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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영화제 미리 보기 5] 前代未聞, 미지의 세계
씨네21 취재팀 2008-05-01

낯선 영화는 매혹적이다. 영화제란 할리우드와 동아시아, 유럽 몇몇 나라에 한정된 영화 메뉴가 간만에 다양화될 수 있는 기회다. 올해는 우리와 비슷한 역사를 공유한 베트남, 유구한 역사 실크로드의 기억을 간직했지만 소련 연방의 붕괴와 함께 독립한 젊은 국가들이 포진한 중앙아시아로 발길을 돌려보자. 익숙한 명성을 확인하는 것에 비할 수 없는 것이 발견의 기쁨이다.

1990년대 포스트 소비에트를 엿보다, 중앙아시아영화 특별전

안시환/ 영화평론가

<카이라트>

‘중앙아시아 특별전: 포스트 소비에트 중앙아시아 5개국 영화’는 구소련 해체 뒤 독립국가로 분리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의 장편 10편과 단편 2편을 소개한다. 소련 해체 이전 작품과 2000년대 작품이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대체로 해체 이후 1990년대 작품이 중심이다. 초청작의 인지도에서 가장 앞서 있는 작품은 카자흐스탄 초청작이다. ‘디지털 삼인삼색 2006’에 참여한 바 있는 다레잔 오미르바예프의 장편 데뷔작 <카이라트>는 브레송적 스타일에 누벨바그의 생동감을 겹쳐놓았다. 여름 햇살이 부서지는 풍경이 아름다우면서도 불안한 느낌을 자아내면서 그의 단골 테마인 집단으로부터 소외된 개인의 삶을 다룬다. 전설적인 뮤지션으로 1990년 세상을 떠난 ‘빅토르 최’ 주연의 <바늘>은 구소련 말기의 혼돈 속에서 자유를 외쳤던 그의 매력으로 가득한데, 이번 특별전 작품 중 가장 장르적 색채가 강하다. 그리고 <1941-1944년 알마아타에서의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은 거장보다는 인간으로서의 에이젠슈테인의 삶을 조명하고자 한다.

너무도 낯선 국가명이지만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의 작품을 놓칠 수 없다. 이들 작품은 무언가를 ‘기록’할 수 있는 카메라의 원시적 힘 그 자체가 얼마나 놀라운지를 다시금 느끼게 해준다. 특히 키르기스스탄 뉴웨이브 기수인 악탄 아릠쿠바트의 <그네>와 <버스정거장>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작품이다. 실루엣의 인물 동선만으로 완전한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버스정거장>은 물론이거니와 중앙아시아의 풍경과 바람소리를 배경으로 첫사랑의 상실감과 치유를 ‘그리는’ <그네>는 때로 멈추고 때로 격렬히 움직이는 비주얼의 힘이 압도적인 느낌을 전해준다. 아버지를 찾아나선 형제의 로드무비인 타지키스탄 출신 바흐치야르 후도이나자로프의 <형제애>는 간결한 형식 속에 중앙아시아만의 색깔이 강하게 묻어나는 작품이다. 이외에도 투르크메니스탄의 무라트 얄리예프의 작품으로 대지진 이후의 파괴된 삶을 그리는 <대지진의 밤> 역시 주목할 만하다.

베트남전의 상처, 민중의 고통, 베트남영화 특별전

남다은/ 영화평론가

<하노이에서 온 소녀>

올해 전주영화제에서 열리는 베트남영화 특별전에서는 1960년대에서 90년대에 이르는 극영화들과 2000년대 만들어진 다큐멘터리까지 총 7편의 작품이 선보인다. 각 작품들의 제작연도는 40년에 걸쳐 있지만, 이들은 모두 베트남전쟁의 상처를 전면에 내세운다. 대체로 멜로드라마적인 틀 안에서 전쟁으로 인해 부서져가는 가족의 비극을 재현하고 있는데, 영웅서사를 완성하기 위해 베트남전쟁의 스펙터클을 이용한 할리우드영화들과 달리 영화들의 초점은 전쟁을 헤쳐나가야 하는 민중에 맞춰져 있다. 베트남 민중의 입장에서 전쟁 당시와 전쟁 이후 분단체제, 그리고 통일 이후 그들이 대면해야 하는 여전히 진행 중인 현실의 비극이 세밀하게 묘사된다. <미세스 투하우>(팜 키남, 1963)는 1950년대 초를 배경으로 전쟁으로 처참하게 무너져가는 한 여성의 삶을 보여주며, <하노이에서 온 소녀>(응우옌 하이닌, 1974)는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파괴된 마을을 헤매는 소녀의 현재에 전쟁 이전 단란하고 평화로웠던 소녀의 가족을 플래시백으로 삽입하며 전쟁의 참상을 부각한다. <모래 위의 삶>(응우옌 탄반, 1999)은 남북으로 분단됐던 베트남이 통일되면서 벌어지는 전형적인 분단 가족사의 비극을 다룬다. 두명의 아내와 한명의 남편을 중심으로 애증과 갈등의 드라마가 베트남의 고요한 풍경 아래 펼쳐진다. 두편의 다큐멘터리 중 하나인 <미세스 남>(라이반신, 2000)은 전쟁 중 간호사로 활동했던 여성이 자신이 태어난 땅에 묻혀야 안식을 얻는다는 베트남의 전통적인 믿음에 따라 전쟁 기간 동안 죽은 병사들의 시신을 발굴해서 고향으로 보내는 일을 하는 과정을 담는다. 무엇보다 이번 특별전에서 가장 흥미로운 영화는 <와일드 필드>(응우옌 홍센, 1979)다. 습지에 숨어 살면서 혁명세력의 교신자로 활동하는 게릴라 전사 가족의 일상을 따라가는 영화에서 미군 헬리콥터가 시시각각 출몰하여 공중을 돌고, 그때마다 가족은 갈대를 헤치며 물속을 거의 기어다니는데, 대치전의 긴장감이 압도적이다. 사실적이면서도 때때로 엄습하는 초현실성, 평화로우면서도 위태로운 설정, 섬세한 묘사와 절묘한 편집 등이 무척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