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하면서도 보는 게 일일극이다. 연일 40%가 넘는 시청률 고공행진을 벌였던 KBS1 <미우나고우나>에 대해 “패륜·불륜·출생의 비밀 삼종세트를 고루 갖춘 초울트라 비상식 드라마”(신기정)라고 꼬집었던 시청자도 지난주 방영된 172회까지 꼬박 챙겨보았을 가능성이 높다. “싫으면 보지 말라는 식으로 막 나가는 작가가 마음에 안 든다”(김미정)던 MBC <아현동 마님> 시청자도 오는 금요일 마지막 방송을 보기 위해 TV 앞에 앉을 공산이 크다. 하루 안 본다고 대세에 지장없으나 하루 안 보면 끼니 거른 듯 허전하니, 일일극의 중독성을 감히 누가 부인할 수 있으랴.
<미우나고우나> 시청자는 방영 중반까지 ‘단백커플’(나단풍-강백호)의 닭살 애정 행각을 편애했으나, 막바지에 이르러 나선재-봉수아 커플의 무개념 엽기 행각에 손을 들어줬다. 10대 소녀부터 70대 할아버지까지 드넓은 시청자층을 자랑하는 이 드라마에서 (거의 유일한) 악역을 맡은 덕분에 “촬영없는 날 맞을까봐 집 밖에 못 나간다”던 나선재 역 조동혁은 본인이 게시판에 직접 “선재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는데, 막상 극이 끝날 무렵 “매 순간 비열한 눈빛을 날리는 선재 덕분에 이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김영아)는 칭찬을 받았다. 시댁에 살면서 대낮에 친구들과 양주 파티를 벌이고 집안일엔 손 하나 까딱 안 하는 봉수아(유인영)의 “어머님∼, 저 물 한잔 주세요”는 명대사로 꼽혔으니, “진상 커플도 계속 보니 환상의 커플 같다”(유인정)는 소감이 가슴에 와닿는다.
<아현동 마님>에선 ‘형님편’과 ‘아우편’으로 나뉜 시청자의 댓글 공방이 끝날 줄 모른다. 12살 연하의 남편 덕분에 나이 어린 손윗동서를 두게 된 아우 백시향(왕희지)을 응원하는 사람. “나이 어린 형님에게 존댓말을 하면 기본 예의는 갖춘 거 아닌가요? 요즘 누가 자기 ‘뒷담화’하는 형님 참고 삽니까?”(김세영) 하며 형님 신숙영(김혜영)에게 연민을 느끼는 사람. “지적 수준 높은 척 어른 공경하는 척하면서 자기 것만 챙기는 손아랫동서가 얄밉지 않을 사람 있나요? 말로만 형님이지 형님 대우도 안 하면서 나이 많은 대접받길 바라는 것도 우스워요.”(김정란) 공방이 뜨거워지면서 게시판은 기혼 여성들이 즐겨찾는 커뮤티니 사이트와 흡사한 분위기다. “나는 맏며느리지만 숙영처럼 안 한다”거나 “나와 형님은 실제 이렇게 갈등을 극복했다”는 경험담이 잇따른다. 드라마에 대해선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많은데 한편으론 이처럼 현실적인 이야기로 북적이니, <아현동 마님>을 진정 “임성한 작가의 첫 실패작”(조인희)이라고 보아야 할지 헷갈린다.
<아현동 마님>은 “검사와 수사관들의 활약상을 통해 정의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던 드라마다. 홈페이지 제작을 위해 기획의도를 급조한 것이 아니라면 “드라마가 갈수록 산으로 간다”(김선희)는 지적엔 이유가 있는 셈이다. 아현동 부잣집으로 시집 가 ‘마님’이 된 백시향이 한때 검사였다는 사실은 거의 잊혀졌다가, “(태교를 위해서도) 엄마가 집에서 노는 것보다는 어디 부장검사인 것이 낫다”는 대사로 느닷없이 상기돼 입길에 올랐다. “주부들 집에서 놀지 않습니다”(김정민)라는 반박과 “사기꾼 깡패 심문하는 검사 일이 태교에 무슨 도움이 되느냐?”(정윤미)는 항의가 쇄도했다. 그러나 욕하면서도 보는 게 일일극이다. 매일 저녁 자석에 끌린 듯 TV 앞에 앉았던 시청자의 소회를 깔끔하게 정리한 ‘완소’ 댓글을 소개한다. “미우나 고우나, 그저 보았습니다.”(이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