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는 ‘자본주의의 첨병’이라고 한다. 하지만 한때 대학에서 열렬히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이야기하던 한 선배는 지금 잘나가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광고계에는 의외로 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다. 변절? 그 선배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세상을 바꾸고 싶었고, 광고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광고를 한다”고.
대한민국 광고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을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움직였던 광고는 무엇이었을까? 지금 바로 전화를 걸어달라는 AIG보험 광고? 16대 선거 전날밤 노무현 후보의 “오늘밤이 지나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납니다” 광고?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길거리 응원을 독려한 SK텔레콤의 2002년 월드컵 광고였을 것이다.
100만 가까운 인파가 시청과 광화문에 모이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던 광고다. 물론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도 있었고 언론의 도움도 분명 있었지만, 붉은악마를 후원한 SK텔레콤의 월드컵 캠페인은 기존의 광고 활동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기업 이미지 광고도 아니고 구매를 자극하는 접근도 아니었다. 대한민국 국민의 응원을 독려했고 그래서 실제 사람들을 움직였던 캠페인이다.
당시 SK텔레콤의 캠페인에 참여했던 강봉진 CD(LBest)에게 들은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이 캠페인의 시작은 경기장에 사람들을 모으기 위한 경품 프로모션 광고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경품이라는 것이 그리 매력이 없었고, 그럴 바에는 ‘더 많은 사람이 모여 응원할 수 있는 큰 판을 만들어주자’로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그래서 시청에 모여 함께 응원하자는 광고안이 만들어졌지만 광고대행사 내부 임원 리뷰에서 광고안이 거부됐다. 그러나 그 아이디어를 포기할 수 없었던 실무 광고기획자와 CD는 내동댕이쳐진 광고안을 주워들고 무작정 광고주인 SK텔레콤을 직접 찾아갔다. 광고주가 이 안을 받아들였고, 시청, 광화문, 대학로에 모이자는 신문광고 캠페인은 한국축구팀의 선전에 힘입어 엄청난 인파를 움직였다.
동시에 집행된 TV광고도 흥미로웠다. 경기 생중계가 끝난 바로 뒤 ‘다음은 독일입니다’라는 절묘한 광고가 나왔다. 도대체 어떻게 대한민국이 이길 줄 알고 이런 광고를, 그것도 생중계 바로 뒤 방송할 수 있었을까? 보통 한편의 광고가 만들어지면 방송되기까지는 최소 3일이 걸린다. 2002년 당시 한국 경기가 있을 때마다 이길 때와 질 때를 고려한 두편의 광고를 사전 제작해놓았다가, 방송사와 사전 협의해 경기 결과에 따라 그에 맞는 광고편을 내보냈다고 한다. 좋은 아이디어에 주도면밀한 실행이다.
광고는 ‘동사’이며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다. 아무 관심도 없던 제품에 갑자기 마음이 동하게 하는 것이고, 제품을 늘 쓰던 사람을 경쟁사의 다른 제품으로 바꾸게 만드는 것이다. 마음을 움직이고, 구매 패턴의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그 광고는 실패한다. 그래서 광고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가장 기쁜 소식은 자신이 만든 광고 제품의 매출이 느는 것이다.
하지만 시민의식이 높아지고 또 그에 따른 사회적 책임이 부각되면서 광고는 돈지갑을 여는 것 외에 또 다른 역할을 부여받았다. 시민의식을 개선하거나, 사회적으로 이익이 되는 구체적인 행동을 하게 만드는 캠페인을 SIC(Social Integrated Communication)라 부른다. SK텔레콤의 월드컵 캠페인도 대한민국의 이익(한국축구 승리)에 기여했으니 광의로 볼 때 SIC에 속한다. 최근 금연 캠페인이나 재활용 캠페인, 원자력발전에 대한 인식개선 캠페인 등 사회적 문제를 공유하고 해결하자는 취지의 공익 캠페인들이 늘고 있다. 세계적으로는 이미 이러한 생각들이 기업 캠페인에 도입되고 있다. 지난해 칸광고제의 그랑프리를 받았던 도브의 ‘Real beauty’ 캠페인은 과도한 성형, 지나친 다이어트와 같은 아름다움에 대한 사회적 문제에 공감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여성 인식 개선 캠페인이다. 하지만 공익 캠페인이 늘 설득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광우병은 전혀 없었습니다”라는 신문광고를 보면서, 그 진위를 떠나 이명박 정부는 이를 통해 국민들의 인식을 바꾸고 기꺼이 미국산 쇠고기를 구매하게 할 수 있다고 여겼는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