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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영화제 미리 보기 3] 驚天動地, 실험의 세계
씨네21 취재팀 2008-05-01

진보적인 실험영화들, 신천지가 열린다

전주국제영화제의 장점 중 하나는 진보적인 실험영화들을 꾸준히 소개해왔다는 점이다. 모두가 어려운 영화일 거라고? 그렇지 않다. 세계가 조금이라도 좋아지고 풍성해지기를 바란다면 혹은 딱딱해진 지각과 감각이 만개하기를 원한다면 당신에게 아래의 영화들을 추천한다. 자, 겁먹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스크린에 몸을 맡기자. 그럼 신천지가 열린다.

<이윤동기와 속삭이는 바람> Profit Motive and the Whispering Wind 2007년 │ 존 지안비토 │ 58분 │ 미국

정치적이며 실험적인 다큐멘터리를 꾸준히 발표해오고 있는 존 지안비토의 신작. 영화는 인적이 드문 묘비들과 미국의 역사를 기억하는 기념비들을 무수히 비춘다. 그곳에는 바람이 불고 그 바람 소리를 따라 과거 역사는 현재로 불려온다. 이 영화의 시선은 이미 죽어버려 땅속에 묻힌 것들을 의도적으로 오래 응시함으로써 지금 다시 우리가 가져야 하는 시선의 회복을 촉구한다. 그 공간에 관한 관조적 시선에 따르다보면 우리는 미국 실험 영화의 어떤 전통과도 마주하게 된다. 영화는 때로 불어오는 바람 소리에 애니메이션이라는 예상치 못한 개입도 덧붙이는데, 존 지안비토는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자본주의를 언급할 수 있는 영화적 요소로서 애니메이션을 선택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제는 관습화된 실험 다큐멘터리의 한 형식이 여전히 긴급한 정치적 문제제기를 할 때 어떻게 그 역할을 하는가, 하는 쟁점에 관해 말할 때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한 관객은 이 영화를 보고 조지 로메로의 공포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의 낙관주의적 버전 같다고 했을 정도니까. 그 관객의 독특한 소감에 감독은 화답하기를 좀비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물질적인 공명으로, 즉 불어오는 바람 소리로 미국 민중의 투쟁의 궤적이 아직 지워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히고 있다(이 영화는 노엄 촘스키와 함께 미국의 대표적인 진보적 지식인으로 인정받는 역사학자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자본주의: 아동노동> Capitalism: Child Labor 2006년 │ 켄 제이콥스 │ 14분 │ 미국

깜박거림을 이용한 이른바 ‘플릭커 영화’를 만들어온 실험영화 감독 켄 제이콥스는 <자본주의:아동노동>에서도 짧고 강력하게 분산되는 깜박임의 시선을 만들어 낸다. 그건 단지 시각적 효과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켄 제이콥스는 노동으로 새빨갛게 굽은 어린 아이들의 손과 무심해서 더 서늘한 그들의 얼굴에서 시선을 멈춘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들을 짓누르는 비인간적인 거대한 기계와 공장들에서 시간을 멈춘다. 20세기 초 착취 아동노동을 담은 루이스 하인의 사진 속 그 아이들이 눈을 치켜뜨고 우리를 쳐다볼 때 혹은 쉴새 없이 손을 돌려 기계를 움직이는 그들의 무한한 노동을 지켜볼 때 우리의 시선은 평정을 잃게 된다. 켄 제이콥스는 자본주의에 착취당한 ‘일하는 아이들’의 진실을 실험적인 영화 형식으로 파헤친다.

<팬텀 러브> Phantom Love 2007년 │ 니나 멘케스 │ 87분 │ 미국

<팬텀러브>는 흑백필름의 강렬한 미학적 표면 위에 한 여성의 꿈의 풍경들을 나열한다. 한 여성의 일상과 내면이 초현실성 안에 담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이 요구하는 것은 모든 이성적 기준을 벗어던지는 일인 것 같다. 필요한 건 단 하나. 단순한 직관뿐인 것 같다. 사랑이 끝나거나, 일에서 일탈하거나, 가족마저 극심한 압박이 될 때, 그녀 자신의 백일몽 같은 강박들은 무의식적인 공포와 욕망이 된다. 그리고 그 두려움과 판타지가 만나 섹슈얼한 필름 누아르의 여행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앙드레 브루통, 프리다 칼로, 막스 에른스트가 걸었던 바로 그 예술의 전통말이다. 로베르 브레송, 알렝 레네를 언급하는 이 초현실적 싸이코 드라마는 무의식의 강박과 판타지들을 익숙한 듯 기묘한 이미지의 상상으로 또는 우울한 현존으로 바꾸어 놓기에 충분하다.

<이곳으로> Over Here 2007년 │ 존 조스트 │ 76분 │ 미국

베트남 전쟁 당시 징집을 거부해 감옥에서 형을 산 바 있는 미국의 실험영화 감독 존 조스트의 신작. 존 조스트는 이라크전에서 퇴역한 젊은 군인을 정치적 소요와는 상관없는 한적한 포틀랜드의 오레곤으로 데려다 놓는다. 존 조스트는 전작들보다 훨씬 더 민족적 이데올로기 특히 전쟁 징집과 같은 폭력적 대의에 의해 희생된 개인의 파괴당한 감정과 삶의 바닥에 접근하고자 한다. 디지털적 실험으로 사물과 사건의 명상적 시간을 창조해온 것이라면, 존 조스트가 여기 지금 덧붙이는 것은 젊은 시절 보여주었던 급진적이고 냉철한 카메라의 시선이다. 존 조스트라는 거장의 새로운 형식적 실험과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이 어떻게 맞물리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작품이다. 김연정/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 프로그래머