 때 대학생들은 이런 구호를 외쳤다. “군부독재 타도하여 부모님께 효도하자.” 이제 그 자녀들이 자라 고딩이 되어 이렇게 외친다. “미친 소 막아내어 부모님께 효도하자.” 고딩의 영향력이 높아지는 세상, 나쁘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