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뜬다. 심하게 말하면, 한 사람은 ‘쪽바리’가 됐고, 또 한 사람은 ‘빨갱이’가 됐다. 그럼에도 뜬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 대한민국 고유의 정서와 사상적 기준으로 볼 때, 결코 있어선 안 될 일이다. 추궁을 받아야 할 ‘배신자’들이 오히려 환호를 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니~. 나라가 거꾸로 간다고나 할까.
개인적으로 최근 한달간 가장 인상 깊게 본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황금어장-무릎팍도사>와 <SBS 스페셜>이었다. <무릎팍도사>는 유도 선수 출신으로 일본 이종격투기 K1 히어로즈에서 뛰는 추성훈이 나와 ‘고민 상담’을 할 때였다. <SBS 스페셜>은 얼마 전 북한축구대표팀의 스타로 떠오른 정대세를 그린 ‘안녕하세요 인민루니 정대세입니다’ 편이었다. 두 프로그램의 성격은 판이했지만 두 주인공이 준 느낌과 울림은 비슷했다. 첫째, 눈물샘을 자극했다. 둘째, 그러면서도 밝고 쾌활했다.
추성훈은 재일동포 4세다. 정대세는 재일동포 3세다. 대부분 아는 사실이지만, 추성훈은 한국 유도계에서의 차별을 못 이겨 일본으로 귀화했다. 정대세는 ‘잘사는 조국’ 대신 ‘마음의 조국’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택했다. 외국인 등록증에는 ‘한국’이란 국적이 표시돼 있다. 추성훈은 일장기가 박힌 유도복을 입고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 결승에서 한국 대표를 꺾고 금메달을 땄다. 정대세는 지난 2월 2008 동아시아연맹컵 2차전에서 적진의 공격수가 되어 대한민국 대표팀의 골망을 흔들었다. 추성훈은 요즘 한국에서 <하나의 사랑>이라는 노래도 녹음했다.
두 사람은 새로운 미덕의 선구자다. 어떤 난관과 장애가 가로막아도 ‘자랑스런 대한민국에 남아야 한다’는 도그마를 깼다는 점에서다. ‘반일’과 ‘반북’은 쌍둥이처럼 우리 시대의 자유를 억압해온 키워드였다. 그 기준으로 볼 때 그들의 선택은 충격이었다. 한 사람은 숙적인 일본에 이기적인 투항을 했고, 또 한 사람은 ‘월북’을 했다는 손가락질을 받을 여지가 컸다. 그런 그들이 한국의 공중파 방송에 스스럼없이 등장하여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어쩌면 ‘쇼킹 코리아’에 속할지도 모른다.
물론 유도와 격투기를 못했거나 공을 못 찼더라면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게다. 드라마틱한 인생 역정과 그들만의 독특한 향기 또는 매력이 없었더라도 마찬가지다. 방송사의 잇속도 작용한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두 사람은 한국사회의 도그마를 그냥 깬 게 아니라, 명랑하게 깼다고 평가할 만하다. 한국인들이 오매불망 지녀온 국가에 대한 ‘신앙’을 엔터테인먼트한 포즈로 질타한 셈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들은 ‘재일동포 홍보대사’ 노릇을 톡톡히 했다. 이른바 ‘자이니치’라 불리는 재일동포(또는 재일조선인) 사회의 구조와 역사는 하도 얽히고설켜 당사자들조차도 정확히 설명하기가 힘들다. 가령 이런 것이다. ‘조선적·한국적·일본적은 어떻게 다르지? 외국인 등록증에 표기된 조선이 조선민주주의공화국이 아니라 남북 단독정부 수립 이전의 조선이라고? 정대세는 한국적으로 돼 있는데 어떻게 북한대표가 됐지?’ 두 사람의 활약으로 그들이 겪어야 했던 ‘자이니치’의 정체성 혼란과 복잡한 현실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몇몇 언론이 10여년 동안 ‘자이니치’에 관해 줄기차게 보도한 것 이상의 효과를, 단 몇달 만에 해냈다.
두 사람 중 정대세는 아직 서울에 못 왔다. 올 여름엔 온다. 6월22일 2008 남아공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한국과의 경기를 위해서다. 붉은 악마는 “대~한민국”을 외칠 것이다. 혹시 일부 붉은 악마가 정대세를 진심으로 응원한다면 불온할까? “국적보다 실력이 짜릿하다”는 추성훈 팬클럽은 한국에 있다. 정대세 팬클럽은 아직 못 찾았다(일본엔 팬클럽이 있다). 그날, ‘대~한민국’이 아닌 ‘정대세’를 연호하는 한국인들을 보고 싶다. 되게 재밌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