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 이제 이야기를 시작하는 거야. 이 순간은 바로 천지가 창조되는 순간. 환상이 시작되는 순간.” 공연의 시작을 앞에 두고 세 광대가 말다툼을 벌인다. 전쟁, 예술, 사랑의 화신인 그들은 자신이 대변하는 가치를 공연의 소재로 선택하려 하지만 무대 막이 오르자 어쩔 수 없이 세 가지가 모두 들어간 이야기를 펼쳐낸다. 세 광대가 선사하는 동화의 주인공은, 음악가 한스. 전쟁이 발발하자 피아노를 치던 손으로 총을 잡은 그는 부상을 입고 홀로 남겨진다. 길을 헤매다 우연히 적군과 마주친 그는 반사적으로 총을 겨누지만 외로움은 이들 사이에도 우정을 이끌어내 두 남자는 나란히 앉아 서로의 사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여기가 어느 한적한 도시의 작은 카페라고 상상해보는 건 어때?” 적군의 이야기 속 춤추는 여인 마리. 적군의 여동생이라는 그녀는 손에 잡힐 듯 생생하고, 그 눈부신 광경에 한스는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전쟁이 숨을 조여올지라도 예술과 사랑은 시들지 않는다. <환상동화>가 전하려는 말을 요약하자면 그와 같을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듣는 즐거움이, 어디 한줄 결론에서만 나오는 것일까. 삶의 이치를 깨친 듯 속 깊은 대사, 제목처럼 환상적인 무대, 춤과 음악, 마임의 아름다운 조화는, 일상에 쫓겨 간혹 상상의 힘을 잊고 사는 이들의 마음을 잔잔하게 자극한다. 2003년 서울 변방연극제 공식참가작. 연극 <콘트라베이스>, 뮤지컬 <화이트 프로포즈> 등의 김동연 연출가가 쓰고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