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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영화제 미리 보기 4] 巨匠本色, 거장의 세계
씨네21 취재팀 2008-05-01

숱한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 영화제에서, 7시간의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영화를 선택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단언하건대 롱테이크의 새로운 미학을 선보인 벨라 타르, 난해한 실험성으로 급진적인 영화의 예시를 제시한 알렉산더 클루게 등은 도전 자체가 의미있는 거장이다. 그러므로 기억할 것. 제아무리 훌륭한 영화라도, 보지 않은 모든 영화는 무용지물이다.

가시적 세계 그 너머로 침투하는 시네아스트, 벨라 타르 회고전

홍성남/ 영화평론가

<프롤로그>

옴니버스영화 <비전스 오브 유럽>(2004)에 포함된 벨라 타르의 작품인 <프롤로그>는 빵을 얻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단 하나의 숏 안에 담아냈다. 일견 단순해 보이는 이 5분짜리 영화는 어쩌면 타르 영화의 요약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여기서 우리는 지속의 무게를 담으려 하고 인물과 세계가 만나서 빚어지는 어떤 공기를 포착하려 하며 결국에는 가시적인 세계 그 너머로 침투하려는 의지를 가진 카메라를 감지하게 되는 것이다. 다소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타르는 바로 그런 시선을 가지고 구슬픈 탐색과 시의 영화를 만들어낸 시네아스트라고 할 수 있다.

수잔 손택은 타르가 영화 만들기의 ‘규범’이란 것을 영웅적으로 거부한 영화감독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런 식으로 손택을 비롯해 많은 평자들이 타르란 인물을 ‘발견’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작품으로는 역시 <사탄탱고>(1994)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타르의 이 대표작은 아예 처음부터 관객에게 영화관에 계속 앉아 있어야 할지를 결정하라고 말하는 듯하다. 대략 8분여에 이르는 영화의 첫숏은 소떼의 움직임을 천천히 이동하는 카메라로 담은 것이다. 이처럼 ‘사건’이라고 부를 것도 없는 묵직한 순간들이 앞으로 일곱 시간 펼쳐질 것이다. 물론 첫 장면부터 영화에 빠져든 관객이라면 영화가 제공하는 시간의 무게를 견뎌낼 수 있을 것이고 최종적으로는 보상을 받을 것이다. 매 순간, 매숏이 갖는 밀도에 압도되고 전반적인 음악적 리듬감에 전율하며 숨막히는 영화적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사탄탱고>(와 이어지는 <베크마이스터 하모니즈>(2000))를 경로로 타르에 접근한 많은 이들은 그의 초기작들을 보면 다소 놀라게 된다. 타르가 스물둘이란 젊은 나이에 만든 데뷔작 <패밀리 네스트>는 주택난으로 고생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후 작품들인 <아웃사이더>(1980)와 <불안한 관계>(1982) 역시 ‘사회적 리얼리스트’가 느꼈을 법한 불안과 울분의 정서로 만들어진 영화들이다. 요컨대 초기의 타르는 <사탄탱고>나 <베크마이스터 하모니즈>의 타르와는 달리 미학에 관심을 갖는 형이상학자라기보다는 존 카사베츠를 떠올리게 하는 방식의 영화를 만든 리얼리스트의 면모를 더 많이 보여줬던 것이다. 그래서 타르에 대해 이야기하는 평자들은 그의 영화 세계가 다소 다른 강조점을 가진 두 시기로 나뉜다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 중요성이 부여되는 것이 <맥베스>(1982)와 <가을>(1984)이다. 단 두개의 숏으로 구성된 전자와 미장센과 관련해 여러 실험을 한 후자는 형식적 실험에 대해 타르가 점점 이끌림을 보여주는, 그래서 두 시기의 교량 역할을 하는 영화들이라는 것이다. <패밀리 네스트>를 거쳐서 타르식의 ‘누아르’인 최근작 <런던에서 온 사나이>(2007)까지를 상영하는 ‘벨라 타르 회고전’은 크지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 이후 가장 중요한 동유럽 출신 영화감독이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 과연 어떤 길을 거쳐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만들어냈는지를 보게 해줄 것이다.

뉴저먼시네마 맏형의 영화 궤적, 알렉산더 클루게 회고전

<어제와의 이별>

파스빈더와 슐뢴도르프와 헤어초크를 이끌었던 뉴저먼시네마의 맏형 알렉산더 클루게의 영화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다. 혹은 비평가로 소설가로 감독이자 제작자로 1960, 70년대를 뜨겁게 살아낸 진정한 의미의 지식인이 걸어온 영화적 궤적을 엿보는 자리이기도 하다.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수상작으로 분단독일의 문제를 파헤친 <어제와의 이별>(1966), 정치적인 서커스를 만들려는 시도가 좌절되는 과정을 통해 예술과 사회에 대해 자문하는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 <서커스단의 예술가들>(1968) 등이 대표작이며, 뉴저먼시네마 감독 11명이 공동연출한 <독일의 가을>(1978) 등 국내 관객에게 첫선을 보이는 작품들도 눈길을 끈다. 8편의 장편과 7편의 단편이 상영될 예정이다. 아도르노와 교우하고 프리츠 랑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입문했으며, “아버지의 영화는 죽었다!”는 뉴저먼시네마의 당찬 선언을 이끌어낸 주인공이라니. 20세기 영화의 정치적이고 사회적이며 급진적이고 실험적인 면모에 대한 충실한 모범답안이 되어줄 것이다. 행사기간 중에는 감독을 대신하여 독일의 대표적인 비평가 울리히 그레고르가 클루게의 영화 세계에 대한 특별 강연의 시간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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