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베이(www.ebay.com)는 세상의 모든 것을 살 수 있는 거대한 보물창고다. 당신이 영화 관련 물품을 광적으로 모으는 수집광이라면? 하루에도 수만개의 희귀 아이템이 업데이트되는 이베이 같은 장터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게다가 이베이는 어렵지 않다. 2메가바이트의 지력과 미친 소 같은 체력만 있으면 충분하다. 초보를 위한 국제경매사이트 이베이 도전의 ABC.
이배희양은 고민에 휩싸였다. 곧 개봉할 <섹스 & 시티>의 포스터를 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평소 애용하던 국내 온라인 포스터 가게를 아무리 뒤져봐도 포스터는 나타나지 않았다. 갖고 싶은 포스터를 구하지 못하면 속이 시커멓게 타는 이배희양의 속이 시커멓게 탈 지경에 이르자 지난 몇년간 광적으로 카메라 모으기에 집착해온 친구가 조언했다. “이베이를 뒤져봐. 새로운 세상이 열려.” 이배희양은 그렇게 (몇달 지나면 벽에서 내려진 뒤 창고에 처박힐) 포스터 한장을 구하기 위해 이베이로 뛰어들었다. 참, 카메라광인 친구는 “새로운 세상이 열려”라는 말 뒤에 작은 목소리로 “카드값 빵꾸의 세상이 열리지…”라고 덧붙였다. 이배희양은 듣지 못했다. 혹은 듣지 않았다.
이베이는 전세계 27개국에서 운영되고 있는 지상 최대의 경매 사이트다. 월드와이드웹이라는 개념에 가장 충실한 소비 지향적 아수라장이라고나 할까. 창업자 피에르 오디미야르라는 사탕상자 수집이 취미인 여자친구(세상에는 오덕이 이다지도 많다!)의 부탁으로 인터넷에 “사탕상자를 삽니다”라는 글을 올렸고, 곧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사탕상자를 팔겠다”고 나서는 걸 보고는 이베이를 창업했다. 이베이의 성공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물건을 사고파는 일을 유희의 일종으로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구매자들은 매일매일 업데이트되는 수억개의 아이템을 입맛대로 고를 수 있으며, 하나의 제품을 사기 위해 수많은 다른 구매자들과 보이지 않는 경쟁을 벌여야만 한다. 대륙 건너편의 누군가가 경매시간 종료 10분 전에 컴퓨터 앞에 앉아 벌이는 사투는 구매행위라기보다는 거의 게임에 가깝다. 게다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희귀한 물건을 적당한 가격에 낚았을 때 느끼는 희열은 단순히 구매 버튼을 누르면 모든 거래가 완료되는 보통의 인터넷 쇼핑몰들에서는 도저히 맛볼 수 없는 것이다.
문제는 이배희양의 영어 울렁증이다. 하지만 이베이는 그다지 어려운 영어를 요하지 않았다. 가입도 간단했다. 배희양은 등록(Registration) 항목으로 들어가 한국 홈쇼핑 사이트에 가입하는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개인 정보를 기입했다. 한국 홈쇼핑 사이트들처럼 주민등록번호 따위를 물으며 귀찮게 굴지 않아 더 속편했다(국제경매사이트니 한국 주민등록번호 따위 어차피 무용지물이긴 하다). 잠시 뒤에 등록한 이메일로 이베이인증번호(ebay confirmation number)가 왔다. 이 경우 주의해야 할 점은 한메일이나 네이버 메일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통용 가능한 메일만 통한다는 거다. 평소 뜨거운 걸 좋아해 hotmail 계정을 하나 만들어뒀던 배희양은 아무 문제 없었다. 이제 구입만 하면 된다.
그러나 배희양은 아버지따라 고향에서 열리는 ‘100% 광우병 프리 한우’ 장터 경매에 참가한 게 전부다. 게다가 그건 20여년 전이다. 소더비 경매가 소를 덤으로 파는 경매인 줄 알았던 그녀다. 그냥 사라!(Buy) 버튼만 누르면 구매로 이어지는 시스템이면 좋으련만. 그녀는 도무지 경매의 메커니즘이 어떤 식으로 굴러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카메라광 친구에게 메일을 보냈다. “이뭥미. 하나도 모르겠음. 도와주셈.” 잠시 뒤에 답장이 왔다. ‘이배희를 위한 이베이 6단계’라는 친절한 제목의 메일이었다. 배희양은 서둘러 메일을 클릭해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