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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애니 열전] 삶에 쉼표와 물음표를 건네는 애니메이션

백두대간 개관기념 영화제: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역대 그랑프리 모음

가장 권위있고 유명한 애니메이션페스티벌인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은 <마리 이야기>의 이성강(2002), <오세암>의 성백엽(2004), <버스데이 보이>의 박세종(2005)의 수상 이력을 통해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세계에서 최고로 유서 깊은 애니메이션영화제이자, 그 규모와 상영작 등 질적인 면에서도 최상의 수준을 견지하는 애니메이션영화제인 안시는 애니메이션의 ‘칸’이라고 불린다. 이와 전혀 무관치 않은 것이 1956년 칸영화제의 비경쟁 부문행사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수준있는 애니메이션 <나무를 심는 사람>이나 <붉은 돼지> 등도 역대 수상작 목록에 올라 있다. 장편의 경우 종종 대중적 속성도 노출시키고 있지만, 형식과 이미지의 응축된 실험성을 보여주는 단편부문에서의 수상의 성패는 예술성에 달려 있다. 이미지의 혁신성과 주제의 깊이, 발상의 참신함과 아트하우스 애니메이션 특유의 물질성이 다양하게 융해된 이 단편 모음의 호흡은 짧다. 그러나 극장을 나서는 순간부터 그 개성적 이미지들이 우리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One D> 2005, 캐나다, 마이클 그림쇼

제목 그대로 이 작품은 1차원(1D)의 세계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두개의 선(연인)이 자동차를 타고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본다. 극장에서는 ‘상품화계획의 모험’이라는 부제가 달린 2D애니메이션을 상영한다. 2D를 눈속임이라 말하며 이는 멋진 오랜 전통의 1D의 만화를 대체할 수 없다는, 극장을 나오는 연인의 대화에선 현재의 애니가 근미래의 애니에 대한 품은 사유를 보여준다. 황당한 사건에 휘말린 이들의 최후는 결국 3D의 우주공간에서 끝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연인과 데이트, 자동차와 극장, 우주인과 전기톱 살인, 그리고 지구 몰락이라는 영상문화의 상품화 전략이 다 담겨 있다. 다만 우리는 수직과 수평의 직선들만 볼 수 있을 뿐이지만 말이다.

<런트> 2006, 독일, 안드레아 히카데

유독 작고 여리게 태어난 파란 토끼를 죽이려던 삼촌을 조카가 만류한다. 가련한 것이다. 잔인한 것이다. 삼촌은 말한다. “네게 아기 토끼를 줄 테니 잘 돌보아라. 하지만 1년 뒤엔 네 손으로 죽여야 한다.” 시작부터 이 애니의 결말은 예정되었다. 자신만의 특별한 파란 토끼를 애정어린 보살핌으로 키우는 아이는 그와 함께 삶이 즐겁다. 지하의 푸줏간에서 토끼를 도살한 뒤 이를 먹는 삼촌과 아빠처럼 아이에게도 자신의 손으로 키운 토끼를 죽여야 할 날이 다가올 것이다. 이 애니는 내내 평화롭지만 끝까지 자비롭지는 않다. 우리 대부분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연민없이.

<화이트채플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2006, 프랑스, 마리 비에이비

‘만약에 도시가 그녀가 목격한 음모에 관해 이야기해주기 시작한다면 어떨까?’라는 귀여운 질문으로 오프닝을 선보인 이 작품은 실제의 하드고어적 이미지를 은폐한 채 공공기관의 도상적 이미지의 익숙함과 깜찍함으로 이를 포장한다. 미치광이 연쇄살인범 잭 더 리퍼의 희생자들을 따라가는 이 작품의 경쾌한 리듬과 명랑한 콜라주적 기법은 선정적인 핏빛 사건을 역설의 선언과 광기의 편집으로 따라간다. 가장 가공할 폭력은 중립적인 듯한 이 화려한 은폐적 이미지들이라는 전언일까?

<우주비행사> 2005, 영국, 매튜 워커

오타와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 소개된 따뜻한 2D애니 <존과 카렌>을 만든 감독의 3D애니메이션이다. 비교해서 본다면 전혀 다른 스타일과 감수성, 형식을 통해 이 감독의 재능과 도량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광활한 우주공간을 외따로 유영하는 작은 우주선. 무모한 호기심에 한 우주조종사는 생존에 필수적인 산소통을 잃는다. 우주에티켓 매뉴얼의 해, 두명의 우주조종사 중 하나가 우주선을 떠나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 발생한다. 광대한 우주와 밀폐된 좁은 우주선 안의 공간을 소리를 통해 효과적으로 분리해내며 대조시키는 방법이 탁월하다. 세련된 3D디자인, 잘 짜인 진행과 재치 있으나 여운이 남는 결말 등 군더더기 없는 살뜰한 연출이 인상적이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슬픈 이야기> 2005, 프랑스, 레지나 페소아

2005년 단편부문 그랑프리를 수상한 작품이다. 남들보다 심장 박동 소리가 유독 큰 소녀는 그 때문에 불편해하는 이웃들 속에서 살아간다. 그녀는 단지 조금 다를 뿐이고, 자신이 새라고 생각할 뿐이다. 흑백의 이미지가 거친 펜 터치로 살아나며 이러한 질감은 아트하우스 애니의 물질성을 구성한다. 영화는 행복인지 슬픔인지 추락인지 부활인지 애매하게 설정된 상황에서 끝나지만, 남들과 다른 특징을 자신들의 몰개성적인 군중성 속에 녹여내며 균질과 동일성을 강요하여 삶의 안정을 찾던 사람들에게 그녀의 부재는 일상에 사소하고도 우울한 변화를 남긴다. 남들과 달라 불편하게 여겼던 그 돌출감이 바로 우리의 삶을 삶답게 했던 일상의 작은 톱니바퀴였던 것이다.

<여섯 아이들의 다섯가지 슬픈 이야기> 2006, 영국, 케즈 마그리에

2D와 3D, 실사와 애니를 혼합한 이 작품은 현실을 직접 응시한다. 여섯명의 아이들이 말하는 영국 내 빈민 가족의 다섯개의 실제 삶을 아이들의 내래이션을 따라 이미지화했다. 각각의 아이들의 이야기에는 서로 다른 스타일의 애니메이션 기법이 활용되었다. 아이의 완벽한 행복이란 밤에 받는 굿나이트 키스와 가끔 받는 사탕에 있다는 꼬마는 허기를 못 이겨 도둑질을 한다. 균열된 가족과 절대빈곤에 놓인 경제상황은 아이의 꿈을 소박하게 만들고, 소비할 것 없는 아이들의 일상을 지루하게 만든다. 빈곤은 참으로 지루하고 더욱이 사람을 지루하게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