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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정상을 추구하는 비정상적 작업
박혜명 2008-05-09

“엄청 젊어지고 싶다거나, 엄청 예뻐지고 싶다는 이유가 아닙니다.”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담당하면서 본 십수편의 영화 중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네덜란드의 잡지 모델 출신 서니 베르히만 감독이 만든 1시간짜리 다큐멘터리 <오버 더 힐>이다. 이 다큐는 다큐로서의 화법이나 만듦새 관점에서 보자면 할 말이 거의 없다. 중요한 건 소재다. <오버 더 힐>은 아름다움에 관한 다큐다. 현대사회가 자연스럽게 규정한, 그러나 심히 왜곡돼 있는, 미의 기준에 관한 이야기다. 전세계 여성들이 보톡스와 지방 흡입, 성형수술에 미쳐가는 이유에 관한 다큐이고, 우리의 일상을 빽빽하게 둘러싼 패션지와 각종 광고의 비사실적이며 허구적인 이미지의 실체를 직시하게 하는 다큐다.

위에 인용한 따옴표 안의 말은 베르히만 감독이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뷰티 박람회’에 갔다가 한 화장품 마케팅 컨설턴트에게 들은 이야기다. <오프라 윈프리 쇼>에 단골로 출연했다는 그 컨설턴트의 답은 이렇다. “정상으로 보이고 싶은 거죠.” 그러니까 비정상이 아닌 정상으로 보이고 싶어 여성들은 주름방지 크림을 바르고 보톡스를 맞고 지방 흡입을 한단 얘기였다. 여성들이 나이 들어가는 자기 얼굴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TV를 켜면 “내가 내일모레면 나이 사십이에요… 그런데 주책 맞게… 이것도 사랑이라고….” 띠동갑 연하인 남자에게 울며 억지 이별을 통보하는 여배우의 얼굴이 내일모레 스물처럼 팽팽하다. 패션지 화보를 비롯해 그 안에 실린 온갖 의류 광고, 화장품 광고들은 포토숍으로 극도 조작된 사진들을 갖고서 그게 마치 세상의 실존물인 것처럼 말하고 그로부터 미의 기준을 내린다. 서른세살의 감독은 직접 패션지 사진작가와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도움을 빌려 자신을 치장하고 사진을 찍는다. 그 사진이 ‘패션지 스타일’로 포토숍 처리되어가는 과정을 보노라면, 허탈감에 웃음이 난다. 방부제에 절어 일주일째 썩지 않는 파운드케이크 한 조각이 차라리 자연에 가깝다고 말하고 싶다. 이 다큐가 담고 있는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플레이보이>에 실리는 여성 누드 모델들의 성기 조작이다. 단순한 제모 수준이 아니라, 그 잡지에 실린 여성들의 성기는 아기의 그것처럼 작아져 있어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다 벗었는데도! 미국 LA에는 이런 여성의 성기 축소술을 포함해 각종 지방 흡입술로 3년간 100억원을 번 흑인 의사가 있다. 그는 자신의 직업을 매우 만족스러워하는 눈치다.

자본과 기술 발달이 가져온 현실의 이미지 왜곡. 그것으로부터 정의되는 미의 기준의 정체. 유난히 여성의 사족을 더 옥죄는 기준. 비단 성형 중독이나 보톡스 중독이 아니더라도 이 땅에 여자로 태어나 늙어가는 육체에 대한 공포심을 갖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다. 그녀들과 나 그리고 우리의 그 공포심은 과연 무엇을 거울 삼아 생긴 것인가. 최근 1970년생 머라이어 캐리가 새 정규앨범을 냈고, 1958년생 마돈나가 곧 신보를 낸다. 이들의 식지 않는 열정과 노력 또 그것을 존중하고 사랑해주는 대중간의 상호작용을 보고 있으면, 그러한 기념비적인 여성 아이콘이 대중에게 있지 않은 국내 대중문화의 척박함에 아쉬움이 들곤 한다. 그러나 그토록 열정적인 그녀들의 외모가 10년 전, 15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의 비극이다. 영화 상영 뒤 관객과의 대화에서,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쪽을 택한 감독이 말했다. “우리가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아름답게 여기고 그래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삶에서 훨씬 더 중요한 것들을 성취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