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그분이 오셨다.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를 쓰셨으나 <자산어보>는 안 쓰셨던 분. ‘사지선다’ 문항을 풀어야 했던 학력고사 세대의 밤잠을 앗아갔던 그분이, MBC 드라마 <이산>에서 ‘산 너머 산’인 정조의 숙제를 돕느라 밤잠을 설치신다. 시와 문장에 능하고 세상 학문과 이치를 꿰뚫었으며 백성을 귀하게 여기고 500여권의 방대한 저술을 남긴 다산 정약용 선생은 지금 댓글가에서 이렇게 불린다. “정·초·딩.” 정조와 정약용이 성균관 담벼락에서 처음 만난다는 극중 설정부터 심상치 않았다. 전문용어로 ‘담 치기’를 밥먹듯 하는 <이산>의 정약용은 과거에 응시해 훌륭한 답안을 쓰고도 이름 적는 것을 ‘깜박 잊어’ 4번이나 낙방했으며, 임금을 임금이라 부르지 않고 호형호제하다가 장원급제한 다음에야 정조를 알아보고 ‘옴마야!’ 한다. 유득공·박제가·이덕무 트리오가 “임금님 사실은 속좁은데, 자네 큰일 났다”고 놀리자 당황해서 벌벌 떨더니, 막상 정조와 독대해 요즘 유행하는 ‘끝장 토론’을 하는 와중엔 하품을 ‘쩌∼억’ 한다. 머리는 좋은데 성격은 안 좋은 홍국영의 뒤를 이어 정조의 새 솔메이트로 나선 정약용은 머리는 좋은데 ‘초딩’마냥 천진하다.
“<이산>에도 드디어 푼수 캐릭터가 등장했다!”(킴좌z)는 환호는 기본. “기지개 켜는 약용”, “하품하는 약용”, “허걱! 약용”, “약용의 애교” 등 다양한 제목으로 ‘결정적 장면’을 찍어 나르는 ‘약용 파파라치’들이 생겼다. 임금의 부름을 받고 다급하게 뛰어가는 모습엔 응원의 댓글이 함께 뛴다. “달려라, 약용이! 귀여운 약용이!”(유짱)
약용이 덕분에 정치적·멜로적 긴장감이 떨어졌던 <이산>이 시청률 30%대를 다시금 돌파하며 뒷심을 발휘하고 있다. “지나치게 고답적으로 그릴 필요는 없다 해도 다산의 뿌리가 선비인데 너무 경망하다”(차양원)는 지적도 있지만, 역사 속 정약용을 아는 이들의 고민은 좀 다른 데 있다. “이제 7회밖에 안 남았는데, 앞으로 한강에 다리 놓고 기중기 만들고 수원에 화성도 지어야 하니 정약용은 그 많은 걸 언제 다 하려나.”(김지원)
시청률 면에선 약용이를 능가하는 ‘포스’를 가진 두분이 경쟁 프로그램에 나란히 오신 것도 화제다. 지난 5월14일 SBS <더 스타쇼>에 출연한 ‘국민요정’ 김연아. “세계선수권대회 때 보여준 ‘썩소’(썩은 미소)는 <록산느 탱고>라는 곡에 맞춰 의도적으로 연출한 표정”이라고 말해 시청자를 놀라게 했다. 이날 선보인 노래 실력은 “은반의 요정=음반의 요정?”이라는 언론의 찬사도 받았다. 덕분에 <더 스타쇼> 시청률은 4%대에서 6%대로 뛰어올랐지만, 이 성적이 계속 유지될지는 미지수다. 국민요정을 사랑하는 언니·오빠들은 “비인기 종목에서 일약 대중스타가 된 김연아 선수의 고뇌라든지, 한국의 척박한 피겨스케이팅 상황 등을 진솔하게 끌어낼 수 있을 텐데 신변잡기 일변도에 무조건 칭찬하고 아부하는 MC들이 영 못 미더웠다. 시청자가 초등학생은 아니지 않느냐”(장태환)고 꼬집었다.
같은 시간 MBC에서 방송된 <놀러와>에는 이경규가 초대손님으로 나와 입담을 자랑했다. 방송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얼굴인데 신선한 얘깃거리가 있을까 반신반의했던 시청자는 타이거 우즈, 빌 클린턴, 마이클 잭슨까지 자신의 인맥인 ‘규라인’에 얼렁뚱땅 포함시키며 ‘관록있는 웃음’을 선사한 그에게 “웃음 짱, 이경규!”(김명순)라고 외쳤다. 이날 <놀러와> 시청률은 13.3%로 몇주 동안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미녀들의 수다>(9.4%)를 크게 따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