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동네>를 떠올리지 말길. 우리 이웃에 두명의 살인마가 살고 있다는 섬뜩한 착상에서 출발한 동명 스릴러와 달리 이 작품은 인류가 존재한 이래 매일같이 반복됐을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그리는 착한 뮤지컬이다. 여기, 골목을 두고 다정하게 마주본 두 가정이 있다. 김 박사네 아들 상우는 앞집 이씨네 딸 선영이를 좋아하고, 선영이 역시 상우를 따른다. 우리 동네의 소소하지만 정감있는 하루가 그림처럼 지나가면 어느새 4년 뒤. 상우와 선영이가 결혼식을 올리려는 순간이다. 그야말로 화양연화, 행복한 두 사람. 하지만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7년 뒤 선영이는 둘째아이를 낳다 세상을 떠나고 만다. 탭댄스가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몇 장면을 제외하곤 화려한 노래나 춤 따윈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이 공연이 진정으로 힘을 발휘하는 것은 그 순간이다. 죽어버린 사람들이 자기 무덤에 앉아 삶과 죽음을 이야기할 때 어떤 이들은 어찌할 수 없는 세상의 이치에 마음을 베이거나 남은 생이 너무 소중해 견디기 힘든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다. 다소 수수해 보이던 무대에서 바람이 스치고 나무가 자라고 달이 뜨고 별이 고이는 등의 변화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인상적인 부분. 퓰리처상 수상자인 미국 작가 손턴 와일더의 작품을 원작으로 했지만 한국의 과거를 잘 반영해 개작했다. 김도신, 리치, 이상곤, 오산하, 남궁희 등이 출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