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개관기념 영화제: 오타와애니메이션페스티벌 역대 그랑프리 모음
압축적인 단편애니메이션들이 보여주는 모든 세계는 투명하게 여과되지 않는 잉여로 그 짧은 형식을 능가한다. 감탄을, 당혹을 혹은 선불교적 깨달음을. 익숙한 만화영화나 전래동화의 이미지 조합에 이완되었던 정신이 문득 어떤 불가해한 질문 앞에 먹먹해지는 순간이 온다.
샐리 아르투어의 <A-Z>는 길치 P부인이 런던의 지도를 만드는 과정을 발랄하게 따라간다. 지도 이미지에 그래피티와 잭슨 폴록적 페인팅의 이미지가 중첩되는가 했더니, 여기에 코믹스 비주얼과 타이포그래피가 합류한다. 나카타 다케시와 모노 가즈에의 <라이트닝 두들 프로젝트-피카피카 2007>은 이온처럼 명멸하는 선으로 구성된 이미지들의 소음을 일상의 감각적 영상에 콜라주했다. 이미지의 소음은 음악적 소음과 경제적으로 결합해 놀라운 가역 반응을 일으킨다. 이 ‘피카피카’(번쩍번쩍) 이미지들은 프레스토의 리듬으로 점점 가속되면서 죽은 거리의 이미지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송가(頌歌)라는 의미의 마이클 랭건의 <독솔로지>는 오프닝에 등장하는 오르간 연주 음악으로 살짝 종교적인 분위기를 풍기나 이내 익살에 그 분위기를 넘겨준다. 실사와 결합된 이미지로 테니스 공의 탄력적 튕김을 통해 천상과 지상의 소통을 보여주는가 하면, 어느 순간 자동차라는 거대 기계와 탱고를 추는 남자의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익살스럽지만 기이하게도 신성하다.
매튜 워커의 <존과 카렌>은 전형적인 2D애니메이션으로 따뜻하고 조화롭다. 북극곰 존이 자신의 실수를 사죄하기 위해 여자친구인 펭귄의 집을 방문한다. 섬세한 감정표현이 개성적 동물 캐릭터에 실렸다. 푸른 물풀과도 같은, 영국식 도자기와도 같은, 푸른 잉크 얼룩과도 같은 뭉근하고도 아름다운 이미지가 기억에 남을 엘리자베스 홉스의 <늙고 늙어 아주 늙은 노인>은 찰스 1세 시대의 실존인물인 장수노인 토마스 파(올드 파로도 불리는 그는 152살까지 살았다)의 이야기를 소재로 했다. 단순 명쾌하게, 그리고 조곤조곤 소년 톰의 등굣길을 따라가는 작품 <톰>을 만나는 순간 우리는 어떠한 불가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언캐니(uncanny)에 직면한다. 모든 일상은 분명하고, 톰은 정해진 일과에 따라 등교한다. 하지만 그 결과에 맞닿는 순간, 언어도단의 불능에 직면하게 되면 마치 면벽 수행의 선승이라도 된 기분이다. 달리 어쩔 수 없다. 러시아의 설화를 엮은 <말괄량이 지하르카>는 탐욕스러운 늑대와 순진한 소녀의 쫓고 쫓기는 이야기를 담았다. 어린이들이 보면 유쾌할 명랑 스토리와 그림동화 같은 아기자기한 작화가 어우러졌다.
애런 아우겐블리크의 <애니메이션 황금기>는 애니메이션 역사에 대한 반성적 사변을 유머러스하고도 기발한 발상에 담았다. 애니메이션 황금기의 정점에 있던 캐릭터들의 영광과 퇴락을 그리면서 애니메이션의 상업적 세속성, 그리고 그에 따른 정서적 증후를 담았다. 웃음 속에 씁쓸함이 묻어난다. 참신하고도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이미지, 간결한 서사나 형식실험이 주제와 응집되는 단편들에서 이미지의 전위를 만날 수 있다. 달짝지근하고 이미지들에 익숙해진 시각을 쇄신할 공인된 수준의 단편애니메이션을 접하는 일은 범람하는 세속적 비주얼의 밀림에서 잠시 휴양림을 찾은 것 같은 정화감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